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거시·국제금융 전문 경제관료 출신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이 차기 한국거래소 이사장 후보로 내정됐다. 시장에서는 정은보 전 금감원장이 거래소 수장으로 나서며 올해 증권시장의 안정화를 이끌지 주목하는 모양새다.
◆ 정은보, 차기 이사장 단독 추천…내달 인선 마무리 예정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거래소는 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정은보 전 원장을 차기 이사장 최종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앞서 거래소 이사후보추천위는 지난 2일 이사장 후보자 공개모집을 마감한 바 있다. 공모에는 총 7명의 후보가 참여했고, 전날 최종 면접에서 정 전 원장이 단독 후보로 결정됐다.
거래소는 이번 주 중 이사회를 열어 정 전 원장의 선임을 다루는 임시 주주총회 소집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이어 내달 중 주주총회를 거쳐 정 전 원장의 이사장 선임 절차를 마무리 짓게 된다. 손병두 현 이사장의 임기는 지난달 20일까지로 끝난 상태지만, 그는 후임 인선이 마무리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게 된다.
1961년생인 정 전 원장은 대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정 전 원장은 지난 2020년 거래소 이사장 선임 당시에도 손병두 현 이사장과 함께 하마평에 올랐던 인물이다. 정 전 원장은 행정고시 28회로 총무처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재정경제부 시절 경제분석과장, 보험제도과장, 금융정책과장을 거쳐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정책관으로 지냈다. 금융위원회에서는 금융정책국장, 사무처장 등으로 활약했다. 금융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이후 2021년 8월부터 약 9개월 동안 금감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보험연구원 연구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 개미들, 불법 공매도 근절 '오매불망'
시장에서는 정 전 원장이 불법 공매도 근절을 위해 어떠한 실현책을 내놓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올해 거래소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조성을 위해 불법 공매도를 철저히 근절하고 테마·이슈를 악용한 위반을 감시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운 바 있다.
손병두 이사장은 지난 2일 여의도 서울사옥 마켓스퀘어에서 열린 '2024년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 축사에서 불법 공매도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공정한 거래환경을 위한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지능화되는 불공정거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공정한 시장질서를 확립해 자본시장의 굳건한 신뢰를 다져나가겠다"는 다짐도 전했다.
정 전 원장은 시장의 주요 쟁점으로 올라 있는 불법 공매도 전산 시스템 구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개인 투자자들은 자본시장 신뢰성 회복을 위해 불법 공매도 실시간 감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유관기관들은 매도자가 아닌 제3자가 개별 투자자의 매도 가능 잔액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기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 공매도 전면 금지, 장기화 가능성도
더욱이 실시간 감시 체계가 구축되지 않으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대두한 상태다. 앞서 정부는 올해 6월 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해 공매도를 전면 금지했지만,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공매도 금지를 연장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달 4일 공매도 금지 시한과 관련해 "6월까지 금지하고 선거 끝나면 풀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분들도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며 "부작용을 완벽하게 해소하는 전자 시스템이 확실히 구축될 때 공매도 금지를 푸는 것이다. 그게 안 되면 계속 금지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지난 17일 열린 민생 토론회에서도 그는 "총선용으로 일시적인 금지 조치가 아니라 확실한 부작용 차단 조치가 구축되지 않으면 공매도를 재개할 뜻이 전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밝혀 드린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거래소가 하루빨리 '무차입 공매도 전산시스템 구축 태스크포스(TF)'의 주축인 금감원과 절충점을 찾기를 고대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마지막 고민을 하고 있다"며 "신속히 결론을 내서 공론화 및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겠다"고 말했다.
◆ '큰손' 이탈 막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결책은?
정 전 원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에도 분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이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나서며 투자자들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부푼 상태다.
지난 17일 윤 대통령은 거래소에서 '상생의 금융, 기회의 사다리 확대'를 주제로 네 번째 민생토론회를 열고 "경제논리에 맞지 않는 금융관련 세제도 바로잡아 나가고 있다"며 "금투세 폐지를 정부의 정책으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지난 2일 신년인사회에서 금투세 폐지 추진 계획을 처음으로 밝힌 데 이어 이날 민생 간담회에서도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한 셈이다.
금투세는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 원·기타 25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를 상대로 해당 소득의 20%(3억 원 초과분은 25%)를 부과하는 게 골자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금투세가 '큰손'들의 이탈을 부추겨 증시가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해 왔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파두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기업공개(IPO) 신뢰도 저하를 맞닥뜨렸다. 여기에 공매도 전면금지와 금투세 논의가 한창인 가운데 증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 큰 상황"이라며 "신임 거래소 이사장의 어깨도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