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환 AI시대③] '움직이는 힐링 공간' 자동차, '삶의 질' 높인다


본격 자율주행 3단계부터 제공…현대차·테슬라·GM '각축전'
운전석 공간 확보해 넓어진 실내…PBV로 진화

자동차 산업에 인공지능(AI)이 적용되면서 단순 이동수단이었던 차가 움직이는 비서 역할을 하는 등의 혁명이 예고되고 있다. /정용무 기자

AI 시대, 우리 사회는 어떻게 변할까요? AI 기술이 우리 사회를 또 한번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태세입니다. 증기기관이 가져온 산업혁명에서 시작한 인류의 발전 속도는 반도체와 컴퓨터가 가져온 3차 혁명에 이어 AI 기술이 가져올 차세대 혁명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올 우리의 삶의 변화는 예측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변화의 '거대한 물결'에 올라서지 못하면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고 도태될 것임은 이미 세 차례의 산업혁명이 분명하게 입증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계와 학계도 글로벌 AI 시대를 선도하고 AI 기술을 우리나라의 차기 먹거리로 만들기 위해 투자·연구를 확대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더팩트>는 올해 두 번째 혁신 포럼을 통해 AI와 조금 더 친해지려고 합니다. 'AI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한 특별기획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편집자 주>

[더팩트 | 김태환 기자] 인공지능(AI) 기술이 이식되면서 자동차가 '움직이는 실내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목적지를 입력하면 스스로 주행하는 등 '운전기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 업무 수행을 돕거나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도 제공한다. 차량 내부는 회의실이 되고, 때로는 안락한 쉼터로 활용된다. 단순 이동수단을 넘어 '생활하는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AI가 일으킨 마법이다.

EV 언플러그드 그라운드 드라이빙 전시관에서 체험한 인터랙티브 가상 주행 시뮬레이터의 모습. 주행 중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시속 80km 속도로 자율주행을 할 수 있다. /김태환 기자

◆ AI 활용해 스스로 주행부터 주차까지 '완전자율주행' 구현

AI는 이미 자동차 산업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최근 기아가 출시한 플래그십 전동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9'에 적용된 '3단계 자율주행'과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2'는 좋은 예이다. 이 차는 운전자가 자리에 앉아 시동만 걸면 차량이 스스로 움직이고 주차까지 하는 지능을 가진 자동차임을 입증해 보였다.

<더팩트>가 최근 경기도 하남에서 충남 아산, 부여로 이어지는 209㎞의 구간을 시승해 본 결과 운전자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기만 하면 될 정도로 자율주행 기술이 발전했음을 확인했다. 운전자가 목적지를 말하자 차는 스스로 움직였다. 고속도로에 올라선 자동차는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떼도 시속 80㎞ 속도를 유지하며 달렸다. 방향지시등을 넣으면 스스로 차선변경도 하고 목적지에 도착하자 스스로 주차선으로 후진해 들어가 주차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플래그십 세단 G90에도 3단계 자율주행을 도입했다. 자율주행 시장 규모 성장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이다. 글로벌 리서치 기관인 CMI에 따르면, 세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오는 2030년까지 연평균성장률(CAGR) 39.9%를 나타내며 1조5337억 달러(약 1986조1415억 원)에 이를 전망이다.

자율주행은 카메라, 레이더(전파로 탐지), 라이다(레이저로 탐지)를 활용해 정보를 수집하고, AI가 데이터를 분석해 차량을 실시간으로 운행하도록 지원하면서 가능해졌다. 자율주행 기술 기준은 미국자동차공학회(SAE,0~5단계)의 기준이 널리 쓰이고 있는데, 3~5단계를 자율주행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현재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3단계를 상용화한 상태다. 3단계부터는 운전자의 조작 없이도 도심에서 신호를 인식해 자동으로 차량을 세우고, 고속도로에선 일정 구간의 교통 흐름을 고려해 스스로 차선을 변경하거나 속도를 조절한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계열사 포티투닷이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무인 자율주행 버스 aDRT의 모습. /포티투닷

자율주행 시스템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테슬라의 '오토파일럿'이다. 오토파일럿은 차량에 8개의 카메라를 탑재해 360도 전체를 촬영해 얻은 데이터를 활용해 AI가 실시간으로 추론하는 '컴퓨터 비전 방식'으로 차량을 제어한다. 여기에 GPS와 연동한 고정밀 지도 데이터와도 연계해 정확도를 높인다.

테슬라 외 다른 기업들은 라이다와 레이더를 모두 활용해 자율주행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자율주행 관련 계열사 '크루즈'를 통해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고정밀 지도와 함께 라이다를 비롯한 복합적인 데이터를 수집·가공해 AI로 분석해 자율주행을 구현한다.

현대차그룹도 자율주행 계열사 포티투닷을 통해 AI를 활용한 자율주행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포티투닷은 차량 전면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다양한 센서를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멀티카메라 시스템'을 개발했다. 포티투닷은 지난해부터 서울 청계천에서 수요 응답에 최적화된 aDRT(자율주행 셔틀)를 본격 운행하고 있다. aDRT는 카메라 12대와 레이더 센서 6개를 혼합해 실시간으로 주변을 인식하는 방식으로 자율주행을 구현한다.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 소프트웨어의 복잡함을 줄이도록 2차 프로그래밍(QP) 최적화 기법을 도입했다. QP 최적화는 제약 함수를 만족하는 정의역에서 목적 함수가 최소가 되는 상태 값을 찾는 기법으로, 연산 시간을 줄이게 된다. /현대차그룹

최근 현대차그룹은 그동안 사용해온 '시나리오별 AI 알고리즘'을 '경로 계획 AI 알고리즘'으로 전환했다. 지금까지는 자율주행 AI 알고리즘이 교차로, 좌회전, 우회전, 유턴 등 도로의 형상과 타 차량의 끼어들기, 주정차 차량 회피 등 모든 상황에 대해 시나리오별로 학습했다. 이렇게 되면 소프트웨어가 복잡해지고 서비스 개발과 유지보수 난이도가 올라간다.

경로 계획 AI 알고리즘은 도로 상황 전반을 일반화·추상화한 단일 신호로 설계하고, 해당 신호를 입력받아 경로를 계획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알고리즘은 다양한 도로 상황을 맞이해도 주행 가능 영역에 대해서만 차량이 인식하도록 해 소프트웨어의 복잡함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일반화 적용을 위해 현대차그룹은 '2차 프로그래밍'(QP) 최적화 기법을 도입했다. QP 최적화는 제약 함수를 만족하는 정의역에서 목적 함수가 최소가 되는 상태 값을 찾는 기법으로, 연산 시간을 줄이게 된다.

최수영 현대차그룹 자율주행SW개발3팀 연구원은 "QP 최적화 기법을 통해 AI 자율주행 기술이 운영 지역과 차종에 따라 파편화되지 않고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역 경로 계획 알고리즘'을 완성할 수 있었다"면서 "현재 강남, 판교 그리고 남양연구소에서 운행 중인 아이오닉 5와 쏠라티 자율주행 차량에는 QP 최적화 기반 경로 계획 알고리즘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가 4단계 이상 자율주행차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드 변환 콕핏을 개발 중에 있다. 이 모듈은 탑승자의 상황에 맞게 주행 모드, 오피스 모드, 릴렉스 모드 등으로 전환할 수 있다. AI 음성인식 기술로 모드 전환을 지원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태환 기자

◆ 내연기관·운전석 공간 활용해 'PBV'로 진화

이처럼 4단계 이상 자율주행이 완전히 정착할 경우, 차량 탑승자가 운전에 집중하지 않게 되면서 자동차 공간을 다채롭게 활용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운전석이 필요 없어짐에 따라 공간을 더욱 넓게 활용할 수 있고, 영상 시청과 같은 콘텐츠 활용도 가능해진다.

특히, 전기차로 전환되면 내부 공간이 더욱 넓어지게 된다. 내연기관은 엔진, 변속기와 같은 구동계가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만, 전기차의 경우 바퀴 옆에 모터를 달고 차량 하부에 배터리를 탑재해 차량 상부가 매우 넓어진다.

이런 공간을 적극 활용한다면 자동차 내부 공간은 실내 공간의 연장선에 있게 된다. 박스형 차량 내부 가운데 테이블을 놓고 사무실에서 하던 회의를 차에서도 할 수 있으며, 캠핑용 장비와 가재도구를 수납해 캠핑카로도 활용할 수 있다. 대형 화면을 설치해 움직이는 영화관으로 변신할 수도 있다.

실제 현대모비스는 미래 차량의 콘셉트에 맞게 '모드 변환 콕핏'을 개발하고 있다. 4단계 이상의 자율주행 차량에서 탑승자의 편의를 위해 운전석을 상황별로 주행 모드, 오피스 모드, 릴렉스 모드 등으로 변환해 주게 된다. 여기에 차량 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도 AI 기술이 적용된다. 버튼을 직접 누르지 않고 음성 인식으로 창문 개방, 목적지 경로 설정, 콘텐츠 재생과 같은 명령을 수행하게 된다.

BMW의 자동차 브랜드 미니(MINI)가 자율주행 콘셉트카로 공개한 비전 어바넛의 내부 모습. 운전석을 유동적으로 활용해 운전대를 수납하고, 내부를 쉼터처럼 꾸밀 수 있도록 설계됐다. /BMW

실제 BMW 산하 브랜드 미니는 실내 공간 활용을 극대화한 자율주행 전기차 콘셉트카 '비전 어바넛'을 공개했다 비전 어바넛은 사용자들의 휴식에 초점을 맞춘 '도시 오아시스'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운전석이 있지만 운전대가 수납하도록 설계됐고 4개의 회전형 의자가 설치돼 상황에 맞게 공간 구성을 달리할 수 있다. 전면 유리를 열고 닫을 수 있고 천장도 유리로 구성돼 탁 트인 느낌을 주도록 설계됐다.

현대차그룹은 AI 기반의 목적기반차량(PBV)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 PBV는 자동차 공유(카 쉐어링), 자동차 호출(카 헤일링), 물류 운반, 휴식, 이동식 병원 등 다양한 목적에 맞게 제작된 차량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반도체 운반용 PBV'는 공장에서 공항 화물 터미널까지 자율주행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내부에는 제품 상태를 보존하기 위해 실내는 항온, 항습 환경을 유지시키는 장치를 설치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택시 PBV'는 반려동물이 쉽게 탑승하도록 차체를 낮추고, 장거리 이동 상황을 고려해 식수 공급, 간이 화장실, 공기 정화 시스템 등을 갖출 수 있다. 모든 PBV는 상황과 용도에 맞게 AI가 최적의 경로를 탐색해 이동하고 내부 공조장치 제어와 영화·음악 콘텐츠 재생 등에 관여하게 된다.

현대차그룹이 개발 중인 PBV의 내부 모습. 운전석과 트렁크 공간을 없애고 주거 공간을 넓히는 등 공간 활용도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현대차그룹

◆ 기술력 보완·제도정비 절실…네거티브 규제 도입 필요

3단계 이상 자율주행은 현재로서는 완전히 자리잡기에는 기술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풀어야할 숙제가 적지 않다.

현재 대다수 자동차업체가 제공하는 3단계 자율주행은 자동차 전용도로 등 제한된 공간에서 악천후가 없는 상태에 구동된다. 차량을 운행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자율주행이 실현된다는 설명이다. 한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완성차 업체들의 자율주행 기술은 3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이조차도 오프로드나 폭우와 폭설이 오는 등의 악조건 상황에서는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서 "제한된 상황뿐만 아니라 제한된 상태에서도 문제 없이 운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율주행으로 혁신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제도 정비도 필요하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자동차 교통과 관련한 모든 현행법은 운전자의 존재를 기본 전제로 한다. 운전자가 도로에서 어떤 안전운전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는 법으로 명시돼 있지만, 운전자가 없는 4단계 자율주행차는 법적 주체가 사라진다.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를 묻기 어렵다. 현재 도로교통법에는 인명피해가 없는 교통사고에 대해 신고 의무가 없고, 자율주행 사고에 대한 처리 절차가 규정돼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기술 발전을 지원하려면 법률·정책상으로 허용하는 것을 나열한 뒤 나머지를 모두 금지하는 현행 '포지티브 규제'가 아니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가 우선 적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한국은 규제에 있어 포지티브 규제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자율주행차를 만들기도 전에 온갖 규제에 막혀 기술 개발이 지연될 여지가 크다"면서 "부처 간 얽힌 규제들을 정비함과 동시에,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해 치명적인 문제만 금지하고 나머지는 허용해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 확보를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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