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지혜 기자] 건설 현장의 사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노동자의 안전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는 모습이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있으나 대형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의 사망사고는 여전하다. 특히 지난 22일에는 하루에만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안전관리에 총력을 기하며 사망사고를 줄여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노동계에서는 지난달 나온 중대재해법 판결이 솜방망이 처벌 수준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24분께 울산 울주군의 국도 31호선 공사 현장에서 디에스건설 협력업체 근로자 A(55)씨가 사망했다. 무게 2.8톤 옹벽이 자신의 방향으로 쓰러져 토사 사이에 끼어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어 오전 11시께는 세종시 장군면 고속국도 29호선 세종-안성 건설공사 현장에서 한화 건설 부문 협력업체 노동자 B(63)씨가 사망했다. B씨는 도로 개설을 위한 벌목 작업을 하던 중 쓰러지는 나무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
한화 건설부문에서는 이달 들어 2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지난 10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 기반시설 공사 현장에서 1명의 노동자가 카고크레인에서 떨어진 붐대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당일 오후 4시께는 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은 서울 강남구 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C(25)씨가 사망했다. C씨는 지하 2층 주차장에서 슬라브를 보강하기 위해 잭서포트(하중을 흡수 분산하는 가설재)를 설치하다가 7m 아래 지하 4층으로 추락했다.
이번 사고는 올해 롯데건설에서 발생한 2번째 중대재해다. 지난 2월 3일에는 서울의 한 복합시설 건설현장에서 지지대 해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 1명이 쓰러지는 지지대에 부딪혀 사망했다.
이들 사고 현장은 모두 공사금액이 50억 원 이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이 1년 넘게 시행되고 있지만, 대형 건설사를 포함한 건설업계 전반의 사망사고가 크게 감소하지는 않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건설현장 사망자는 5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대비 1명 줄었다. 이 기간 롯데건설, 서희건설, 중흥건설 등에서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후 2분기에 들어선 4~5월에도 사망사고는 이어지는 중이다. 이달 8일 두산에너빌리티 공사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고 이틀 뒤 한화 건설부문에서도 사망자가 나왔다. 지난달 11일에는 현대엔지니어링의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기업이 안전관리 관련 활동에 소흘한 것은 아니다. 중대재해법 도입과 함께 기업의 안전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며 건설사들은 각종 현장안전 관련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다만 현장에서 불시에 발생하는 중대재해는 기업뿐 아니라 개별 노동자들의 주의도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목소리다.
실제로 롯데건설은 지난 2016년 스마트 안전관리 앱을 도입했다. 이외에 안전체험관 개관 및 교육, 안전 통합관리지표, 위험성평가 AI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한화 건설부문 역시 현장을 모니터링하는 '고위험통합관제시스템(H-HIMS)'과 모바일 안전관리 시스템 'HS2E'을 도입했다. 또 양사 모두 현장 노동자 누구나 안전을 위해 작업을 멈출 수 있는 '작업 중지권'도 보장하고 있다.
사내 경영진에도 안전관리 전문가를 배치하고 있다. 롯데건설은 김진 상무가 안전보건경영실장을 겸임하며 한화 건설부문은 고강석 최고안전책임자(CSO)가 안전환경경영실을 총괄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안전 의식 제고를 위한 교육과 각종 캠페인, 효율적인 안전관리를 위한 시스템과 체계 등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조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도 "이에 불구하고 1명 단위로 발생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자 개인의 경각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 역시 "대다수 건설 현장에서 이뤄지는 작업이 고위험을 동반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며 "노동자들의 방심을 막기 위해 교육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강경 적용으로 사망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법을 적용할 수 있는 사망사고가 이어지고 있지만 판결 사례가 극소수인데다, 처벌 수준도 경미하다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관계자는 "지난달 나온 두 건의 중대재해법 판결에서 각각 1년과 1년 6개월의 양형이 선고됐다"며 "특히 지난달 26일 판결된 2번째 중대재해법 적용 사례는 반복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임에도 최저형량인 1년의 실형이 선고돼 산업안전보건법보다도 낮은 양형 사례가 될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에만 250건 이상의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 사고가 발생했으나 검찰의 기소는 14건에 불과했다"며 "사망사고가 잦았던 기업도 검찰의 기소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어 노동부와 검찰의 신속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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