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승우 기자] "라면값 올려 업체 배불리는 거냐."
매번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라면값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라면값이 올라 서민 가계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라면업계 실적은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나 비판의 시각도 크다.
국내 라면 시장 점유율 1위인 농심을 시작으로 오뚜기, 삼양 등 라면업계 '빅3'가 지난해부터 라면값을 인상한 이후 사업 안정성이 크게 좋아진 것으로 파익됐다.
◆ 라면값 계속 올라 불만인데 업계는 '나몰라라'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빅3'의 올 1분기 매출은 1조 9627억 원으로, 1년 전 대비 약 17.9% 증가했다.
특히 농심은 매출과 영업이익, 그리고 순이익 모두 흑자를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농심의 올해 1분기 영업실적보고서를 살펴보면 매출 8604억 원, 영업이익 638억 원, 순이익 54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 증가율은 16.9%, 영업이익 증가율은 85.8%, 순이익 증가율은 64.1%를 기록했다. 이는 농심의 미국 시장 성장이 크게 작용 했으며, 작년 9월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농심 관계자는 12일 <더팩트>에 "미국 법인이 영업이익 증가에 주요한 요인이 됐다. 미국 공장이 두 곳으로 증설될 만큼 신라면의 현지 판매량이 크게 확대한 결과"라며 "이익구조도 개선됐는데, 작년과 재작년 영업이익이 좋지 못해 (상대적으로) 인상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라면값을 평균 11.0% 올려 판매중인 오뚜기도 올 1분기 856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7% 상승한 654억 원이다.
오뚜기보다 한 달 뒤 라면 출고가를 평균 9.7% 올린 삼양식품의 올 1분기 매출액은 2455억 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21.5% 늘어났으며, 같은 기간 순이익은 17.2% 상승한 226억 원을 벌어들였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의 재무구조 모두 매출 성장과 연계성이 높은 제품의 가격 인상 이후 상향 안정화되고 있는 게 눈에 띈다.
라면 시장은 농심(49.5% 점유율), 오뚜기(26.4% 점유율), 삼양식품(10.2% 점유율) 등 '빅3'의 독과점화된 시장 구조이다보니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꼼짝없이 소비자가 비싼 라면을 사먹을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했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라면 물가 상승률은 작년 9월 3.5%에서 그해 10월 11.7%로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최근 8개월 동안 연속 10% 상승선을 유지하고 있는데, 라면값이 한 봉지에 2000원에 달했던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더팩트>와 인터뷰에서 "라면 업계는 원부자재와 인건비 상승을 이유로 제품 가격을 올렸다 하는데 과연 맞는 말일까 의구심이 든다"며 "정부의 통계 정보에 따르면 밀가루 가격은 지난달부터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원자잿값 상승이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되고 있는 사이 라면 업계는 매출 성장을 이루고 있다"며 "우리 주변에는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취약한 사회계층이 함께 하고 있는데, 기업과 정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좀 더 세심한 관심이 필요할 때"라고 덧붙였다.
◆ 서민물가와 직결되는 우유, 원유 가격 인상 하나
소비자가 낙농가와 유업계가 협상중인 우유 원유값 인상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우유는 서민물가와 직결되는 품목인데다, 우유 원유 가격을 인상하면 우유 원료를 사용하는 식품은 물론 관련 자영업까지 잇달아 가격을 올리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밀크+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이 발생해 서민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더팩트> 취재에 따르면 지난 9일 낙농가진흥회 가격협상 소위원회(낙농가 3명, 유업계 3명, 진흥회 1명)가 시작한 원유값 협상은 비교적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그동안 원유가격을 결정해오던 낙농가 중심의 '생산비연동제'와 다르게 올해 도입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유업계의 시장 수급 상황을 함께 고려한다. 원유값 인상 폭이 줄어들면 소득이 줄어들수 있다는 게 낙농가 측 의견이다.
낙농업계 관계자는 12일 <더팩트>에 "낙농가는 원유 생산비 절반 이상을 사료값으로 쓰고 있는데 올해도 사료값은 폭등 추세다. 오히려 원유값을 올려도 모자란 상황에 인상폭까지 줄어들면 낙농가의 고민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유업계 측은 "유가공 쪽도 불만이 없을 순 없다. 이제 막 협상이 시작된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 겠지만 원유값 인상율을 놓고 양측의 이해관계를 절충하는데 진통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우윳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 서민경제가 위협 받고 있다. 대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양 측 모두 말을 아꼈다.
유업계는 우유 원유 L당 69~104원 범위에서 인상 금액을 논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도 개편 전 (L당 104~127원)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줄어든 셈이다. 농림축산신품부에 따르면 올해부터 원유 가격은 음용유(마시는 우유)와 가공유(가공품을 만드는 우유)로 분류해 가격을 달리 적용하는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하는데, 통계청에서 발표한 우유 생산비와 시장 소비 상황을 고려해 원유값 조정을 결정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년도 음용유 사용량은 175만3000t으로 2021년보다 1.6%(172만5000t)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원유값은 정부가 정한 변동폭 1.7%기준을 초과하지 않아 '적정'(협상 범위 60~90%)을 적용 받는다.
'2022년 축산물생산비조사 결과'에 따르면 작년 낙농가의 우유 생산비는 리터당 959원으로 전년대비 13.7%(116원)올랐다. 따라서 올해 원유값 협상 범위는 116원의 적정(60~90%) 수준인 69~104원으로 책정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원유값 L당 996원에 협상 상한선을 적용하면 올해 원유값은 1065~1100원 사이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낙농가진흥회 가격협상 소위원회가 조정한 원유기본가격은 이사회(정부 2명, 소비자2명, 학계2명, 전문가2명) 과반수 의결을 거쳐 오는 8월 1일부터 인상분이 반영된다.
◆ '정부 뭐 했나?'... 소비자가 스스로 대안 마련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3년 낙농가와 유업체간 원유값 협상을 돕기 위함으로 '원유가격연동제'를 도입했다. 앞서 2002년 도입한 원유 쿼터제는 유가공업체들이 낙농가에서 정해진 양을 의무적으로 사야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도입될 당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안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몇년사이 수요가 줄어들면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우유 소비가 줄어도 유업계는 낙농가가 정해놓은 생산 원유량을 모두 구입해야만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는 올해 1월부터 '원유가격 차등제'란 새로운 카드를 꺼내들었다. 마시는 우유와 가공품을 만들기 위한 우유 원료를 구분하고, 물량의 가격을 각각 다르게 적용하며, 시장의 수급 상황까지 고려해 원료값을 정하겠다는 취지다.
일부 낙농가는 "사료값 인상과 시설 투자 등으로 사정이 녹록지 못한 낙농가의 입장은 고려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제도"라고 비판했다.
농림축산식품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원유 가격(L당 809원)에서 사료비가 차지한 비중은 54.9%인 반면, 지난 2000년 원유 가격(L당 436원)에서 사료비가 차지한 비중은 48.2%으로 오히려 적었다.
이은희 교수는 "소비자들은 이렇듯 취약한 낙농가의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고 매년 오르는 국내 우윳값 상승을 지켜보고만 있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소비자들은 저렴한 우유를 마시기 위해 해외에서 수입한 멸균 우유를 구입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비 패턴에 변화를 주고 있다. 우유 시장 공급과 수요를 스스로 조절해가고 있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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