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1주당 100만 원을 호가하며 황제주 반열에 오른 종목들이 있다. 국내 증시 역사상 황제주 자리에 올랐던 종목은 코스피 11개, 코스닥 5개 등 도합 16개 종목이다. 높은 가격만큼 투자자와 시장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현재 국내시장에서 황제주는 자취를 감췄다. 경영진을 둘러싼 논란, 실적 또는 업황 악화, 물적분할 등 왕좌를 내려놓은 이유는 다양하다. 최근에는 고금리·고유가·고환율 '3고' 우려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같은 중동발 리스크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증시가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한때 황제주로 위상을 뽐냈으나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로 현재는 몸집을 줄인 격동의 종목들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윤정원 기자] 2023년 계묘년(癸卯年)은 가히 '에코프로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해 국내 증시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연령과 자산 규모 상관없이 2차전지주를 집중 매수하는 모습을 보였고, 에코프로는 2차전지 열풍을 타고 고공행진을 지속했다. 불과 6개월여 동안 에코프로는 1400% 넘는 상승률을 나타내는 기염을 토했다.
◆ '코스닥 황제주'의 탄생…153만 9000원까지 치솟아
에코프로는 작년 초부터 '자고 일어나면 앞자리가 바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눈에 띄는 상승률을 보였다. 지난해 2월 15일 장중 20만 원대에 들어서며 종가 21만3500원을 기록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오름세를 탔다. 3월 8일(종가 33만4000원), 3월 15일(44만8000원), 4월 5일(51만5000원) 등 계속해 앞자리를 올려 나갔다.
일명 '배터리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작가는 에코프로를 필두로 한 2차전지 열풍에 더욱 불을 지폈다. 박 작가가 유망 종목으로 꼽은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LG에너지솔루션 △LG화학 △포스코홀딩스 △포스코퓨처엠 △SK이노베이션 △나노신소재 등 8개 종목에 대한 개인 투자자들의 주목도는 크게 높아졌다.
에코프로는 7월 10일에는 장중 101만 5000원까지 오르며 100만 원선을 넘어섰고, 이어 같은 달 18일에는 종가(111만8000원) 기준으로도 명명백백 황제주 자리에 올랐다. 지난 2007년 9월 7일 동일철강이 110만2800원까지 오른 이래로, 약 16년 만의 코스닥 황제주의 탄생이었다.
에코프로는 7월 10일부터 9월 12일까지 4거래일을 제외한 42거래일 동안 100만 원대에서 움직였다. 종가 기준 최고치를 찍은 것은 7월 25일로 129만3000원에 달하며, 장중 최고가는 7월 26일 기록했던 153만9000원이다.
◆ 주가 조정 거쳐 60만 원대로…상승률은 여전히 '범접불가'
다만, 고평가 지적이 이어짐에 따라 에코프로는 상승분을 차차 반납해 나갔다. 여기에 더해 전기차 수요 둔화, 중국산 리튬인산철(LFP)배터리 비중 확대 등의 변수까지 맞물리며 주가 하락을 부추겼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2차전지의 랠리를 이끌었던 미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 모멘텀도 약화하기 시작했다.
에코프로엔 또다른 악재까지 터졌다. 미공개 정보 이용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 이동채 전 에코프로그룹 회장의 25억 원 규모의 주식이 무단으로 매도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에코프로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6일부터 19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 전 회장 보유 주식 중 2995주를 제3자가 임의로 매각했다.
에코프로는 "상기 3건의 장내 매도는 보고자(이동채)의 명의 및 계좌정보가 제3자에게 무단 도용 보고자의 동의 없이 매도된 건"이라며 "현재 피해 사실을 바탕으로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으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짬짜미 작전'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 같은 사유로 주가 하락을 거듭한 결과, 에코프로는 현재 60만 원대에서 횡보하고 있다. 2023년 개장일인 1월 2일 10만6000원으로 문을 열었던 에코프로는 당해 폐장일인 12월 28일에는 전 거래일(64만3000원) 대비 0.62%(4000원) 상승한 64만70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주가 조정을 거쳤음에도 에코프로가 지난해를 주름잡은 종목임에는 변함이 없다. 미국 매체 모닝브루에 따르면 블룸버그 세계 대·중견기업 가격수익(PR) 지수에 포함된 2567개 종목 중 2023년 들어 수익률이 가장 높은 종목은 에코프로로 나타났다.
에코프로 그룹주가 폭등하면서 오너 일가의 지분가치도 크게 올랐다.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이동채 전 회장의 지분가치는 2023년 12월 26일 종가 기준으로 3조2196억 원에 달했다. 전년 말(5018억 원)보다 541.6%나 뛴 수준이다. 지분가치가 급등하면서 이 전 회장은 단숨에 국내 주식 부호 8위에 이름을 올렸다.
◆ 부정적 전망 잇달아…에코프로 "기술 고도화·고객 다변화 방침"
현재 투자자들은 에코프로의 2024년 갑진년(甲辰年) 주가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에코프로의 주가 하락이 과도한 상승에 따른 일시적인 조정인지, 대세가 종결된 것인지 무게추를 가늠하는 모습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에코프로 주가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모습이다. 우선 내년에 전기차 산업 전망이 그리 밝지 않은 이유가 크다. 전기차 수요가 감소하면 2차전지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창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최근 전기차 고객사들이 수요 둔화 때문에 전동화 전략을 늦추고 있다"며 "추가로 배터리 고객사들과 중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면 상승모멘텀이 나타나겠지만 현재로선 확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자동차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유로7' 도입이 연기되는 등 관련 규제들이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며 "단기 또는 중기적으로 전기차 수요 하향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시장의 중장기 구조적 성장을 의심하는 시장 참여자는 없지만, 단기적으로 매우 어려운 계곡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주의 하락세는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며 "연말까지는 관망하며 리스크를 관리하는 투자전략이 유효하다"고 풀이했다.
하지만 일시적 조정일 뿐, 친환경 전기차로의 전환은 불가피하며 구조적 성장 섹터임에는 변함이 없어 중장기적으로는 유망하다는 분석도 많다.
장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주는) 2023년에는 외국인 매도세와 과대 평가 등으로 부침을 겪었지만 장기적으로 성장성이 보장되는 산업인 것은 틀림없다"며 "2024년 하반기까지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에서 2차전지 관련주의 전망은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에코프로 역시 단기적 업황 전망이 어렵다는 점에 동조하고 있다. 다만, 당사는 사회적인 노력을 포함해 실적 개선에 힘쓴다는 방침이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전방산업 부진으로 수요가 줄어들고 광물가격도 하락세다. 주가가 주춤할지 반등할지 점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물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기술 고도화와 고객 다변화 등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