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정부가 서민물가 안정을 위해 소매점에서 술값을 공급가보다 싸게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주자 주류업계 배만 불려주는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국세청은 지난달 28일 한국주류산업협회·한국주류수입협회 등 주류 단체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안내문을 보냈다. 핵심은 '소매업자는 소비자들에게 술값을 공급가 이하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주류 거래 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 위임 고시' 제2조(주류 제조·판매업자의 준수사항)에 따르면 '주류소매업자는 주류거래질서 확립을 위해 주류를 구입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없다. 다만 소비기한 임박과 상표·병마개 손상 등으로 부득이하게 정상가격으로 판매할 수 없는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일례로 식당에서 주류 도매업자에게 소주를 한 병당 1500원에 사왔다면 실제 판매가는 1500원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 조항은 소매점이 술값을 공급가보다 싸게 판매하면서 발생한 손실액을 공급업자로부터 보전 받는 방식의 편법으로 거래 질서를 해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종의 규제 장치다.
그간 주류업계에서는 해당 조항을 두고 주류 할인 판매는 사실상 금지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국세청은 이번 안내문을 통해 정상적인 할인 판매는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덤핑 판매나 공급업자에게 할인 비용을 전가하는 부정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소매업자들이 술값을 자율로 정해 판매할 수 있다고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음식점이 소주를 한 병당 1500원에 사왔어도 1000원, 심지어 500원에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이번 국세청의 입장은 지난 3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발표한 '내수 활성화 대책'의 후속 조치다. 당시 기재부는 "주류 시장 유통·가격 경쟁을 활성화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할인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번 조치로 소비자들의 편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주류업계에 의하면 현재 주류 제조사는 소주 한 병을 도매상에 1100~1200원대로 납품하고 있다. 도매상은 여기에 △운영비 △운송비 △인건비 등을 더해 1300~1500원을 받고 소매점에 공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마트에서는 약 1600원, 음식점에는 4000~6000원 선에서 판매하고 있다.
복수의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날 "먼저 음식점의 경우 주류 도매업자가 금액을 결정하기 때문에 음식점마다 공급가 차이가 난다"며 "일례로 A음식점은 한 달에 100짝이 팔리는데 B음식점은 10짝이 팔린다면 같은 공급가로 책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마트의 경우는 공급가가 비슷한데 완전 같진 않다. 미끼상품으로 가져다놨는데 경쟁사보다 비싸면 메리트가 없기 때문이다"고 첨언했다.
이어 "이번 국세청 유권해석은 결국 '무한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인데 마트만 보면 주류 제품을 하나의 미끼상품으로 내놓고 다른 제품까지 판매량을 늘려 마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다만 음식점의 경우 가스비와 인건비, 완성형 음식 가격도 오른 시점에서 5000~6000원인 술값을 내린다면 음식점을 운영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본다. 사실 현재도 3000원에 술을 판매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요인으로 그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술값을 내려 판다면 안주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 주류업계는 국세청 취지에 공감한다며 매출이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 주류업계 관계자는 "사실 주류 제조사는 손해가 없다"며 "가격 결정에 다양성을 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추후 매출도 증가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주류 제조기업들의 배만 불려주는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김종갑 인천재능대 유통물류과 교수는 "술값에 대한 소비자 가격 인하 판매 허용은 결국 주류 소비를 증대시킬 것이다"며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에서는 주류 할인 판매를 미끼로 고객을 유치할 가능성이 높다. 주류 소비가 늘어나면 이는 곧 국내 대표 주류기업인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등에서도 반가워할 일이다"고 강조했다. 결국 주류업계 배만 불려주는 꼴이 될 것이라고도 첨언했다.
이어 국세청이 내놓은 유권해석에 대해서도 "국세청이 설명하는 자율경쟁 효과는 '어불성설'이다"며 "국민의 건강은 경쟁 논리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질적 향상에서 봐야하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