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글로벌 톱3'.
지난 2020년 정의선 회장이 취임한 이후 현대자동차(현대차)그룹이 새롭게 얻은 타이틀이다. 수익성 측면에서는 올해까지 영업이익이 6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의선 회장의 경영 성과를 놓고 '그룹의 양적 성장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위상 역시 한층 높아졌다.
외형적 성장만 이룬 건 아니다. 정의선 회장은 취임 초부터 '내실'과 '미래'에 방점을 둔 경영 활동을 펼쳤다.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제조사 이상의 가치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정의선 회장의 생각이다. 키워드는 '퍼스트 무버(선도자)'다. 퍼스트 무버 전략에 따라 미래 모빌리티 신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하다. 대표적으로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의 재도약이 절실하다. 현대차그룹은 생산 시설 효율화와 함께 현지 맞춤형 제품을 강화해 중국에서 다시 반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은 미래 모빌리티 시대에 걸맞는 기업문화로의 변화도 요구받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정의선 회장은 이날 취임 3주년을 맞았다. 지난 2020년 10월 현대차그룹을 세계 5위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킨 정몽구 명예회장이 물러나며 바통을 이어받은 정의선 회장은 당시 "선대회장의 업적과 경영 철학을 계승해 새로운 성장을 이끌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경영 활동에 시동을 걸었다.
◆ 어려운 경영 환경에도 글로벌 '톱3' 안착
업계는 정의선 회장 취임 후 현대차그룹을 둘러싼 경영 환경이 그리 녹록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코로나19, 반도체 수급난,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불안정한 대외 경영 환경 속에서도 성장 가도를 달렸다는 점에서 정의선 회장의 경영 능력과 관련해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 초 세계적 권위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의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현대차그룹의 매출은 정의선 회장 취임 전 182조 원에서 지난해 249조 원으로 37%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17조529억 원으로, 2020년 4조4612억 원의 3.8배를 웃돌았다. 올해의 경우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6조4667억 원으로 도요타와 GM을 제치고 글로벌 주요 완성차 업체 중 2위에 올랐으며, 2분기에는 7조6410억 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상반기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 2위에 오른 현대차·기아의 합산 영업이익률은 10.9%로 글로벌 완성차 업계 최고 수준을 달성했다.
증권사 컨센서스(전망치)에 따르면 현대차·기아의 올해 예상 영업이익은 26조6231억 원에 달한다. 이는 정의선 회장 취임 이후 3년 새 무려 6배 이상 증가하는 것이다. SUV·제네시스 등 고부가 가치 차종 판매 확대, 품질 경쟁력 향상, 경영 환경에 대한 능동 대처 등이 현대차그룹의 성장 배경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전년 대비 2.7% 증가한 684만5000대를 판매하며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사상 처음 '톱3'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상반기에도 현대차·기아는 366만 대가량 판매하며 순위를 유지했다.
◆ '퍼스트 무버' 전략 통했다…미래 준비 착착
정의선 회장의 전기차 '퍼스트 무버' 전략도 효과를 나타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를 적용한 신차를 연이어 출시해 판매 증가, 품질 호평, 실적 증대 등의 효과를 거뒀다. 현대차의 전기차 판매량은 2020년 9만8054대에서 지난해 21만352대로 3년 사이 2배 성장했다. 정의선 회장은 "전기차 시대에는 모든 업체들이 공평하게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 있다. 경쟁 업체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성능과 가치로 전 세계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미래 준비'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정의선 회장은 '인류에게 한 차원 높은 이동의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 아래 차세대 모빌리티 구상을 본격 구체화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주목하고 있는 사업 영역은 이미 경쟁력을 입증한 전기차 외 로보틱스, 자율주행, AAM(미래 항공 모빌리티),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수소 생태계 등이다.
로보틱스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와 로보틱스랩을 중심으로 연구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은 2021년부터 재난, 건설 현장에 투입되는 등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율주행의 경우 자율주행 합작사인 모셔널을 통해 우버와 손잡고 '아이오닉 5' 기반의 무인 로보택시 사업을 올해 말 론칭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국회와 남양기술연구소 테스트베드에서 레벨4 자율주행 로보셔틀 시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AAM 영역에서는 2020년 슈퍼널을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영입해 기술 확보, 기체 개발, 사업 기반 확충에 힘을 쏟고 있다. 목표는 2028년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미국 서비스 시작이다. 이와 함께 현대차그룹은 세계 최초로 수소전기차를 상용화하며 친환경 수소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2025년까지 모든 차종을 SDV로 전환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 변화하는 현대차그룹…정의선 리더십 주목
현대차그룹 내부적으로는 수평적이고 자율을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복장 자율화뿐만 아니라 근무 시간과 장소가 자율화되고 보고 체계가 효율화하면서 조직문화가 바뀌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효율적이고 신속한 의사결정과 수평적인 소통, 자율적인 권한 부여에 기반해 경영진과 구성원들이 매 순간 담대한 도전에 나설 것을 독려해 왔다.
정의선 회장이 추구하는 기업문화의 중심은 '고객'이다. 정의선 회장은 사내 게시판에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다양한 일들을, '고객'을 위해 같이 해 나가고 성취하는 회사가 되도록 하자"는 글을 올려 '고객 최우선' 가치의 실천을 강조하기도 했다. 취임 후 처음 가진 임직원과의 타운홀미팅에서도 "업무에서 고객을 최우선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고객을 위해 잘하려고 하는 임직원은 뭐든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의선 회장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인류 행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올해 그룹 경영진이 참여한 회의에서 "인류와 미래 세대를 위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글로벌 친환경 프로젝트 참여 기회를 지속해서 발굴,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 있게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과 현대차그룹의 변화는 경영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MBA 사례 연구에서 윌리엄 바넷 석좌교수를 비롯한 공동 저자들은 "현대차그룹이 기회를 새롭게 정의, 인류에 더 큰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며 모빌리티 시장의 최전선에 섰다"며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 아래 구성원들의 인식과 사고도 진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향후 과제는? SDV 고도화·중국 시장 재도약
현대차그룹은 SDV 고도화, 중국 시장 재도약 등 과제도 안고 있다. 먼저 SDV 고도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현재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은 다른 자동차 업체에 비해 앞서고 있지만, 아직 최상위권 업체와의 격차는 크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당초 현대차그룹은 중국 시장 내 성과가 나쁘지 않았으나,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 등으로 판매량이 급감했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힘을 못 쓰는 건 정의선 회장의 발목을 잡는 대목이다. 현대차는 2021년 베이징 1공장을 매각했고, 현재 충칭 공장(5공장) 매각을 추진 중이며, 나아가 창저우 공장(4공장)도 이르면 올해 안에 매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생산시설 최적화와 효율화, 현지 맞춤형 제품 강화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과거의 명성을 되찾겠다는 각오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며 "현대차그룹은 전 세계에서 전동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중국에서 차별화된 상품성을 갖춘 전기차를 지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기업문화 혁신은 향후에도 지속 추진해야 할 작업이다. 최근 현대차그룹의 기업문화가 극적으로 변화했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정의선 회장은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변화를 멈추면 쉽게 오염된다"며 성과를 내는 기업문화로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정의선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기존의 관성을 극복하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능동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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