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우지수 기자] 롯데그룹의 올해 정기인사 발표가 예년보다 한 달 빨라질 분위기다. 최근 실적이 아쉬운 롯데그룹이 신세계그룹과 마찬가지로 과감한 인사결정을 단행할지 주목된다. 신세계가 이커머스 플랫폼 SSG닷컴을 운영하던 강희석 대표를 돌연 해임하면서, 롯데의 아픈 손가락인 '롯데온'을 3년째 운영하며 연이은 영업손실을 낸 나영호 대표의 거취에 특히 관심이 쏠린다. 나 대표의 임기는 다음해 3월 종료로 예정됐다.
유통 대기업의 정기인사 시기가 돌아왔다. 지난 20일 단행된 신세계그룹 정기인사에서 계열사 대표단이 대거 '물갈이'됐다. 예년보다 한 달가량 이른 인사조정으로 아직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대표들도 과감히 해임하면서 그룹 내실 다지기에 들어섰다. 롯데그룹도 올해 예정된 정기인사를 앞당긴다고 알려지면서 업계는 또 다른 '유통 공룡'의 선택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정기인사에서 임기가 2년 이상 남았던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대표를 해임했다. 신세계가 실적 개선·그룹 유통사업 효율화를 책임질 인사를 찾으면서 해임된 것으로 분석된다. 강 전 대표는 올 상반기 담당 계열사 실적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이마트에브리데이·이마트24·신세계프라퍼티·SSG닷컴·지마켓을 한 데 모은 유통 조직 '리테일 클러스터'를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롯데그룹은 올해 재계 순위가 13년 만에 5위에서 6위로 밀려났고 계열사 신용등급도 대거 하락했다. 이에 롯데가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2021년부터 롯데온에 부임한 나 대표는 취임 후 2년 연속 연간 영업손실 1500억 원이라는 성적표를 연달아 받으면서 롯데온 실적을 개선하지 못했다. 다행히 올해 상반기에는 당사 매출액이 늘고 영업손실도 개선하면서 인사를 앞두고 최악은 면했다는 분위기다.
롯데그룹은 2021년 4월 롯데온을 실적 부진의 늪에서 꺼낼 구원투수로 이커머스 전문가 나 대표를 영입했다. 이베이코리아 전략기획본부장 출신 인사를 파격 영입하면서 롯데온 성장에 집중하겠단 의지를 내비쳤다.
그러나 나 대표가 취임한 해 롯데온의 영업손실은 더 커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매출액도 함께 줄었다.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롯데온의 영업손실은 1558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만큼 늘었다. 2022년에도 큰 실적 변화는 없었다. 영업손실은 1558억 원으로 제자리걸음했고 매출액은 1131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4.5% 늘었다.
롯데온은 이 같은 영업손실 행보를 일시적인 '성장통'이라고 강조했다. 효율적인 이커머스 모델로 거듭나기 위해 내부 구조를 조정하면서 생긴 피할 수 없는 비용이라는 설명이다. 조직 개편 전 롯데온은 롯데쇼핑 사업부에서 취급하는 상품을 가져와 판매하는 롯데 '오픈마켓'이었다. 롯데쇼핑의 온라인 사업부와 업무가 상충했다.
롯데쇼핑은 롯데온을 개편하면서 기존 온라인 사업부의 조직과 설비를 모두 롯데온으로 이전했다. 사업 구조도 롯데쇼핑과 롯데온을 분리하지 않고 사내 이커머스 사업본부에 귀속시켜 두 기관의 거래액을 계산하지 않게 했다. 회계 구조를 바꾸고, 인력을 이동시키면서 비용이 발생했다. 판매수수료 등 기존 수익모델이 사라지고 롯데쇼핑의 온라인 사업 적자도 롯데온 성적표에 반영되면서 타격이 더 커졌다.
올해 상반기에는 롯데온 영업손실이 크게 줄었다. 3년 만에 나 대표의 경영 성과가 나타났다. 롯데온의 올 상반기 영업손실은 410억 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945억 원보다 57%가량 줄었다. 매출액은 660억 원으로 25.7% 증가했다. 영업손실은 그대로지만 1·2분기 연이은 회복세를 보이면서 곧 있을 정기인사에서 부정적 결과를 줄일 수 있단 분위기다. 롯데온 관계자는 "버티컬 서비스로 매출 상승, 적자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며 "앞으로 버티컬 품목을 더 늘려 경쟁력을 키우고 내실 다지기에 집중할 것" 이라고 말했다.
올해 성적은 나 대표가 내세운 '버티컬 서비스'가 경영 유효타를 낸 모양새다. 버티컬 서비스란 특정 상품의 카테고리에 관심을 가진 고객층을 집중 공략하는 전략을 뜻한다. 롯데온이 선정한 버티컬 카테고리는 뷰티·명품·패션·키즈 4개 부문이다. 해외직구 등 이커머스 '블루오션'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호응을 끌었다. 탈취제 상품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나오자 곧바로 판매를 중단하는 등 발 빠른 대처로 고객 신뢰도 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명품 등 해외직구 서비스는 대기업의 신뢰가 플랫폼 선택 요인으로 크게 작용한다. 롯데온이 이커머스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롯데온의 시장 내 위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가 발표한 지난 7월 자료에 따르면 롯데온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2.4%로 업계 꼴등 수준이다. △쿠팡 40.2% △네이버 29.1% △SSG 14.4% △11번가 13.7%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수치다. 롯데그룹은 당초 2023년까지 온라인 매출액 20조 원 달성 목표를 걸고 롯데온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큰 폭으로 달성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나 대표가 이끄는 롯데온 실적이 올해 들어 개선세를 보이는 건 맞지만, 흑자전환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사 담당자들의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롯데그룹이 이커머스 사업에서 점차 개선세를 유지하기로 할지, 불안정한 유통시장 흐름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인사를 찾을지에 따라 나 대표의 거취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통업 위기설이 갈수록 커지고 온라인 유통업 역시 기업들이 극적인 반응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의 이번 대표진 인사는 계열사 전략을 바꾸는 '게임체인저'를 찾는 조치라고 본다"며 "롯데그룹도 다른 유통사와 비슷한 입장이라고 한다면, 경영진이 롯데온의 성적을 두고 '컵에 물을 반 밖에 못채운' 걸로 인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최근 개선세를 보였다고 해도 수백억 원 대의 영업손실을 낸 기업의 수장을 안 바꾸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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