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AI시대⑧] '이제 찰리 채플린은 없다'…AI가 바꾼 유통·물류


미래 경제를 주도하는 AI 물류 혁신
'AI 로봇' 알아서 척척...물류 혁신 'GTP 피킹 시스템'
CJ대한통운·쿠팡·한국콜마 등 앞장

AI(인공지능)가 유통·물류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정용무 기자

AI 시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요? AI 기술이 우리 사회를 또 한 번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태세입니다. 증기기관이 가져온 산업혁명에서 시작한 인류의 발전 속도는 반도체와 컴퓨터가 가져온 3차 혁명에 이어 AI 기술이 가져올 차세대 혁명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올 우리의 삶의 변화는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변화의 '거대한 물결'에 올라서지 못하면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고 도태될 것임은 이미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계와 학계도 글로벌 AI 시대를 선도하고 AI 기술을 우리나라의 차기 먹거리로 만들기 위해 투자·연구를 확대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팩트>는 올해 두 번째 혁신 포럼을 통해 AI와 조금 더 친해지려고 합니다. 'AI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한 특별기획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이중삼 기자] 1936년 개봉한 미국 영화 '모던타임즈'에서 배우 찰리 채플린은 온종일 공장에서 나사못을 조이는 업무만 하다가 모든 것을 조이는 강박관념이 생긴 노동자 역할을 맡았다. 하나의 톱니바퀴 부품처럼 단순노동만 되풀이하는 공장 노동자를 빗대어 표현한 장면이다. 현재도 수많은 찰리 채플린들이 단순 노동을 하고 있다. <더팩트> 취재진이 만난 물류센터 노동자는 "물품을 담고 내리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 퇴근시간이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은 앞으로 10년 안에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근 유통·물류산업에서 AI(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물류 자동화 시스템'과 'AI 로봇' 도입이 가속화하면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미 일부 물류센터 내에서는 수백 대의 로봇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물품을 지정한 곳까지 알아서 옮기는가 하면 사람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AI 로봇이 알아서 물품을 정리해주는 단계까지 상용화됐다. 물론 아직은 도입단계다. 유통·물류산업에서 AI 도입이 확산하려면 마케팅 분야에서 광범위한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유통·물류업계 AI 혁신 기술, 'GTP 피킹 시스템'

물류기업 용성우로지스의 박철홍 최고경영자(CEO)는 발로 뛰어 쓴 저서 '물류가 온다'에서 "물류 자동화 시스템은 디지털 자동화 솔루션이 결합된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상품을 운반·관리·보관하는 과정을 사람의 개입 없이 자동으로 처리되게 만드는 것이다"며 "해당 시스템이 적용된 물류 공장은 공간을 극대화시켜 최소한의 공간에서 최대한의 처리 속도를 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고 역설했다.

박철홍 CEO는 "예전에는 물류센터 직원이 작업을 하려면 선반에 직접 가서 상품을 하나씩 확인하고 상품을 꺼내서 다시 작업대로 와서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며 "그러나 자동화 시스템 중에서 GTP 피킹 시스템은 사람이 상품을 찾아 움직일 필요 없이 상품이 사람을 찾아오는 혁신적인 시스템이다"고 설명했다. AI 로봇에 대해서는 '아마존' 사례를 들었다.

그는 "이커머스 대기업 아마존은 물류센터에 누구보다 빠르게 물류 로봇을 도입해 전 세계 이목을 끌었다. 로봇 키바는 사람 앞에 물류센터 내에 있는 물품을 정확하게 가져다준다"며 "또 큰 짐을 들고도 회전하고 빠른 속도로 이동할 수 있고 스스로 충전이 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다른 키바와 소통하고 충돌하지 않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설정한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영컨설팅학회도 지난 2021년 발행한 '4차 산업혁명 시대, 첨단 유통기업의 사례 : 디지털 전환을 중심으로' 논문에서 "유통산업에서는 AI, 사물인터넷(IoT), AR·VR 등 4차 산업혁명 기술들이 활용되면서 초지능·초실감·초연결화가 실현되고 있는 유통 4.0 시대가 시작됐다"며 "특히 아마존은 2012년 물류 로봇 개발사인 키바 시스템을 인수했고 아마존로보틱스로 이름을 바꿔 로봇이 상품을 창고에서 꺼내 포장하는 곳까지 운반하는 풀필먼트의 자동화 시스템을 일궈 물류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2020년 한국통신학회가 발행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미래 유통 서비스' 논문은 유통·물류산업이 다른 분야와 비교해 AI를 적용한 시장의 성장세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했다. 논문은 "유통 분야는 2025년 192억 달러로 성장하며 제조업과 의료업에 이어 3번째로 성장세가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며 "맥킨지(McKinsey)도 19개 주요 산업 중 유통 분야가 AI의 경제적 영향력을 가장 높게 받는 산업이라고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CJ대한통운은 팔레트에 적재돼 있는 박스들의 면적과 높이 등을 인식해 자동으로 들어올려 컨베이어벨트로 옮기는 ‘AI 로봇 디팔레타이저’를 업계 최초로 상용화해 물류 현장에 도입했다./CJ대한통운

◆ CJ대한통운·쿠팡·한국콜마 등 AI 혁신 일궈

CJ대한통운은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기업 중 한 곳이다. CJ대한통운은 팔레트(화물을 쌓아놓는 받침대)에 적재돼 있는 박스들의 면적, 높이, 위치를 인식해 자동으로 들어올려 컨베이어벨트로 옮기는 'AI 로봇 디팔레타이저'를 업계 최초로 상용화해 물류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다른 규격의 박스들이 함께 쌓여 있거나 나란히 정렬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동으로 피킹 작업이 가능해 '비정형 패턴 박스 피킹 로봇팔'이라고도 불린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기존의 디팔레타이저 로봇 기술은 미리 설정해 놓은 규격의 박스만 들 수 있고 지정된 위치에서 벗어날 경우에는 작업이 불가능했다"며 "그러나 CJ대한통운은 3D 이미지 센싱·AI 딥러닝 기술을 적용해 동일한 모양이 아닌 박스들도 연속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설비 상단에 설치된 비전 카메라로 상자의 면적, 높이, 모서리 위치를 실시간으로 촬영하고 데이터로 인식·스스로 학습해 각 상자가 놓인 상태에 맞춰 피킹 작업을 수행한다"며 "팔레트 위에 쌓아놓은 상자들간 높이 차이가 있거나 모양이 다르더라도 1회 작업에 2개까지 동시에 피킹함으로써 물류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첨언했다.

이 외에 CJ대한통운은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화물선의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있는 'CJ대한통운 카고 트레킹' 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화물선이 해외 현지 항구에 도착하는 일시를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예측한다. 이를 위해 18개의 기계학습 기반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 이 모델들에 항해 정보와 경로, 날씨를 비롯 화물선의 경로상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정보의 유무, 화물선 이동거리 등 변수들을 적용해 도착 일시를 예측할 수 있다. 기존에는 화물선을 운영하는 선사로부터 도착하는 날짜를 파악할 수는 있었고 그 정확도는 40% 정도였다. CJ대한통운 카고 트레킹 시스템이 도입된 뒤 정확도는 85%까지 2배 이상 향상됐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AI는 미들마일(기업과 기업간 물류)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분석해 실시간 최적 운임을 찾아 제안하는가 하면 물류센터에서 박스를 옮기는 일도 돕는다"며 "화물선의 도착예정일을 분석해 알려주기도 하고 새벽부터 들어오는 고객들의 택배 문의에 대답도 해준다. 대표 노동집약산업으로 분류되던 물류산업 내에 많은 AI 기술이 적용돼 물류 효율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쿠팡이 대구 풀필먼트 센터(대구 FC)에 도입한 소팅 봇. 소팅 봇은 단 몇 초 만에 배송지별로 상품을 분류하고 옮겨주는 것이 가능해 로켓배송에 최적화된 로봇이다. /더팩트 DB

쿠팡은 지난해 3월 준공한 대구 풀필먼트 센터(대구FC)의 AI·빅데이터 기반의 자동화 물류 현장을 공개했다. 이 센터는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한 쿠팡이 그동안 쌓은 물류 노하우와 AI 기반 자동화 혁신기술이 집약돼 있다.

쿠팡은 대구 FC의 건립과 자동화 풀필먼트 시스템 구축을 위해 3200억 원 이상 투자했다. 축구장 46개(지하 2층~지상 10층) 규모의 대구 FC는 주요 물류 업무동에 무인 운반 로봇(AGV), 소팅 봇, 무인 지게차 등 단일 물류센터 기준 국내 최대 규모 수준의 다양한 최첨단 물류 기술들을 적용하고 있다.

쿠팡은 대구 FC에 AGV 로봇 1000여 대 이상을 도입해 상품의 진열과 집품 작업을 자동화했다. 기존에는 직원이 일일이 수많은 상품이 담긴 선반 사이를 오가며 고객이 주문한 물건을 찾아다니는 PTG 방식이었다. 그러나 AGV 로봇이 수백 개 제품이 진열된 최대 1000kg 선반을 들어 바닥에 부착된 QR코드를 따라 이동해 사람에게 상품을 전달하는 GTP 방식의 물류 기술을 도입했다.

AGV를 통해 전체 업무 단계를 65% 줄이고 평균 2분 안에 수백 개 상품이 진열된 선반을 직원에게 전달한다. 주문량이 많은 공휴일을 포함해 1년 365일, 하루 24시간 가동되기 때문에 로켓배송 등 고객 경험을 향상하는 핵심 자동화 기술이다.

또 복잡한 상품 분류 작업은 소팅 봇을 활용해 기존의 물류 패러다임을 바꿨다. 소팅 봇은 사람이 물건을 옮기거나 들어 올리는 분류 업무를 모두 없앤 최첨단 물류 로봇이다. 상품 포장지에 찍힌 운송장 바코드를 스캐너로 인식해 단 몇 초 만에 배송지별로 상품을 분류하고 옮겨주기 때문에 로켓배송에 최적화됐다.

대구 FC 내 수십 개의 무인 지게차들은 직원의 안전성을 높이는 핵심 기술이다. 사람이 누르는 버튼 한 번으로 무인 지게차가 알아서 대용량 제품을 옮겨준다. 무인 지게차가 운영되는 존에는 사람의 이동이 전면 차단돼 사고 발생을 원천 봉쇄한다.

쿠팡 관계자는 "대구 FC는 대구와 남부권을 아우르는 첨단 물류의 핵심으로 전국 물류센터에 '혁신 기술 DNA'를 전파하는 테스트베드이자 전진기지 역할을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세종공장에서 AI 기술을 적용한 자동화 시스템을 통해 화장품 중량의 균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콜마

◆ 축적 데이터 부족, 국내 AI 적용 단계 '도입부'

한국콜마도 AI를 기반으로 한 'LMS 프로그램'을 공장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국콜마 세종공장이 대표 사례다. 세종공장의 생산 라인을 둘러볼 수 있는 시설 앞에는 커다란 모니터가 있다. 이 모니터를 통해 임직원들은 실시간 제품 생산 현황과 설비 가동 상태, 설비 담당자 등 현재 공장의 생산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한국콜마 관계자는 "해당 모니터가 보여주는 것은 한국콜마가 자체로 만들어낸 AI 기반 LMS 프로그램이다"며 "LMS는 한국콜마가 도입한 MES(제조실행시스템) 프로그램으로 생산 관련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구축한 시스템이다"고 말했다.

그는 "LMS 프로그램을 통해 공장 관리자는 물론 사무실 내부에서도 공정 현황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며 "일례로 공정 작업 중에 어느 한 부분의 온도가 기준치를 넘어서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의문점을 가진 공정 관리자는 당장 그래프화된 데이터를 통해 '온도가 솟구친 부분은 A 공정이고 이 때 온도는 80도까지 치솟았다'라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선 설명처럼 AI 기술을 적용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AI 로봇 등 기술이 현장에서 보편화되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투자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효율화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것이다"면서 "지금 당장 어느 정도 자금을 써야 상용화가 될 수 있는지 예상하기 어렵다. 각 기업마다 현재 사람과 기계가 공존하며 일하고 있는데 100%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없다. 미래 AI 상용화는 효율성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AI가 현장에 녹아들더라도 필수 인력은 필요하기 때문에 채용은 꾸준히 이뤄질 것이다"며 "AI가 들어온다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상생'이라는 개념으로 바라보는 게 맞다"고 밝혔다. 실제 구인구직 플랫폼 잡코리아를 살펴본 결과 쿠팡과 CJ대한통운 등 유통·물류업체들이 관리자 등 채용 모집에 나서고 있었다.

업계는 AI 기술을 확대해나가기 위해 '데이터 축적'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는 "데이터 축적은 AI 기술 확대에 핵심 요소다. 모든 상품이 데이터화 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데이터가 부족해 물류센터 자동화를 이루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재 기업들은 데이터 최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며 "또 기업도 투자를 늘려야겠지만 정부·정치권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국내 유통·물류기업의 AI 적용 단계를 '미완성'이라고 평가한다. 김종갑 인천재능대 유통물류학과 교수는 "대체로 시스템 구축 부분에서 창고 물류 자동화 시스템은 어느 정도 노하우가 축적됐다. 쿠팡과 CJ대한통운 등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아직은 축적한 데이터가 부족하기 때문에 현재는 AI 시스템을 구축하는 도입 단계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물류창고 관리 등에서는 AI 알고리즘이 적용되고 있지만 역시 데이터 부족으로 온전한 AI 물류 창고 운영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며 "앞으로 온라인 마케팅의 자료가 더 쌓이면 AI 기반의 솔루션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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