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국민권익위원회가 2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탁상행정을 뒤집는 결정을 내렸다. 권익위는 30년 전 이혼한 전 부인이 지병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음을 인지한 후 사망 시까지 13년간 옆에서 보살펴 온 전 남편에게 전 부인의 임대주택 명의를 승계받아 계속 거주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LH에 의견을 표명했다.
권익위에 따르면 A 씨는 B 씨와 1969년 혼인했는데, B 씨가 시댁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어린 자녀들을 두고 가출하자 8년을 기다리다가 1979년 B 씨와 이혼했다. 이후 30년이 흐른 2009년, A 씨는 B 씨가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전 부인과 재회했다.
당시 B 씨는 당뇨 합병증을 앓으면서, 옥탑방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다. 이에 A 씨는 B 씨를 기초수급자로 신청했고, B 씨는 LH가 공급하는 임대주택에서 살게 됐다. A 씨는 이후 B 씨가 사망한 2022년까지 해당 임대주택에서 약 13년간 함께 거주하면서 '신장 투석'과 '치매 증상'을 가진 B 씨의 병간호와 보호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LH는 임차인인 B 씨가 사망한 후 A 씨가 법률상 배우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퇴거를 요청했다.
이에 A 씨는 권익위에 고충민원을 신청했다. 조사에 나선 권익위는 "A 씨는 B 씨의 보호자로 간병하면서 약 13년간 부부로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고, 80세가 넘은 고령으로 B 씨를 보살피는 과정에서 입은 낙상사고로 하반신을 쓸 수 없는 상태"라며 "A 씨가 법률상의 배우자는 아니지만, B 씨의 '사실혼 배우자'로 보아 해당 임대주택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명의 변경을 허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김태규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은 "우여곡절이 많았던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에게 임대주택 승계가 가능함을 확인해 준 사례"라며 "앞으로도 권익위는 형식적인 법 논리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국민이 없는지 보다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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