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용인=이성락 기자]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3주기(10월 25일)를 일주일가량 앞둔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등 삼성 총수 일가와 삼성 임직원들이 모였다. 이곳에서 고인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음악회 시작 1시간 전인 오후 6시부터 인재개발원 인근은 삼성 임직원들로 북적였다. 삼성에 따르면 이날 음악회에는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삼성 총수 일가와 삼성 사장단, 임직원, 인근 주민, 협력회사 대표 등 10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재용 회장은 40분 전인 오후 6시 20분쯤 검은색 차량을 타고 인재개발원 내부로 들어갔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추모 음악회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무대에 오른다. 조성진은 국제 무대에서 한국 음악계의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 삼성 호암상 예술상을 역대 최연소로 수상했다. 홍라희 전 관장은 지난해 10월 이재용 회장과 함께 서울 LG아트센터를 방문해 조성진의 공연을 관람할 정도로 '조성진 팬'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박수예(바이올리니스트), 이해수(비올리스트), 한재민·이원해(첼리스트), 박재홍(피아니스트) 등 한국을 대표하는 신예 연주자들이 다수 참여했다. 현악기 연주자인 박수예, 이해수, 한재민, 이원해 등은 삼성의 악기 후원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명품 현악기를 대여받아 사용 중인 음악계의 신성들이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문화 진흥을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에 관심이 많았으며, 기업들도 문화 발전에 관심을 갖고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의 문화 인프라 육성 의지에 따라 삼성은 문화 예술 지원 활동을 적극 전개해 왔다.
이건희 선대회장을 추모하는 음악회가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은 그동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등을 고려해 총수 일가와 사장단 일부만 추모식에 참석하는 형태로 고인을 기렸다.
그러나 올해는 앞서 이건희 선대회장이 설립한 '삼성 안내견 학교 30주년 행사'를 여는 등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해당 행사에는 이재용 회장과 홍라희 전 관장이 참석했다. 현장에서 홍라희 전 관장은 "선대회장님이 굉장히 노력했던 사업이라 30주년 기념식을 보면 감동하고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지난 1993년 9월 설립한 삼성 안내견 학교는 안내견을 양성하고, 체험 행사 등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전날(18일)에는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올해는 이건희 선대회장이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경영 혁신에 나선 지 30주년이 되는 해로, 국제학술대회에서는 이건희 선대회장 추모와 함께 그의 리더십, 사회공헌, 신경영을 재조명했다.
국제학술대회는 삼성이 대대적인 혁신을 거쳐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된 '신경영 선언'과 이건희 선대회장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조명하는 영상으로 시작됐다. 영상에서 이건희 선대회장은 삼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고 주문한다.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로저 마틴 토론토대 경영대학원 명예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은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을 보유한 전략 이론가이자 통합적 사고에 기반해 창의적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춘 통합적 사상가였다"고 평가했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대 교수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유족들이 지난 2021년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기증한 것에 대해 "이건희 선대회장은 투자 효과를 기대하지 않고 작품을 일괄 구매했다. 이후 일괄 기부를 통해 그동안 의도성을 갖고 작품을 모았다는 걸 확인시켰다"며 "한국 미술사의 영향력을 국민들과 공유하고자 했던 르네상스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재용 회장은 이날 음악회 참석에 앞서 기흥·화성 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 건설 현장을 점검하기도 했다. 이건희 선대회장 추모 음악회 참석 직전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건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일군 선대회장의 위대한 업적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위기를 넘고자 했던 기업가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1983년 삼성 반도체가 첫걸음마를 뗀 기흥 캠퍼스는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개발 △1992년 D램 시장 1위 달성 △1993년 메모리 반도체 분야 1위 달성 등 역사에 남을 성과를 이뤄낸 반도체 성공 신화의 산실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행보에 대해 "반도체 산업을 태동시킨 이건희 선대회장의 경영 유산은 물론, 문화·예술 인프라 육성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자 했던 의지를 계승해 나가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오는 25일 수원 선영에서 이건희 선대회장 3주기 추모식을 간소하게 치를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에는 삼성 전현직 사장단이 순차적으로 선영을 찾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추모식에 참석해 유족을 위로했다. 2021년 1주기 추모식에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고려해 유족과 일부 사장단만 참석했다.
한편 1987년 부친인 이병철 창업회장 별세 후 삼성 2대 회장에 오른 이건희 선대회장은 2014년 5월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후 6년 동안 투병하다 2020년 10월 25일 향년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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