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의 사명 변경 움직임이 지속되고 있다. 여러 사업 분야로의 진출과 인수합병 과정에서의 업종 변경 등이 이유로 꼽히고 있는데, 크게는 '미래 비전'과 관련한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할 필요성을 느낀 기업들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생존을 위한 절실함이 묻어난 결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새로운 사명을 살펴보면, 특정 사업을 상징하는 단어를 빼고, 지속 성장의 기업 가치를 강조하는 단어를 포함한 것이 특징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친환경 공정 장비 전문기업 지앤비에스엔지니어링은 지난 12일 사명을 '지앤비에스에코'로 변경했다. 회사는 주력 사업 반도체, 태양광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유해가스 처리 장비 스크러버 제조에 더해 신재생에너지(연료전지·석탄액화가스화·수소 등), 폐기물 수집·처리, 전기차 충전, 폐전지 재활용 등 신규 사업을 새롭게 추진할 계획이다.
이는 친환경 사업 분야 확대를 통해 토탈 친환경 장비 전문회사로 탈바꿈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지앤비에스에코 관계자는 "새 사명 변경과 함께 기존 반도체, 태양광 분야를 넘어 친환경 분야로의 전방위 확장을 통한 종합 친환경 장비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며 "최근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전 세계 탄소중립 기조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친환경 사업 확대를 통해 실적 모멘텀 강화뿐 아니라 기업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지앤비에스에코와 같이 사명을 변경하는 사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유행이 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마찬가지로 기업의 잔존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구체화하는 목적으로 이름을 바꾸고 있다. 대다수 기업이 미래 신사업에 '올인'하는 추세와 맞물린 현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해양 모빌리티 기업으로 전환하며 50년간 사용하던 중공업을 버리고 HD현대로 이름을 바꾼 현대중공업지주가 있다. 최근의 경우 포스코케미칼, 롯데제과, 한화테크윈 등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들은 지난달 주주총회(주총)를 거쳐 사명 변경안을 확정했다.
먼저 포스코케미칼은 지난달 20일 주총에서 '포스코퓨처엠'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포스코퓨처엠은 '경쟁력 있는 소재(Materials)를 통해 세상의 변화(Movement)를 이끌며 풍요로운 미래(Future)를 만들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Management)하겠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자원 빈국인 한국에서 포스코그룹이 '제철보국'의 정신으로 국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 것처럼, 이제는 포스코퓨처엠을 중심으로 국가가 필요한 최고 품질의 소재를 공급해 국가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소재보국'의 대업을 이뤄나간다는 다짐도 함축했다.
지난달 롯데제과의 사명 변경은 경제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56년간 유지했던 사명을 '롯데웰푸드'로 과감히 바꿨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전적 결정을 내린 건 '제과 기업'이 아닌 글로벌 종합 식품 기업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롯데웰푸드는 "영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생애주기에 맞춘 다양한 제품들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밖에 한화테크윈이 기존 영위해온 영상 보안 솔루션에서 더 나아가 차세대 비전 솔루션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지난달 '한화비전'으로 사명을 바꿨다.
사명 변경 붐이 일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건설 업계다. 앞다퉈 '건설'을 버리고 환경과 에너지 분야를 강조하고 있다. 지난달 포스코건설은 에코(Eco)와 챌린지(Challenge)를 앞세워 포스코이앤씨로 사명을 바꿨다. 신영건설도 "단순 시공이 아닌 부동산 개발 종합 건설사로 거듭나겠다"며 신영씨앤디로 사명을 변경했다. 앞서 SK건설은 2021년 친환경 사업 부문을 신설하고 에너지 기술 부문을 신에너지 사업 부문으로 개편하는 등 기업 체질을 바꾸면서 사명 또한 SK에코플랜트로 바꿨다.
업계에서는 기업들의 사명 변경을 놓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기존 위상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리스크를 감수한 것이다. 수십 년간 사명을 유지해온 대기업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업계 관계자는 "잇단 사명 변경은 사업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혁신을 통해 기회를 만들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기업들의 절실함으로도 읽힌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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