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최문정 기자] 카카오가 올해 초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불거진 '시세 조종' 의혹에 창사 이래 최대의 사법리스크에 직면했다. 최근 회사의 투자를 진두지휘하는 배재현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된 데 이어 김범수 창업자 겸 전 이사회 의장을 향한 수사도 본격화됐다. 카카오 경영진을 향한 금융당국의 수사가 진전되며 '경영공백' 사태가 불거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김범수 전 의장은 지난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앞서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김 전 의장에게 이날 오전 10시까지 조사를 받으러 출석하라고 통보했다.
김 전 의장은 조사를 위해 금감원에 들어서며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말만을 남긴 채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오전부터 시작된 조사는 날을 넘기며 이어지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조서 열람 중이며, 자정을 넘어서 결론이 날 것 같다"고 말했다.
특사경은 김 전 의장과 배재현 투자총괄대표 등 카카오 주요 경영진이 지난 2월 SM엔터테인먼트 인수 당시 경쟁사인 하이브를 견제하려는 목적으로 시세 조종에 나섰다는 의혹을 수사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금융당국에 주식 대량 보유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혐의도 받는다. 자본시장법은 본인이나 특별관계자가 보유하는 주식의 합계가 발행주식 등의 5%를 넘기면 이를 5영업일 내에 금융위원회 등에 보고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앞서 특사경은 SM엔터 인수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배 대표와 강호중 투자전략실장, 이준호 투자전략부문장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19일 배 대표가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특사경은 지난 8월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오피스에 위치한 김 창업자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또한 카카오 실무진의 휴대전화에서 시세조종 정황이 담긴 통화 녹음과 문자 등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는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카카오 측 변호인단은 입장문을 통해 "하이브와의 SM엔터 경영권 인수 경쟁 과정에서 지분 확보를 위한 합법적인 장내 주식 매수였고, 시세 조종을 한 사실이 없다"며 "하이브나 SM엔터 소액주주 등 어떤 이해 관계자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카카오의 해명에도 금융 당국의 수사가 진척되며 카카오를 둘러싼 위기는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특히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투자 책임자인 배 대표의 구속으로 인해 신사업 투자와 SM엔터와의 시너지 모색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카카오 고위경영진을 둘러싼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며 주요 관계사인 카카오뱅크 대주주의 지위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은행특례법은 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은행의 지분 10%를 넘게 보유한 산업자본이 최근 5년간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공정거래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 6월 30일 기준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과 공동 대주주다. 만일 사법리스크가 이어지며 김 전 의장과 배 대표 등이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카카오는 카카오뱅크 대주주 지위를 잃게 된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카카오를 둘러싼 여러 소송과 검찰과 금감원 조사가 집중되며 경영진의 리소스가 분산되고 있다"며 "수사 결과에 따라 카카오뱅크 대주주 지위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사법 리스크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가운데 카카오 그룹 내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의 역할과 구성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시되고 있다. 최근 조직을 재정비한 CA협의체는 전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를 계승한 조직으로 146개 카카오 계열사의 사업 전략과 방향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CA협의체에는 김 전 의장과 홍은택 카카오 대표 등 주요 경영진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배 대표는 투자총괄 직함을 맡았다. 이 밖에도 김정호 브라이언임팩트재단 이사장(경영지원총괄),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대표(사업총괄), 권대열 카카오 정책센터장(위기관리총괄) 등이 참여하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배 대표는 아직 형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CA협의체의 투자총괄 직함은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며 "현재 별다른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배 대표의 형이 확정될 경우, 공백을 메우기 위한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이번 카카오의 시세 조종 혐의에 입증을 둘러싸고 상당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월 카카오의 시세 조종 혐의에 대한 "역량을 분석해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있고, 수사를 생각보다 신속하게 진행하고 있다"며 "실체 규명에 대한 자신감을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CA협의체를 중심으로 비상경영체제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IT 업계는 카카오가 공동체의 투자유치나 인수합병 등을 CA협의체가 적극 관여할 수 있도록 사내 결재 시스템을 연내 정비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사실상 비상경영체제의 돌입이다.
카카오는 해당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CA협의체의 역할은 카카오 본사를 비롯한 계열사들 전반의 조율이며, 공동체의 경영 활동에 직접 관여할 수는 없다"며 "현재 카카오는 홍은택 대표를 중심으로 경영 활동이 이뤄지고 있고, 각 계열사마다 이사회 등의 기구가 있는 만큼 CA협의체가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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