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크다" vs "근거자료 공개" 시멘트값 인상 놓고 건설·레미콘·시멘트업계 갈등


쌍용C&E·성신양회 가격 인상 선제 통보
전기세 '나비효과'…유관업계 동반 들썩
갈등 심화 양상…공기·착공 타격 우려↑

전기요금 인상으로 시멘트사들이 가격 인상에 나선 가운데 건설업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한 공사현장에서 야간 타설이 진행 중인 모습. /권한일 기자

[더팩트ㅣ권한일 기자] 건설업계와 레미콘·시멘트업계가 시멘트 납품단가 추가 인상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서로 입장이 첨예하게 맞선 가운데 주요 시멘트사들이 연쇄적으로 가격 인상에 나설 경우 건설사들의 수익성 악화와 현장 공정 타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8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시멘트사들은 전기요금 인상 분을 가격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건설사들은 올릴 명분이 없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멘트업계와 건설업계가 시멘트 가격 인상 여부를 놓고 팽팽하게 맞서면서 공사기간 지연과 하도급사 경영 악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적자 커…인상 불가피" vs "원가 분석 자료 달라"

대형 시멘트사인 쌍용C&E와 성신양회가 전기세 인상에 따라 내달부터 시멘트 가격을 14% 인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이에 중대형 건설사 구매 실무진 모임인 대한건설자재직협의회(건자회)는 지난 7일 유연탄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진 점을 근거로 오히려 기존 단가 보다 25% 추가 인하를 요구했다. 아울러 건자회는 오는 16일까지 시멘트 원가 분석 근거자료 제출해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국내 벌크시멘트 가격은 지난 2021년 6월부터 인상이 본격화됐다. 2021년 6월 톤(t)당 7만5000원에서 7만8800원으로 올랐고 이후에도 꾸준히 올라 지난해 2월 9만3000원(18%), 9월 10만5000원(14%)으로 인상됐다.

쌍용C&E와 성신양회가 예고한대로 내달 12만 원 선까지 오를 경우, 2년 새 60% 가량 치솟는 셈이다. 다만 지난해까지는 국제 유연탄 가격 상승으로 시멘트값이 올랐지만 최근에는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수익성 악화를 주요 인상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실제로 전기요금은 유연탄과 함께 시멘트 제조 원가의 약 20~25%가량을 차지한다. 유연탄 등 원료를 녹이는 킬른(소성로)을 연중무휴로 24시간 내내 가동해야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공사현장에서 레미콘 믹서트럭들이 현장 진입을 위해 대기 중이다. /권한일 기자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은 작년 12.5% 인상에 이어 올 1분기 24.95% 올랐다. 지난달 한국전력의 전기요금 인상 발표로 2분기 인상분까지 더해지면 2021년 기준 전기요금 보다 50% 가량 오른 것이다.

최근 레미콘사에 가격인상을 통보한 쌍용C&E와 성신양회는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매출을 대폭 늘리고도 각각 17억 원, 49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을 거둔 타 시멘트사들도 2분기부터 실적하락 가능성이 높다는 분위기여서 시멘트값 연쇄 인상 가능성도 감지된다.

A 시멘트사 관계자는 "전기요금이 올라 킬른을 돌릴수록 적자가 커질 걱정이 늘고 있고 하반기에 전기료가 더 인상될 수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면서 "1분기에 수익은 거뒀지만 업계 분위기가 좋지 않고 통상 몇몇 업체가 단가를 올리면 수주내로 타 업체들도 가격을 올렸던 점을 감안할 때 전체적인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건설사들은 전기요금 인상분을 상쇄할 정도로 유연탄 가격이 떨어진 만큼 이번 시멘트가격 인상은 명분이 없다고 주장한다.

한국수입협회 국제원자재가격정보를 보면 국내 시멘트사들이 주로 수입하는 호주 유연탄 톤당 가격은 지난달 말 기준 135달러로 작년 9월 말(436달러)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 유연탄 시세전문 기관인 GCI 통계에선 호주산 뉴캐슬 유연탄(6000kcal/kg 기준)의 이달 현물거래가는 톤당 177~183달러로 지난해 5월 기록한 역대 최고가(463달러)보다 62% 하락했다.

B 건설사 관계자는 "시멘트사들은 유연탄 가격이 오르면 오른 대로 더 받겠다고 통보하지만 내릴 경우는 감감 무소식"이라며 "일방적으로 구매해야만 하는 입장에선 답답한 노릇"이라고 푸념했다.

이와 관련해 시멘트사들은 환율과 막대한 설비 보완 비용도 생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 시멘트사 관계자는 "유연탄 가격이 하락한 건 맞지만 원·달러 환율 급등과 최근 의무화되고 있는 탄소 중립을 위한 환경설비 투자 비용까지 생각하면 단가를 더 올려도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초 1200원 대에서 현재 1300원 초반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전기요금이 잇달아 오르면서 주요 자재값 동반 인상 가능성을 둘러싼 건설사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권한일 기자

◆공기 지연·착공 감소 가능성↑…하도급사 '새우등'

이처럼 두 업계간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중간 공급자인 레미콘 사들의 움직임에 따라 공사기간(공기) 지연과 하도급사 경영 악화 등 연쇄 반응이 올 수 있다는 긴장감도 커지고 있다.

현재 사업 구조상 시멘트업계가 단가를 올리면 이를 사들이는 레미콘 사들은 건설사들과 가격 협상을 다시 해야한다. 이 과정에서 협의가 시의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레미콘 공급이 차질이 빚어지거나 가격 인상에 부담을 느낀 원도급사(시공사)가 추가 착공을 미룰 경우 일감이 떨어진 하도급사들이 도산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건설 관련 단체 한 관계자는 <더팩트>에 "시멘트는 원청 지급자재라 전문건설사(하도급)들이 사는 경우가 드물고 공사기간(공기)이 연장되더라도 원청에서 이에 대한 조치를 내려주지만 시멘트·레미콘·시공사들 간 납품단가 협상이 원활하지 않으면 공급 등에 타격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추가 착공이 미뤄질 경우 자금력이 약한 하도급사들은 일감 부족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뜩이나 최근 업황 침체로 발주가 줄어든 상황에서 계획과 다른 공기 연장은 인력 배치 수정 등 업계에 부담을 더할 뿐더러 건설업 특성상 한가지 자재값이 치솟으면 여타 주요 자재값도 동시에 들썩이는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업계 간 갈등이 격화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국토교통부는 관련 업계의 의견을 모니터링하는 한편 시멘트사와 레미콘·건설사들 간 협의가 불발될 경우, 동반성장위원회 등을 통한 조정에 나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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