[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국내 증시보다 부진했던 중국과 홍콩 증시도 반등에 성공하는 등 연초 세계 증시가 뜨거운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유독 국내 증시만 부진의 늪에 빠져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9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 거래일(26일) 기준 코스피는 올해 들어 6.66% 급락했다. 지난해 마지막 장(12월 28일)에 2665.28에 장을 마쳤던 지수는 2400대(26일, 2478.56)까지 주저앉았으며, 3일부터 12일까지는 8거래일 연속 하락 마감이라는 기록으로 1년 8개월 만에 사상 최장 내림세 오명을 쓰기도 했다.
1월 코스닥 지수도 부진했다. 올해 들어 3.39% 내린 코스닥은 연초 코스피의 부진 흐름에도 약보합을 지켰으나, 지난주만 6.4% 내리면서 835선까지 떨어졌다.
특히 국내 증시의 1월 부진은 세계 증시와 역행하는 흐름으로 의문을 자아낸다. 뉴욕 증시는 일부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골디락스'(경기가 과열도 냉각도 아닌 적절한 상태) 진입 전망에 S&P500지수가 5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여전한 고금리에도 금리 인하 기대감에 따라 소비 지수가 뒷받침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전망이 투자심리를 부추긴 모습이다.
종목별로도 애플, 테슬라 등 기존 대형주가 다소 부진한 사이 엔비디아 등 종목이 인공지능(AI) 기술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며 역대 최고가를 이어가고 있다. 이 외 마이크로소프트(MS), 알파벳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들이 건재하고 사상 최고 구독자를 기록하며 지난주에만 18.1%가 오른 넷플릭스가 급등하면서 고른 성장세를 보인다.
연초 마이너스 수익률로 한국보다 낮은 수익률을 이어가던 홍콩과 중국도 중국 정부의 대규모 증시 부양책 발표 등에 따라 급반등하기 시작했고, 3년 만에 다시 역성장을 기록한 독일도 최근 상승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2024년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하고 소액주주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도 국내 시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대변하고 있다.
◆ 1월 '청개구리 증시'…증권가 "국내 증시는 고민중"
증권가나 전문가는 국내 증시의 1월 부진에 대해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금리나 환율, 기업 실적, 글로벌 주요 지수 등에 따라 증시 방향이 결정돼야 하는데 유독 한국만 세계 시장과 반대로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지난해 4분기 시장 기대치를 밑돈 실적을 발표하고 지난해 증시에 활기를 불어넣은 에코프로, LG, 포스코 그룹주 등이 2차전지 업황 악화 전망에 연초 크게 가격 조정을 받으면서 간판 기업들의 부진이 전반적인 증시 악화의 원인으로 꼽는 이도 있다.
또한 연초 세계 증시에서 주목받는 섹터로 분류된 AI와 제약·바이오와 관련해 NAVER나 카카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이 하방 압력을 버티면서 강보합을 보이긴 했으나 탄력을 받을 모멘텀을 찾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호실적을 낸 현대차와 기아 등 자동차 관련주도 지난해 말 상승 폭을 1월 들어 반납했고 게임, 엔터테인먼트 관련주도 신저가를 경신하면서 부진의 늪을 이어가고 있다.
1월 코스피 투자자별 추이를 보면 기관의 매도세가 지수를 끌어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기관은 이달 2일부터 26일까지 총 6조7000억 원가량을 홀로 순매도했다. 기관 중에서는 연초 리밸런싱을 단행한 증권사 등 금융투자사가 2조2000억 원가량을 순매도했고, 수익을 내야 하는 연기금도 1조 원가량을 매도하면서 증시 내림세에 힘을 보탠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과 외인이 각각 4조6000억 원, 2조5000억 원가량을 사들였으나 기관의 외면을 막지 못했다.
결국 증시 흐름이 개선되려면 기업의 기초체력 외에도 수급이 뒷받침돼야 하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저가 매수세를 이어가는 개인과 달리 1월 들어 물량을 던진 외인과 기관의 매도세를 줄여야 한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말 폭발적인 매수세로 국내 증시 활황을 이끌다가 연초 차익실현을 이어간 외인이 지난주 9355억 원 규모의 순매수를 기록하면서 매수 우위로 돌아선 것은 위안이다.
2월 시장은 설 연휴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변수가 없어 1월 말 예정된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FOMC 정례회의와 MS, 알파벳, 애플, 아마존, 메타 등 미국 대형주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도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주요 세계 경제지표는 시장 예상을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 지배적이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양호한 실적을 발표하면 단기적인 반등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시각에서다.
김영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 정책이나 경제지표의 방향성은 시장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 주가 움직임을 실적이 결정할 공산이 크다"며 "빅테크들의 양호한 실적 발표에 힘입은 한국 주식시장의 제한적 반등 양상을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글로벌 유동성 증가 기대 약화와 기업 이익 개선 대비 빠르게 상승한 주가를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반도체를 기점으로 박스피를 탈출했던 2012~2016년과 비슷한 흐름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당시 코스피는 고점 대비 저점까지 평균 -8%, 저점 대비 고점까지 +9%의 수익률 밴드를 형성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