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체제 100일…혁신 외친 전경련, 얼마나 달라졌나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취임 후 '소통 강화'
다양한 혁신안 발표…기업 반응 시큰둥
4대 그룹 가입·차기 회장 인선 여전히 안갯속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2월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사랑받는 경제단체를 만들겠다."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2월 23일 단체 수장으로 취임하면서 내세운 목표다. 그로부터 100일을 넘긴 현재, 전경련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긍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소통 강화 등 목표 달성을 위해 내놓은 여러 혁신안은 아직 구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는 평가다. 김병준 직무대행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 과제로 꼽히는 4대 그룹 재가입, 차기 회장 인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도 나오지 않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김병준 직무대행 취임 이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다양한 선언적 활동에 나섰다. 그중 대표적인 활동이 '소통' 프로그램 확대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과 동떨어진 조직은 존재 가치를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며 "다시 국민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은 국민 소통이고, 지름길 역시 소통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전경련은 한국 재계의 맏형 역할을 해왔지만, 2016년 불거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신뢰도에 큰 흠집을 남겼다. 특히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로 낙인찍혀 주요 행사에서 배제되는 이른바 '패싱 굴욕'을 겪었다. 이에 전경련은 조직 재건을 위한 내부 쇄신을 준비했고, 핵심 키워드로 '소통'을 제시한 것이다.

김병준 직무대행 취임 이후 가장 주목받은 소통 프로그램은 지난달 열린 '갓생(목표 달성을 위해 생산적이고 계획적인 바른 생활을 실천한다는 뜻의 MZ세대 유행어) 한끼'다.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 성격인 '갓생 한끼'는 박재욱 쏘카 대표, 노홍철 ㈜노홍철천재 대표 외에도 재계 총수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힘을 보태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전경련은 또 젊은 세대들로 구성된 청년 자문단을 꾸렸고, 최근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한다는 취지로 지난 9일 U20 월드컵 거리 응원전에 나서기도 했다. 오는 25일에는 MZ세대 300여 명과 서울 동대문에서 토크콘서트도 개최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김병준 회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여러 혁신안을 발표했지만, 유의미한 결과물을 이끌어낼 파격적인 수준은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더팩트 DB

다만 이러한 소통 프로그램을 개최하는 것이 기존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는 데 큰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든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단기성 이벤트 느낌이 강하다는 의견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올드한 이미지를 벗고 젊은 단체가 되겠다는 방향성은 옳다고 판단되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많은 긍정 사례가 더 쌓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경련은 소통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혁신 과제를 수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경제인협회로 단체명을 바꾸고, 산하 연구기관 한국경제연구원을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변화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해 정경유착을 막는 시스템을 갖추고, 다양성 측면에서 회원사를 대폭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신뢰 회복을 위해 단체를 갈아엎겠다는 각오다.

그러나 이를 놓고도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앞서 국정농단 사태를 겪은 뒤 지속해서 내놓은 혁신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설명이다. 재계 관계자는 "혁신안을 발표하는 것과 실제로 혁신에 성공하는 것은 다르지 않으냐. 전경련은 이전에도 혁신안을 발표했었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일종의 공약 발표만 이뤄진 상태다. 그 공약을 잘 지킬 것인지, 나아가 실효가 있을지 좀 더 지켜본 뒤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경련이 김병준 직무대행 체제에서 거둔 유의미한 성과는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과의 접점을 늘렸다는 점이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탈퇴한 4대 그룹의 재가입 여부는 전경련 위상 회복의 필수 조건으로 평가받는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일본 방문 당시 경제사절단 구성을 주도하며 4대 그룹 총수와 만났고, 이를 계기로 4대 그룹이 전경련 재가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현재 4대 그룹은 전경련 재가입설과 관련해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이에 8월 말로 예정된 김병준 직무대행 임기 내 재가입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결국, 재가입 논의에 불을 지피는 일은 차기 회장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차기 회장 인선에 난항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앞서 차기 회장을 선임하지 않고 김병준 직무대행 체제로 나서게 된 것도 후보자들이 모두 회장직에 거부 의사를 표했기 때문으로, 최근 정의선 회장 역시 회장 후보로 거론되자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김병준 직무대행은 "(차기 회장으로) 어떤 분을 모실지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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