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최문정 기자] 2023년은 생성형 인공지능(AI)의 해였다. 지난해 말 미국의 오픈AI가 출시한 인공지능 챗봇인 '챗GPT'의 성공 이후 국내 양대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역시 일제히 AI 전략을 공개하며 관련 시장 개척에 나섰다. 또한 양사는 신사업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계묘년 네이버와 카카오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렸다. 네이버는 자체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고, 북미 소비자간거래(C2C) 플랫폼 '포시마크' 인수, 사우디아라비아 디지털 트윈 구축 사업 수주에 성공하며 성장 가능성을 입증했다.
반면 카카오는 올해 2월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며 사업 다변화와 해외 시장 영향력 확대를 추진했지만, 이 과정에서 '시세조종' 혐의가 불거졌다. 현재 카카오는 김범수 창업자를 비롯한 주요 경영진이 금융 당국의 수사 물망에 오르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지나고 있다. 카카오는 일찌감치 AI 전문가이자 스타트업 투자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차기 대표로 내정하고, 본격적인 쇄신과 기술 리더십 확보에 나선다는 목표다.
◆ 신사업부터 신기술까지…생성형 AI 흐름 탄 네이버
네이버는 올해 북미 C2C 패션거래 플랫폼 포시마크를 인수했다. 포시마크는 패션과 커뮤니티를 결합한 사업모델로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서 8000만 명의 이용자를 확보한 거대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네이버는 총 12억 달러(약 1조5000억 원, 기준환율 1274.40원)를 들여 포시마크를 품에 안았다. 국내 인터넷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였다. 이후 콘텐츠와 커머스, 커뮤니티를 주요 서비스를 제공하는 네이버와의 시너지 발굴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네이버의 라이브 커머스 기술과 AI 기술을 포시마크에 적용하는 방안도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올해 3분기 커머스 부문에서 매출 6474억 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41.3% 늘어난 실적이다. 이처럼 가파른 실적 증가에 포시마크 인수가 큰 몫을 했다. 포시마크를 제외할 경우, 커머스 부문 매출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4.7%에 그치기 때문이다.
차기 IT 서비스의 근간으로 꼽히는 생성형 AI 부문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냈다. 네이버는 지난 8월 자체 생성형 AI 모델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다. 생성형 AI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 학습을 기반으로 인간처럼 자연스러운 추론 등이 가능한 AI 모델을 의미한다. 하나의 생성형 AI 모델이 각기 다른 서비스의 근간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에 'AI 시대의 인프라'로 꼽힌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의 원활한 학습과 구동을 위해 지난달 두 번째 자체 데이터센터인 '각 세종'을 오픈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의 구체적인 매개변수의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의 성능이 오픈AI의 GPT-3.5 대비 75% 뛰어나다며 간접적으로 우수성을 강조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 공개 이후 이를 활용한 다양한 AI 서비스를 공개했다. 대화형 AI 서비스인 '클로바X'와 생성형 AI 기반 검색 서비스 '큐:' 등을 선보이며 자체 AI 생태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기업간거래(B2B) 영역에서도 기업에서 제공한 정보를 하이퍼클로바X의 학습 데이터로 활용해 맞춤형 솔루션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네이버는 한국은행, 국민건강보험공단, CJ올리브네트웍스 등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팀 네이버'의 기술을 활용해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도 발굴했다. 네이버는 지난 10월 약 1억 달러(1350억 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의 디지털 트윈 플랫폼 구축 사업을 수주했다. 네이버는 이르면 내년부터 5년 동안 사우디 수도 리야드와 메디나, 제다, 담맘, 메카 등 5개 도시를 대상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3D 디지털 모델링 디지털 트윈 플랫폼을 구축해 운영할 예정이다.
◆사법리스크에 발목 잡힌 카카오, 갑진년 과제는 쇄신과 AI
반면, 카카오는 녹록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시작은 올해 2월 추진한 SM엔터테인먼트 인수였다. 카카오 법인과 김범수 창업자 등 주요 경영진은 인수 경쟁자였던 하이브를 따돌릴 목적으로 2400억 원을 투입해 '시세조종'에 나섰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인수를 진두지휘했던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가 구속돼 현재 재판에 넘겨졌고, 김범수 창업자 역시 지난 10월 금융감독원에 출석해 16시간에 가까운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김 창업자는 이후 본사와 계열사 주요 경영진들과 '경영쇄신위원회'를 구성하고, 본인이 위원장을 맡으며 사실상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회사가 사법리스크에 휘말린 사이, 기술 영역에서의 성과도 지연되고 있다. 카카오는 AI 연구 자회사인 카카오브레인에서 한국어 기반 자체 초거대 AI '코GPT 2.0(KoGPT)'을 개발·연구하고 있다. 당초 카카오는 올해 초 챗GPT 등 생성형 AI 시대를 맞아 한국어 특화의 자체 초거대 AI 모델 '코GPT 2.0'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홍은택 카카오 대표가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10월 내로 코GPT 2.0을 공개하겠다며 구체적인 시기도 밝혔지만, 아직 해당 모델은 공개되지 않은 상황이다.
카카오는 우선 강도 높은 쇄신 작업을 통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회사의 규모에 맞는 체계를 확보하는 한편, AI 등 혁신 사업 영역에 대한 경쟁력 확보를 이어간다는 목표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는 지난 11일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판교아지트에서 임직원과의 간담회를 갖고 "항해를 계속할 새로운 배의 용골을 다시 세운다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재검토하고, 새롭게 설계해 나가겠다. 카카오라는 회사 이름까지도 바꿀 수 있다는 각오로 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감 창업자는 혁신의 일환으로 △확장 중심의 경영전략 원점 재검토 △AI 등 기술과 핵심 사업에 집중 △자율경영 체제 탈피 및 구심력 강화 △지배구조 개선 △기업문화 변화 등을 언급했다.
이후 카카오는 지난 13일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를 차기 대표로 내정했다. 2014년부터 카카오벤처스를 이끌어 온 정 내정자는 AI·로봇 등의 선행 기술, 모바일 플랫폼, 게임,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의 IT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투자했다. 또한 10여 년간 벤처 캐피털(VC) 분야에서 몸 담으며 스타트업의 각 성장 단계에 대한 분석과 문제 해결 능력을 쌓아왔다는 평가다.
김 창업자는 "정 내정자는 새로운 카카오로의 변화를 이끌 리더로 적합하다"며 힘을 실어줬다.
김범수 창업자의 등판과 함께 카카오가 인적 쇄신을 포함한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예고한 만큼, 내년 초까지 카카오 계열사의 주요 리더십에 변화가 불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내년 3~4월 임기가 만료되는 카카오 주요 계열사는 카카오게임즈(조계현 대표), 카카오모빌리티(류긍선 대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진수·김성수 공동 대표), 카카오VX(문태식 대표) 등이 있다.
카카오 그룹의 준법 감사 활동을 총괄할 외부 기관인 '준법과 신뢰 위원회(이하 준신위)'도 지난 18일 첫 회의를 열었다. 현재 카카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페이 등이 '카카오 공동체 동반성장 및 준법 경영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역시 연내 이사회 의결을 거쳐 참여를 확정할 예정이다.
준신위는 앞으로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 정립 등 준법 통제 틀 마련 △주요 경영 활동에 대한 사전 검토와 의견 제시 △준법 프로그램의 감독과 권고 △준법의무 위반 리스크에 대한 직접 조사 △핵심 의사 결정 조직에 대한 감독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김소영 준신위 위원장은 지난 18일 첫 회의에 앞서 "카카오가 만들어 낸 혁신만 강조했을 뿐, 그 뒤편에서 피해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며 "외형적 성장에 치우쳐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카카오가 변화의 문을 연 만큼 진정성을 가지고 준법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하도록 만들겠다"고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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