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임산부는 기본급만?" 롯데건설, 임신 근로자 근무 조정 '논란'


사측 "임산부, 3시 퇴근…기본급만 지급"
월급여 20~30%가량 줄어…내부 반발 고조

롯데건설이 최근 전직원들에게 공지한 임신근로자 임신 사실 통보 절차 제도가 실제 임금 삭감으로 이어져 논란이 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권한일 기자] 롯데건설이 임신한 근로자의 근무 시간을 줄여주는 대신 기본급만 주겠다고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국가적 문제로 대두되는 상황에서 임신·출산 근로자들의 퇴근 시간을 일괄 조정하고 시간외수당과 휴일근무수당 등을 미지급한다는 강제 지침 탓에 롯데건설 직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회사 측은 임산부들의 과로를 막고 건강한 출산과 육아를 위한 배려라는 입장이다.

8일 <더팩트> 취재 결과, 롯데건설은 최근 여성 근로자들의 시간외근무를 일괄 제외하는 대신 시간외수당과 휴일근무수당을 미지급한다는 내용이 담긴 '임신근로자 임신 사실 통보 절차 제도'를 전직원들에게 공지했다.

<더팩트>가 단독 입수한 공문을 보면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인 여성 근로자는 평일 오후 3시 또는 5시(기본급 동일)에 퇴근해야 하고 휴일 근무는 불가하다고 못 박았다. 또 출산 전후 휴가와 육아휴직을 총 1년 미만으로 사용하면 복직 후(출산 후 만 1년이 되는 시점까지) 평일 5시에 퇴근해야 하고 휴일 근무는 불가하다고 명시했다.

위 사례일 경우, 총급여에서 기본급은 유지되지만 시간외수당과 휴일근무수당은 미지급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울러 임신 당사자는 임신 확인서를 첨부해 그 사실을 즉시 보고해야 하고 해당 통보 절차를 위반해 노동법 리스크가 발생하면 '부서장 엄중 문책 예정'이라는 지침도 함께 하달됐다.

회사 측은 적용 대상을 '임신부 협조전 신청시'로 한정했지만 앞서 하달된 '임신 즉시 보고(협조전 인사팀 송부)' 지침상 임신 확인 후 즉각 적용받게 되는 셈이다.

사측은 근로기준법 제74조 제5항(임신 중인 근로자 시간외근로 금지)과 동법 제116조 1항(500만 원 이하 과태료), 동법 제110조 1호(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 등을 처벌 규정으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 회사가 고정OT(fixed Over Time pay)를 적용하고 있어 임신으로 초과 근무에서 제외되는 여직원은 기존 급여에서 시간외수당과 휴일 수당 등을 뺀 기본급만 받게 된다는 점이다. 기존 급여 산정 방식을 감안할 때 임신근로자는 약 2년간, 기존 급여에서 20~30% 가량의 수당을 제외한 액수만 받게 된다.

고정OT란 기본급에 고정적인 시간외수당(연장·야간·휴일 수당)으로 직원들의 총급여가 책정되는 급여제도를 의미한다.

롯데건설이 발표한 임신근로자 근무 지침이 내부 직원들의 거센 반발과 타사 근로자들의 비난으로 이어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회사 안팎에선 "임금제의 맹점을 사측이 파고들어, 결과적으로 임산부의 급여가 강제로 삭감된다"는 주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롯데건설이 최근 사내망에 공지한 임신근로자 임신 사실 통보 절차 제도 안내 공문. /독자 제공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 등에는 '롯데건설은 수십 년간 고정 야근 수당 외에 추가 근로에 대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임산부는 2년간 기존 고정 야근 수당을 뺀다니 황당하다', '강제로 칼퇴(정시퇴근) 시키고 시간외수당도 못주겠다는 엄포'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일부는 '롯데 덕분에 안 그래도 낮은 출산율이 더 떨어지겠다', '임신해서 단축한다고 연봉을 후려치냐', '회사에 임산부가 얼마나 많다고 그걸 아끼냐' 등 원색적인 비난도 줄을 잇고 있다.

이와 관련해 모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더팩트>에 "대형 사업장에선 일반적으로 임산부의 정시퇴근을 위해 각 부서장 등이 업무 배정에 신경 쓰는 편이지만 일괄적으로 임산부들의 근무 시간을 조정하고 급여에 반영하는 사례는 이례적"이라면서 "다만 임산부 본인 요청 등이 있으면 단축 근무를 적용하고 급여에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법령해석을 보면, 법제처 누리집에 공개된 '임신 중인 여성 근로자에 금지되는 시간외근로의 기준 시간'에 대한 질의응답에서는 "근로기준법에서 명시된 임신근로자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주는 '과중한 근로' 여부는 모든 근로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정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만일 소정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시간외 근로 여부를 판단한다면 동일한 임신근로자임에도 각자의 소정근로시간에 따라 임신근로자의 건강 보호에 대한 법 적용기준이 달라지는 불합리한 결과가 초래된다"고 돼 있다.

실제로 근로기준법 제50조상 '법정 근로시간'은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이는 롯데건설 사측이 공지한 임산부 단축 근로 시간과 일치한다.

반면 근로기준법 제74조(임산부의 보호)에선 "사용자는 임신 후 12주 이내 또는 36주 이후에 있는 여성 근로자가 1일 2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한다. 다만 1일 근로시간이 8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해 1일 근로시간이 6시간이 되도록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할 수 있다. 사용자는 제7항에 따른 근로시간 단축을 이유로 해당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했다.

또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제19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근로자가 만 8세 이하 또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의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근로 시간의 단축을 신청하는 경우, 이를 허용해야 하고 육아기 근로 시간 단축을 한 근로자의 근로조건은 사업주와 그 근로자 간에 서면으로 정한다"고 적혀있다.

이처럼 법령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상위법에 저촉되는 부분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류순건 노무사는 "상위법인 근로기준법상, 임신 근로자가 신청하는 경우에 한해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단축된 근로시간에 대해서는 기존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면서 "남녀평등과 양립 법률에서도 임산부의 근로조건 불이익 처분을 못하게 돼 있는 만큼 (공지 내용은)임산부 보호보다 차별의 성격이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회사 측은 임산부의 과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사측의 노력이고 임금 삭감이나 비용 절감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임신 초기에는 임신 사실을 본인만 알고 내부에서는 잘 알 수 없기 때문에 전체 공지로 안내한 부분이고 매년 알리는 사항"이라면서 "임산부 본인은 물론 해당 부서장도 임산부 건강을 잘 관리해 달라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측은 이어 "임산부는 법적으로 초과 근무를 할 수 없어, 이를 공식화했고 당연히 초과 수당도 미지급된다"면서 "자사는 고정OT를 적용 중이고 임금 삭감이나 비용 절감 차원이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제도 보완과 임산부 복지 향상을 위한 내부 논의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롯데건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지난 연말 기준 전체 임직원(3903명) 중 여성은 10.5%인 410명에 불과하다. 여직원 평균 근속 연수는 5.3년으로 남성(11.3년)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롯데건설은 2015년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았다. 이후 2018년부터는 회사 내 여성 인재 양성 교육을 하는 등 여성 친화 기업임을 대내외에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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