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현대차증권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배형근 현대모비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이 낙점됐다. 현대자동차그룹 출신 재무통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공식이 자리 잡는 모양새다. 다만, 배형근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는 증권업 경험이 전무한 만큼 기대감과 불안감이 교차하고 있다.
◆ 현대모비스 배형근, 현대차증권 대표 내정
이달 20일 현대차그룹은 '2023년 하반기 정기 임원 인사'에서 배형근 현대모비스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 현대차증권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최병철 대표이사 사장과 마찬가지로 CFO 출신이 또다시 현대차증권을 진두지휘하게 된 셈이다.
배형근 내정자는 1965년생으로 서울 경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배 내정자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에 입사, 현대그룹 계열사 전반에 30년 넘게 몸담았다. 2010년부터는 현대차 총무팀 비서로 정의선 회장 등 주요 인사의 측근에서 일했으며, 2016년 전무로 승진 후 기획실장을 거쳤다. 2018년부터는 현대모비스 CFO를 맡았다.
배 내정자는 현대차그룹을 통틀어서 CFO 자리를 오래 지킨 인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현대차그룹 측은 "배형근 신임 대표 내정을 통해 향후 업황 하락 국면을 대비한 선제적 리스크 관리와 리테일, 투자은행(IB) 분야의 본원적 경쟁력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이용배-최병철 이어 또…증권업 전문성 '글쎄'
배 내정자는 그룹 내 다양한 계열사 경험을 보유해 그룹 사업·전략 전반에 대한 높은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형 증권사 CEO들이 증권업계 전문성과 경쟁력을 기반으로 한 인물들인 것과 견주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현대차증권은 현재 최병철 대표이사를 포함해 줄곧 현대차그룹 계열사 출신들이 자리를 독식하다시피 해왔다. 최병철 대표는 현대모비스 재무부서에서만 30년 가까이 일했고, 현대차 재경본부장 부사장을 지낸 뒤 2020년 현대차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그 직전에도 그룹의 재무 전문가인 이용배 현 현대로템 대표이사 사장이 현대차증권을 이끌었다.
현대차그룹이 지금의 현대차증권을 품은 것은 지난 2008년 3월이다. 종전 신흥증권에서 현대차IB증권(2008년 4월), HMC투자증권(2008년 6월), 현대차투자증권(2017년 7월) 등을 거쳐 2018년 7월 현재의 사명을 달았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증권 최대주주에 오른 이후 당시 박정인 현대기아차 수석 부회장과 제갈걸 현대캐피탈 경영지원본부장(부사장)을 신흥증권으로 보내 인수 후 통합(PMI)을 주도하도록 했다. 이어 2009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유상증자를 실시해 총 3552억 원의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등 든든한 우군 역할을 했다.
◆ 퇴직연금 업계 2위…실상은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현대차그룹은 주요 계열사들과의 퇴직연금 계약으로도 현대차증권 지원에도 나서왔다. 현대차증권은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이후 그룹 계열사의 퇴직연금을 전담하면서 퇴직연금 사업을 확대해 왔다. 현대차증권은 최대주주는 올해 3분기 말 기준 현대자동차(25.43%)를 비롯해 현대모비스(15.71%), 기아(4.54%) 등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현대차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16조424억 원으로, 증권사 가운데 미래에셋증권(22조1375억 원)에 이어 2위다. 한국투자증권(11조7558억 원), 삼성증권(10조9195억 원) 등 여타 적립금 상위권 증권사와 견주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다만, 계열사 적립금을 뺀 일반 고객 비중만 놓고 보면 현대차증권의 퇴직연금 시장 내 존재감은 대폭 줄어든다. 퇴직연금 적립액 가운데 약 78%인 12조6729억 원이 그룹 계열사 물량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로 인해 현대차증권은 올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논란과 관련한 서면 점검과 개선방안 제출을 요구받기도 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에서 신흥증권을 인수한 것도 퇴직연금 선점에 따른 영향이 크지 않았나"면서 "현대차그룹 임직원이 워낙 많으니 적립금도 클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다. 다만, 계열사 비중이 단순히 두 자릿수 수준도 아니 압도적이라는 측면에서 타 증권사와 비교선상에 두기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 부동산 PF 리스크 큰데…주가 부양도 과제
배 내정자는 현대차 그룹 연계 사업에 기대는 구조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실적 개선이라는 과제도 헤쳐나가야 한다. 더욱이 현대차증권의 경우, 사업 비중이 높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커지면서 관련 조직의 몸집을 본부에서 팀 단위로까지 줄인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차증권은 올해 3분기 연결기준 매출 3257억7000만 원, 영업이익 119억900만 원을 올렸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2.8% 줄고, 영업이익은 반토막(52.5%)이 난 수준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도 186억1400만 원에서 93억5700만 원으로 49.7% 감소했다.
이로써 현대차증권의 올해 1~9월 누계 실적은 매출 1조1342억 원, 영업이익 649억 원, 당기순이익 531억 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매출은 12.3% 증가했으나, 영업익과 순이익은 각각 42.7%, 38.1% 쪼그라들었다.
현대차증권이 그간 등한시했던 주가 부양에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현대차그룹이 인수하던 당시 3만 원 수준이던 주가는 현재 8000원 대에 머무르고 있다. 26일 기준 종가는 전 거래일(8670원) 대비 0.35%(30원) 오른 8700원이다. 5개월 여 전인 7월 26일에는 7820원까지도 고꾸라지며 투자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한편, 현대차증권은 내년 3월 말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배 내정자를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을 부의할 것으로 보인다. 주주들의 투표를 통해 선임이 확정되면 배 내정자는 최대 3년의 임기를 보장받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