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출범 당시 보수적 보험시장에서 기존 틀을 뒤흔들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받았던 디지털손해보험사들이 출범 이후 만년 적자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보험업계에서는 가성비와 편의성에 주목하다 보니 제한적인 상품을 취급하며 낮은 수익을 낼 수 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디지털손보사들은 장기보험 상품 판매를 늘리는 등의 노력으로 수익성 반전을 꾀하고 있다.
보험업계 판을 흔들 '메기'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 받았던 디지털손보사들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손보사는 보험상품을 직접 개발해 모바일·웹 등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보험사다. 전체 보험 계약 건수나 고객으로부터 받는 보험료의 90% 이상을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플랫폼 등을 통해 모집한다. 지점이나 설계사가 없고, 텔레마케팅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디지털손보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가 확산하고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보험시장의 디지털화를 이끌고 혁신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국내 디지털손해보험사들은 올해 1분기에 모두 적자를 면치 못했다. 주요 손보사들이 자동차보험의 손해율 개선 등으로 1분기에 역대급 실적을 낸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국내 1호 디지털손보사인 캐롯손해보험은 1분기 109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카카오페이손해보험은 1분기에 85억 원의 손실을 냈다. 하나손해보험도 83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 카카오페이손보와 같은 시기에 데뷔한 신한EZ손해보험은 9억 원의 적자를 냈다.
지난해도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각 보험사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캐롯손보는 지난해 795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카카오페이손보는 지난해 261억3576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나손보도 지난해 702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신한EZ손보의 지난해 당기순손실 규모도 150억 원이었다.
이들의 적자 원인으로는 낮은 수익성 구조가 꼽힌다. 디지털보험사들은 대부분 소액단기보험(미니보험) 위주로 판매해 왔으며 이는 짧은 기간이 큰 특징이다. 보험기간이 짧기 때문에 자산운용 어려움이 크고 보험료가 낮은 만큼 손해율 관리도 까다롭다는 분석이다.
보험사 관계자는 "현재 손해보험사들의 이익은 대부분 장기인보험으로 창출되고 있다. 디지털 손해보험은 여행자보험, 자동차보험 등 단순한 보험상품 판매가 주력이다 보니 수익 창출과는 거리가 좀 있어 보인다"면서 "보험기간이 짧은 소액보험 판매로는 안정적인 자산운용 수익도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디지털손보사들은 장기보험 상품 판매를 늘리는 등의 노력으로 수익성 반전을 꾀하고 있다. 장기보험은 보험료 납입기간이 3년 이상인 상품으로 암보험·어린이보험·운전자보험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올해는 디지털 손보사들 실적 흐름에 중요한 해가 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도입된 신 회계제도(IFRS17) 전환 이후 매출과 실적 계산식이 바뀌면서 수익성 중심의 상품군을 늘리는 동시에 기존 상품의 손해율은 낮춰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기 때문이다.
신한EZ손보는 장기인보험 영업에 적극적이다. 신한EZ손보가 건강·질병보험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기존 디지털 보험사들이 의존하고 있는 미니보험만으로는 수익 개선이 어렵다고 판단한 결과로 풀이된다. 신한EZ손보는 올해 초 장기보장성 상품으로 '운전자보험 신한이지(무배당)'를 선보였다. 2월부터는 신한금융 생명보험계열사인 신한라이프의 독립된 TM채널을 통해 교차판매하고 있다. 또 신한EZ손보는 현재 디지털기반 손해보험사로 사업모델을 전환하기 위해 차세대전산시스템을 구축 중이다.
하나손보도 장기보험 상품 다각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무배당 하나 Up-Grade 건강보험'의 담보를 기존 암·건강 위주에서 운전자, 상해, 배상책임 등으로 확대한 것이 대표적이다. 하나손보는 장기보험 판매 채널 확대 차원에서 지난달 자회사 법인보험대리점(GA) 하나금융파인드 주식 140만 주를 70억 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카카오페이손보도 지난해 10월부터 장기보험 계리·결산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한 백엔드 개발자를 모집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을 개발하거나 운영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 대상으로 IFRS17에 대한 경험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캐롯손보는 뚜렷한 장기보험은 없으나 유사한 구조의 단기상품을 내놓고 있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캐롯 직장인 생활건강보험'을 출시했으며 올해 3월 정신질환 치료비를 보장하는 '마음케어모듈' 특약을 추가했다.
다만 장기보험 특성상 고객에 충분한 설명과 이해가 요구되는 만큼 설계사의 대면 설득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보험사 관계자는 "장기인보험의 경우 보장 내용과 약관 등을 고객에게 충분히 이해시켜야 하고, 은행처럼 고객들이 필요에 의해 은행점에 방문하거나 모바일뱅킹처럼 직접 여수신에 참여하기보다는 설계사의 대면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규제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기에 정부가 디지털보험사들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온라인 보험에 대한 규제를 많이 하면서 오프라인 보험에 비해 시장이 많이 위축됐다. 우리나라는 4차 산업혁명을 하기에 좋은 나라이고 스마트폰 보급률도 세계 1등인데 (디지털보험사를) 오프라인 기업과 똑같은 기준으로 규제하는 등의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있다"면서 "디지털보험사는 수익성에 도움이 되는 장기성 보험이 훨씬 유리할 것이다. 디지털보험사도 국내 시장에만 한정하지 않고 해외 시장에 적극 진출해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