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바퀴 빠지고, 엔진 불나고, 비상구 문 떨어지고…."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 중 하나인 보잉의 기체와 관련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소비자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보잉 기체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국내 항공사들의 60%를 차지하는 만큼 정비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항공 업계에 따르면 보잉에서 만든 기체가 미국에서 잇달아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3일(현지 시간) 델타항공 소속 보잉-757 기종 항공기가 애틀랜타 하츠필드 잭슨 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도중 앞바퀴가 떨어져 나갔다. 당시 170명가량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고,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다.
지난 19일에는 아틀라스항공의 보잉 747-8 화물기가 운항 도중 엔진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17일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탑승하려던 보잉-737이 산소 누출 문제로 이륙하지 못했다.
지난 5일에는 포틀랜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알래스카항공 소속 보잉-737 맥스9 기종의 동체 측면에서 비상구 덮개가 뜯겨 나가는 사고가 벌어졌다. 사고기는 긴급 회항한 뒤 포틀랜드 공항에 비상 착륙하면서 대형 사고를 모면했다.
보잉의 품질 문제는 지난 2018년과 2019년 라이언에어와 에티오피아항공에서 보잉 737-맥스8 기종의 추락 사고로 부각됐다.
보잉 737-맥스8은 설계 당시 엔진 크기를 늘리면서 중심이 맞지 않아 받음각이 높아져 기수가 들리는 문제가 나타났다. 보잉은 당시 설계를 변경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해결하려 했으나, 센서 오작동 등으로 기수를 낮추지 않아야 하는 환경에서 동작해 추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사고로 세계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지키던 보잉은 경쟁사 에어버스에 추월당했다.
보잉기 인도 물량은 지난 2021년 340대, 2022년 480대 수준이지만 같은 기간 에어버스는 609대, 661대를 판매했다. 지난해 보잉의 신형 비행기 주문 대수는 1456대, 에어버스는 2319대로 약 1.6배 더 많았다.
여기에 반복되는 사고로 항공 소비자들의 불안도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보잉 기체 안 타고 싶다", "보잉 없는 노선이나 항공사 추천해 주세요" 등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국내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아직까진 항공사에 보잉 항공기와 관련해 공식으로 항의를 하거나 불만을 접수한 것은 없다"면서 "다만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보잉 항공기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례는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항공사들의 경우 보잉 기체 이용 비중이 약 60% 수준인 것으로 파악된다. 대한항공 106대, 아시아나항공 22대, 제주항공 42대, 티웨이항공 27대, 진에어 27대, 이스타항공 10대 등이다.
대한항공은 보잉과 에어버스의 비중이 6대 4 수준이며, 아시아나항공은 3대 7 수준으로 에어버스 비중이 높다. 제주항공, 진에어, 이스타항공은 모든 여객기가 보잉 기종으로 구성돼 있으며 에어부산은 전체가 에어버스다.
반복되는 보잉기 사고에 대해 전문가들은 점유율에 따른 착시 현상이 있다고 지적한다. 상대적으로 보잉을 이용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사고도 그만큼 잦다는 설명이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보잉이 지금까지 가장 항공기를 많이 판매해 왔기에 공항 인프라 등도 보잉 위주로 구성돼 있다"면서 "아무래도 많은 항공사가 보잉 기체를 운용하는 만큼 사고도 잦아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제조사인 보잉의 책임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범 한국항공대 교수는 "안전 문제가 지속 발생한다는 것은 기체의 피로 강도가 누적되는 것과 더불어 점검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라며 "제조사 측에서 엑스레이 진단을 강화하고, 정비 주기를 더욱 촘촘히 짜는 등 정비 매뉴얼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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