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품질에 대해선 타협하지 않는다는 '초격차 정신'이 DNA에 녹아 있습니다."
이해진 르노코리아자동차 부산공장 본부장이 직접 한 말이다. 20여년 전 부산 낙동강 언저리에 삼성그룹과 협력해 세워진 르노 부산공장은 삼성그룹이 내세우는 품질 초격차 정신을 그대로 계승했다. 삼성 이름표를 뗀 지금도 여전히 타협하지 않는 품질로 '글로벌 탑티어' 생산공장으로 이름을 높이고 있다. <더팩트>는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을 직접 찾아 세계 최고수준의 고품질 차량을 양산하는 노하우를 들여다봤다.
지난 16일 오전 부산시 강서구 신호산업단지 내 위치한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을 자동차 기자단과 함께 방문했다. 르노 부산공장은 1997년 완공됐으며 면적 52만평의 부지에 차량 뿐만 아니라 엔진, 하이브리드차용 배터리 등 부품도 직접 생산하는 '풀스케일' 공장이다.
최대 생산능력은 3교대시 1시간에 60대씩 차량을 생산할 수 있지만, 현재는 2개조 근무로 시간당 45대씩 생산 중이다. 처음에는 삼성그룹, 닛산과 협력했으나 이후 닛산과의 협력을 지속했고, 최근에는 중국 지라 자동차와 협력해 신차를 준비 중에 있다.
이해진 본부장은 "차량과 회사 플랫폼이 계속 바뀌면서 부산공장 모든 임직원은 어디서든 잘 적응해서 단기간에 퍼포먼스를 내는 것을 가장 잘 할수 있게 됐다"면서 "특히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최대 4개 플랫폼 7개 모델을 생산했는데, 다른 경쟁사들이 하지 못하는 '다차종 혼류생산'을 할 수 있는 설비시스템과 인적자원의 능력과 경험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여러 플랫폼의 차종을 생산해 다소 어수선할 수 있는 분위기임에도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도 손꼽히는 고품질 차량을 생산하고 있다. 100대당 품질 부적합 건수는 지난 2020년 56대에서 지난해 39대로 전년 대비 30% 줄었다. 이는 전세계 르노자동차그룹 생산공장 중 2위 수준이다. 또 고객관점 차량 품질결함은 100대당 0.56건으로 그룹 내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현장직원을 비롯한 임직원 전체가 과거 삼성그룹과 함께하던 시절의 '삼성 DNA'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설명했다.
이해진 본부장은 "삼성그룹이 가진 품질에 대해선 타협하지 않는다는 정신, '초격차 정신'이 르노코리아 임직원 유전자로 남아 있다"면서 "그 유전자가 현장 일선의 작업자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다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본격 공장투어를 시작하자 배수관이나 가스관 등 다양한 파이프라인이 도로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공장 부지가 부산 낙동강 하구 갈대밭이었기에, 지반이 약하고 침하 우려가 있어 지상에 설치했다. 만에 하나 지반 침하가 발생하면 파이프에 손상이 가고, 가스나 폐수 등이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스탬핑(재단) 공장을 처음 방문했다. 스탬핑 공장은 포스코 등에서 오는 강판을 자르고 압착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하루 4만5300장의 블랭크(차체로 만들기 위한 원재료)를 생산한다. 재료는 철과 알루미늄이며, 2개의 프레스(압착) 설비와 블랭크를 보관하는 창고 등도 함께 있다.
공정은 코일 배달과 코일을 보관, '블랭킹 라인에서 철판을 자르고 세정하는 과정을 거친 뒤 자른 블랭크를 제품에 맞게 재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재단은 거대한 틀에 철판을 넣고 푹 찍어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무겁고 위험한 재료를 다루는만큼 공장 내부에 사람이 많지 않고, 대부분 기계가 구동해 제품을 찍어냈다.
이후 공정인 차체공장에서는 로봇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펼쳐졌다. 차체공장은 로봇이 총 679대 있으며 이중 용접로봇은 474기, 핸들링(이동)로봇은 205기가 있다. 핸들링로봇이 용접할 제품을 가져다주면, 용접로봇이 용접스팟에 용접을 하는 방식으로 공정이 이어졌다. 차량 한 대당 4000~5000곳의 용접스팟에 용접이 이뤄진다.
특이하게도 로봇 설비가 동작하는 곳에는 조명이 어두웠다. 사람이 있다면 밝은 조명이 필수지만 로봇이 일하는 곳에는 상대적으로 밝은 조명이 필요 없기에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조명을 어둡게 설정한 것이다. 지나온 공장 모두 지게차가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안전사고 우려로 거의 대부분 없애고, 무인운반로봇(AGV)으로 대체했다. AGV는 바닥에 그어진 선을 따라 사람 걷는 속도로 이동했다. 이동 경로 중 장애물이 있거나 사람이 튀어나올 경우 자동으로 멈췄다.
조립공장에서는 숙련된 사람의 비중이 높았다. 외부 차체나 도어 등 큼지막한 부품은 로봇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세밀한 배선 작업이나 내장재 장착과 같은 업무는 아직 사람의 정밀함을 따라올 수 없다는 것이 르노코리아측 설명이다. 혼류생산을 하면서 어떻게 헷갈리지 않고 조립할 수 있는지 매우 궁금했는데, 르노코리아는 다른 부품이 장착되는 일이 없도록 '이품방지시스템'을 도입했다. 아예 부품을 공급하는 단계서부터 메인서버에서 꼭 필요한 부품이 파렛트 단위로 배달되도록 만들었다. 작업자가 직접 부품을 찾지 않고 패키지로 배달된 부품을 그대로 조립하면 돼 오히려 편리해보였다.
공정 중간마다 체결품질보증시스템을 거쳐야 했다. 차량 한 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적게 잡아도 최소 4~5번 이상 검수하는 듯했다. 특히 인명에 영향을 미치는 브레이크와 조향, 화재 등은 제대로 작업하지 않고 넘어가면 전 라인이 멈추도록 설계돼 있다. 작업자가 작업을 누락하면, 해당 부분을 실시간으로 피드백하는 '리얼 피드백 시스템'도 적용된다. 반대로 라인이나 설비 문제로 공정에 차질을 빚을 때 작업자가 요청하는 '헬프콜' 시스템도 있어 요청시 관리자가 직접 투입된다. 작업자가 있는 모든 공정에는 태블릿PC가 설치돼 있다. 어느 공정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등 라인의 전반 상황을 모두 확인하며 작업할 수 있다.
최근 자동차전용운반선 운임이 상승하면서 르노코리아는 궁여지책의 일환으로 컨테이너에 차량을 적재해 수출하고 있다. 공장 한켠에 '이동식 도크'를 설치하고 '아르카나' 차량을 탑재했다. 8피트 컨테이너 기준 아르카타 차량 3대를 적재할 수 있다. 첫 차량은 후진해서 컨테이너 끝까지 넣고, 두번째 차량은 특수 사다리를 고정해 첫 번째 차량 위쪽으로 겹쳐 올린 뒤 결박시켰다. 마지막 차량은 정상 주차해 결박하고 문을 닿았다. 트레일러가 출발하기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이면 3대 적재가 완료됐다.
한편, 르노코리아 부산공장은 향후 전기차 생산을 준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빈 부지에 따로 전기차 전용 라인을 설치하지 않고, 지금처럼 혼류생산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이해진 본부장은 "확정적인 것은 없지만 세계적인 흐름상 전기차로 전환하긴 할 계획이다"면서 "공정 측면에서 전기차는 무겁고 폭이 넓으며, 이를 보완하려고 알루미늄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부분을 감안해서도 혼류생산을 할 수 있도록 라인 구성에 대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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