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지혜 기자]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 약세가 이어지며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계약을 갱신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사 비용 등을 고려해 떨어진 전세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계약을 연장하는 임차인들이 있어서다.
2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기존 전세 보증금이 시세보다 높더라도 이사하지 않고 계약을 갱신하는 사례가 나오면서 전세가격 하락세의 방어선이 형성되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A 씨(46)는 지난 2021년 3월 84㎡ 아파트를 5억8000만 원에 처음 전세 계약했다. 올해 들어 같은 단지의 전세 계약은 2억9000만~5억 원 사이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A 씨는 지난달 집주인과 협의해 시세보다 조금 높은 5억2000만 원에 계약을 연장했다.
A 씨는 "전세가격이 많이 내렸지만 복비와 이사비, 전입신고 등 각종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 보증금을 낮춰 재계약했다"며 "새로 전세를 구하면 더 저렴한 매물을 찾을 수 있겠지만 2년마다 이사는 지나치게 번거로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남구 일원동 '래미안개포루체하임' 전용면적 101㎡는 지난달 10일 13억5000만 원에 전세 갱신계약됐다. 종전 보증금 17억 원보다 3억5000만 원 내려 갱신한 거래다. 그러나 이후 23일과 25일 같은 단지에서 12억6000만 원, 9억5000만 원 수준으로 신규 계약이 이뤄졌다.
마포구 '마포프레스티지자이' 전용면적 114㎡ 역시 올해 12억5000만~14억7000만 원 선에서 갱신 계약이 체결됐지만 신규 계약은 8억~12억5000만 원 사이에서 전세가격이 형성됐다. 갱신 계약보다 낮은 가격에 신규 전세거래가 나온 것이다.
이사 과정에서의 각종 비용 등을 이유로 기존 보증금이 시세보다 1~2억 원가량 높더라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임차인들이 있다는 것이 현지 부동산 업계의 설명이다.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아파트 전세가격이 내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고민하는 문의가 종종 있다"며 "차이가 크지 않은 경우 임차인들은 이사비용과 스트레스 대신 계약을 유지하려 하고, 임대인도 이를 고려해 신규로 매물을 내놓을 때보다 3000~5000만 원 높은 보증금으로 협의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아파트 전세가격은 지난 2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2021년 4월 2억5968만 원이던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같은 해 12월 3억1952만 원에서 고점을 찍었다. 이후 전세가격은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꾸준히 하락해 지난달 다시 2억5965만 원 수준으로 내렸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난해 2중, 3중 가격을 형성하게 했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올해는 시세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며 "부동산 가격 급등기에 다양한 가격 층이 형성됐던 만큼 각 계약 건에 따라 현재 시세보다 높고 낮은 사례가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계약갱신청구권이 당초 임차인의 주거안정을 위해 마련된 제도지만 최근같은 전세가격 하락 시기에는 큰 의미가 없다"며 "지난 2021년 하반기부터 전세가격이 급등했던 만큼, 향후 계약을 갱신하지 않으려는 임차인들이 늘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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