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기업은 대부분 오너 일가가 직접 경영에 개입하는 '재벌 경영'을 하고 있다. 이는 최고경영자(CEO)가 하기 어려운 중대한 기업의 의사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굴곡이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성장세를 이어가는 대기업들이 오너 경영의 긍정적 사례다. 하지만 오너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거나 퇴행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가 있는 기업을 차례로 살펴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호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한 삼표그룹의 오너 사법 리스크가 내년에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정도원(76) 삼표그룹 회장의 재판은 지난 10월 24일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고, 오는 22일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진행된다. 본격적인 재판은 내년 초에 시작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1심 선고가 나온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관련 재판 결과를 보면 정 회장의 내년 전망은 밝지 않다.
◆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재판 11건 모두 기업 '유죄'
앞서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정 회장의 변호인은 "중대재해처벌법은 입법 전후 위헌성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됐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다툴 여지가 거의 없으니, 법 자체의 위헌성을 문제 삼겠다는 재판 전략으로 풀이됐다.
당시는 앞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두성산업(1호 기소) 측이 지난해 10월 이 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한 것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 전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3일 창원지법 형사4단독 재판부(강희경 부장판사)는 두성산업이 제기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기각했다.
강희경 부장판사는 "중대재해처벌법 조항이 보호하고자 하는 공익은 중대산업재해를 예방함으로써 근로자 등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는 것에 있으므로 법의 균형성을 갖추고 있어 과잉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평등 원칙에 모두 위배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유해 물질인 트리클로로메탄이 포함된 세척제를 사용함에도 안전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 16명에게 독성간염 증상을 일으킨 혐의(중대재해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와 두성산업 법인에 각각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정 회장 측이 같은 심판을 청구해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정 회장 측이 다른 재판부의 결정을 보고, 위헌법률심판제청 카드를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질문에 "위헌법률심판제청 여부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며 "지금은 관련된 조사, 재판에 성실히 임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법원에선 진행된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재판 결과는 기업 측에 불리하게 나오고 있다. 1심 선고가 종료된 11건의 중대재해 사건에서 모든 기업에 유죄 판결(실형 또는 집행유예)이 내려졌다.
특히 중견 철강사인 한국제강의 경우 대표 A 씨가 1·2심에서 모두 실형(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A 씨는 지난해 3월 한국제강 함안공장에서 설비보수를 하는 협력업체 소속 60대 근로자가 무게 1.2톤의 방열판에 깔려 사망한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기소됐다.
정 회장과 삼표산업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은 한국제강보다 사안이 심각하다. 지난해 1월 삼표산업 양주 사업소에서 작업 중이던 근로자 '3명'이 토사에 매몰돼 사망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삼표는 이 사건 이전인 2020년 5월 13일 컨베이어 청소작업 중 끼임 사고 사망, 같은 해 7월 31일 컨베이어 벨트 보수 작업 중 갑자기 작동해 호퍼로 떨어져 사망, 2021년 3월 25일 굴착기에 깔려 사망 등 최근 3년 새 3건의 사망사고가 더 있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전에도 해마다 사망 사고가 발생했던 삼표 사업장에 2022년 1월에 또다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이어서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와 관련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5월 삼표산업 소속 전국 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한 특별감독 결과 발표에서 "삼표산업은 2021년에만 두 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으며, 2022년 또다시 대형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등 추가적인 사고 위험이 매우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특별감독 결과 총 103건의 법 위반 사항을 적발해 60건은 사법 조치하고 39건에 대해선 과태료 80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당시 노동부는 삼표 7개 사업장 모두에서 기본 안전보건 조치 위반, 안전보건 관리체제 부실 운영 등을 확인했다.
◆ 검찰, 잇단 사망 사고에 '경영책임자' 정도원 판단
이 가운데 검찰은 정 회장을 중대재해처벌법에서 규정하는 '경영책임자'로 보고 기소했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이 운영·관리하는 사업장에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할 때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 회장 재판은 내년 초에 시작해 2024년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삼표그룹 관계자는 "재판 결과가 금방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다"며 긴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한편 올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대기업집단 순위 80위에 이름을 올린 삼표그룹은 삼표산업을 주축으로 한 건축자재 특화 기업집단으로 현대자동차그룹 오너가와 사돈 관계다.
삼표그룹은 최근 오너 3세 정대현(46) 회장으로의 승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 회장의 막내이자 외아들인 정 부회장은 지난달 말 임원 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47년생인 정 회장의 나이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관련 사법 리스크 등을 고려하면 2024년은 승계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 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정 부회장은 최근 승계의 핵심인 지분을 빠르게 늘렸다. 지난 7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자료를 보면 정 부회장은 그룹의 지주사격인 삼표산업 지분율은 0.01%에서 5.22%로 늘렸으며, 자신이 최대주주인 에스피네이처가 보유한 삼표산업 지분(18.23%)까지 더하면 실질적으로 23.4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정 회장의 지분율은 30.3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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