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서다빈 인턴기자] 20대 직장인 A 씨는 새해를 앞두고 신년 다이어리 구매를 고민하던 와중 아이폰에 ‘일기’ 앱이 추가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애플의 일기 앱은 일기와 사진을 함께 남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됐다. A 씨는 지금까지 종이 일기장에 사진을 남길 수 없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다이어리를 채워왔다. AI 시대의 일기장은 사진과 음악 등을 모두 담을 수 있어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일기의 틀을 깼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초기 버전에는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이 지난 12일 iOS 17.2 업데이트를 통해 일기 앱을 출시했다. 지난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세계개발자콘퍼런스(WWDC 2023)에서 '저널'이라는 이름으로 첫 선을 보인지 6개월 만이다. 애플은 디지털 시대에 맞춰 사진, 동영상, 오디오 녹음, 위치 등의 휴대전화 정보를 조합한 일상 기록 콘텐츠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온 디바이스 AI' 서비스를 늘려나간다는 목표다.
애플 일기 앱의 가장 큰 특징은 '온 디바이스 AI'로 구동된다는 점이다. 온 디바이스 AI란 인터넷과 클라우드에 접속하지 않고 이용자 기기에서 스스로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AI 기술을 뜻한다. AI가 앱 자체에서 이용자의 사진, 위치 정보 등의 데이터를 분석해 이용자들에게 맞춤형 주제를 추천한다. 꾸준히 일기를 쓰고 싶지만 일기장을 펼치면 막상 어떤 말을 적을지 고민되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앱이다.
일기 앱은 굉장히 단순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UI)로 구성됐다. 화면 하단에 위치한 '플러스' 버튼을 누르자, 바로 일기를 작성할 수 있었다. 자유도도 높다고 느껴졌다. 글을 눌러 글씨 굵기, 밑줄, 취소선 등의 효과를 줄 수 있었다. '최근 항목'을 선택하면, 그동안 들었던 노래와 운동 기록 등도 한눈에 들어왔다. 일기 한 편 당 사진과 동영상은 최대 13개까지 추가할 수 있었다. 다양한 스티커와 이미지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데 집중하기 보다는, 짧고 정확한 일상 기록을 남기고픈 이용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기 앱의 특징은 온 디바이스 AI를 만나 더욱 두드러졌다. 가령, 지난 19일 '걷기 운동'을 했던 기록을 선택하자 운동을 했던 장소를 표시한 아이콘과 걸음 수가 함께 표시됐다. 일기 앱은 "이 걷기 운동으로 기분이 상쾌해졌나요", "걷기에서 계속 생각나는 점이 있나요" 등의 질문거리를 던지며 글감 고르기를 도왔다. 사진 앱과의 연동을 통한 지난 추억 발굴에도 효과적이었다. 지난 6월 태국 여행에서 찍은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자, 그날의 일기 추천 항목으로 태국 여행 사진이 뜨며 "파타야 비치는 어땠나요"라는 문구가 노출됐다.
일기 앱은 이 밖에도 "이번 달에 들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정말 좋아하는 노래를 떠올려 보세요.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등의 질문을 통해 일기 소재를 제공했다. 바쁜 일상 속에 일기쓰기를 잊은 날에도 매 순간 손에 쥐고 있는 휴대전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루를 복기할 수 있었고, 특정 요일과 시간을 일기 쓰기 시간으로 설정하면, 앱이 알림을 보내주는 기능도 효과적이었다. 지난 일주일 간 매일 오후 8시에 일기 알람이 울리면, 하루동안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훑어보고, 추천받은 주제로 간단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일기에 들어가야 하는 콘텐츠도, 하루를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한 스마트폰 기록도 있으니 일기 작성 시간도 10여 분이면 충분했다.
다만, 사용하다보니 일기 앱 자체에는 별도의 잠금 기능이 존재하지 않는 점이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휴대전화 잠금만 해제하면 가장 개인적인 기록인 일기에는 너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이폰 기기 잠금을 해제한 채로 일기를 잠가보려 하니 "일기를 잠그려면 '설정'에서 기기 암호를 설정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노출됐다.
휴대전화에 누적되는 개인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일기 작성을 돕는 것이 최대 장점이지만, 지나치게 많은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애플의 일기 앱은 설정을 통해 사진과 위치 등의 접근을 막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된다면 개인화 추천 기능은 사용할 수 없어 일반적인 일기 앱을 사용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 앱 내 별도의 검색 기능과 달력 기능이 없다는 점도 아쉬웠다. 일기가 쌓이게 될 시 보고 싶은 특정 일기를 찾기 위해선 핸드폰 스크롤을 내리는 방법뿐이라 기록이 어느 정도 쌓인 뒤에 과거의 기록을 살펴보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았다.
일부 이용자들은 일기 앱이 아이폰에서만 지원된다는 점을 불편한 점으로 꼽기도 했다. 해당 앱은 애플이 지원하는 기본 앱이지만 현재 아이패드나 맥에서 이용이 불가하다. 국내 출시 전부터 일기 앱 출시를 기다렸던 직장인 이예진(28) 씨는 "스마트폰으로 긴 글을 남기기가 쉽지 않은데 아이패드 연동이 되지 않아 길게 일기를 쓸 수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이번 일기 앱 출시를 시작으로 모바일 기기에 본격적인 온 디바이스 AI 시대를 열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소규모 엔지니어링 팀을 꾸려 '애플GPT'(가제)라는 생성형 AI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은 대규모언어모델 '에이잭스'를 기반을 한다. 업계에서는 '애플GPT'가 현재 애플 모바일 기기의 AI 비서 '시리'와 결합돼 사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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