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는 '재벌 경영'을 하고 있다. 이는 최고경영자(CEO)가 하기 어려운 중대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굴곡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대기업들이 오너 경영의 긍정적 사례다. 하지만 오너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거나 퇴행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을 차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이중삼 기자] 국내 화장품 회사인 네이처리퍼블릭이 경영 위기에 직면했다. 가장 큰 이유는 '오너 리스크'다. 정운호(58) 대표이사는 스스로 회사를 곤경에 빠뜨렸다. 원정도박과 법조 비리 사건에 휘말리면서 브랜드 이미지는 추락했고, 실적은 곤두박질쳤다. 특히 지난 2019년 12월 옥살이를 마치고 석달 만에 경영에 복귀했지만, 최근 계속기업으로 불확실성하다는 지적까지 받으면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인 상태다. 일각의 전문가들은 네이처리퍼블릭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불투명'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정운호 대표이사를 둘러싼 오너 리스크는 브랜드 이미지와 실적에 손상을 입혔다. 정 대표는 지난 2015년 100억 원대의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복역을 하던 중 불거진 '구명 로비' 사건으로 3년 6개월의 징역형이 추가됐고, 지난 2019년 12월 출소했다. 이후 3개월 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당시 네이처리퍼블릭 측은 "이번 선임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위기 상황 및 시장 불확실에 적극적이고 과감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책임 경영을 바라는 임직원과 주주들의 뜻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너 리스크는 회사 실적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7년간 수익성 개선에 실패한 것이 방증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서 연도별 별도기준 영업손실을 보면 △112억 원(2016년) △38억 원(2017년) △189억 원(2018년) △128억 원(2019년) △203억 원(2020년) △37억 원(2021년)을 기록했다. 2022년에는 1억9981만 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수익성이 다시 악화되고 있는 추세다. 별도기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2억3710만 원을 기록한 반면, 올해 3분기는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최근에는 기업 존속 가능성에도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 감사인 삼일회계법인은 2021년의 경우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 '코로나19 불확실성'이라는 강조사항을 적시했다. 2022년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을 기재했다. 해당 의견이 의미하는 것은 '이익잉여금이 적자로 전환한 상황에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초과해 향후 존속능력에 의문이 생겼다는 의미'를 뜻한다. 참고로 2023년은 한영회계법인으로 감사인이 변경됐고, 올해 3분기 보고서에서는 감사의견과 강조사항 등이 기재되지 않은 상태다.
올해 1분기부터 살펴보면 별도기준 네이처리퍼블릭 이익결손금은 60억 원이다. 유동부채는 466억 원, 유동자산은 256억 원이다. 유동부채는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채무를 말한다. 유동자산은 1년 이내에 환금할 수 있는 자산 또는 전매할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뜻한다. 요약하면 부채가 자산보다 많아 빚을 청산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당기순손실도 3억2093만 원을 기록했다.
올해 반기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익결손금은 65억 원, 유동부채는 442억 원, 유동자산은 228억 원으로 역시 부채가 많았다. 반기순손실은 1억8662만 원이다. 특히 올해 3분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이익결손금은 66억 원, 유동부채는 468억 원, 유동자산은 247억 원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은 6억7133만 원이다. 연도별로도 살펴보면 이익결손금은 △943억 원(2020년) △1012억 원(2021년) △1036억 원(2022년)으로 매년 늘었다. 유동부채는 2021년 241억 원에서 2022년 483억 원으로 2배 이상 치솟았다. 유동자산은 2021년 258억 원에서 2022년 291억 원으로 늘었다. 정리하면 네이처리퍼블릭 존속능력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됐다는 소리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26일 <더팩트> 취재진과 통화에서 "(삼일회계법인) 감사를 담당했던 곳에서 계속기업 불확실성이라는 의견을 낸 데는 회계적인 측면에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지속가능경영이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지 싶다"며 "감사인이 기업에 불확실성을 기재한 것은 흔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네이처리퍼블릭 기업존속 가능성 '불투명'
전문가들은 네이처리퍼블릭의 기업존속 가능성에 대해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김종갑 재능대 유통물류학과 교수는 "네이처리퍼블릭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온라인 쇼핑의 편리함과 다양성으로 인해 많은 소비자들이 매장 방문 대신 온라인 구매를 선호하게 됐다"며 "이로 인해 로드샵 브랜드들은 매장 유지비용과 온라인 경쟁 강화라는 이중 부담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의 최고 경영자의 행동과 행위가 기업의 명성, 고객 신뢰, 전반적인 비즈니스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더군다나 온·오프라인의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정 대표의 부정적 이미지는 네이처리퍼블릭 브랜드에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정 대표의 사건으로 네이처리퍼블릭의 공공 이미지가 심각하게 손상됐다"며 "윤리적 리더십의 중요성과 최고 경영자의 개인적 행동은 회사의 명성과 고객, 기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네이처리퍼블릭은 정 대표 사건 이후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올해 리브랜딩을 추진하면서 제품의 원료·성분과 기능에 더욱 집중, 디자인과 비주얼 등을 새롭게 해 뷰티 브랜드로써 입지를 다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또 지역사회 일원으로 작은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 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고 ESG경영에도 힘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이후 자사 브랜드뿐만 아니라 뷰티업계 전체가 해외 매출에 영향을 받으면서 어려움을 겪었으나, 최근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늘어나면서 매출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현재 국내 네이처리퍼블릭 매장 수는 325개, 해외 매장은 132개로 코로나19 이전과 매장 수는 크게 차이가 없다"며 "과거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상관 위주로 오프라인 매장을 구성했다면, 현재는 마트와 메트로상권 등 유동인구가 많고 고객접근성이 용이한 곳 등 효율성이 좋은 매장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고 첨언했다.
오너 리스크 이 외에 화장품 시장 판도가 바뀐 점도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대기업 헬스&뷰티(H&B)숍 중심으로 재편됐다. 대기업의 막강한 자본력을 기반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네이처리퍼블릭의 입지는 좁아졌다. 실제 국내 헬스&뷰티(H&B) 스토어 1위 기업인 CJ올리브영의 시장점유율은 70%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참고로 CJ올리브영의 올해 3분기 누적 매출은 2조7971억 원으로 연간 첫 매출 3조 원을 목전에 두고 있다.
화장품업계 관계자는 "로드샵은 저물었다고 생각한다. 화장품 시장에서 이커머스가 강화되고 있다. 특히 CJ올리브영이 헬스&뷰티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황에서 로드샵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 실적 회복 안간힘…'선택과 집중' 전략
네이처리퍼블릭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로드샵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리브랜딩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대대적인 리브랜딩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고기능성 자연주의 브랜드로서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특히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위해 코스맥스, 한국콜마 등 최고의 연구진과 협업하고 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ESG경영도 실천하고 있다. 재활용이 용이하도록 화장품 용기와 포장재를 친환경 소재로 리뉴얼하고 있고, 다양한 기부 활동을 통해 소외계층과 지역사회를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큰 목표는 MZ세대를 주 타깃층으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일본, 북미 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처리퍼블릭은 온라인 공식몰 이 외에 신규 소비 창출을 위해 쿠팡과 11번가 등 생활 밀착형 플랫폼부터 무신사, 에이블리 등 버티컬 플랫폼에도 상품 입점을 추진하고 있다. 고효능 가성비 상품을 필두로 H&B채널로 확장도 고려하고 있다.
네이처리퍼플릭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온·오프라인 투트랙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 경우 비효율이 예상되는 매장들은 빠르게 정리하고 손익 개선에 집중했다"며 "다른 로드샵 브랜드는 매장 철수에만 치중한 점과 달리 네이처리퍼블릭은 서울 메트로 22개점, 명동 2개점 등 신규 매장을 열었다"고 말했다.
김종갑 교수는 "많은 신규 브랜드와 국제 브랜드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이는 기존 로드샵 브랜드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한 추가적인 도전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js@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