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정유 업계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어서다. 국제유가 하락에 이어 수익성 지표인 정제마진까지 약세를 이어가고 있어 당분간 시장의 침체 분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5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이 지난해와 상반된 1분기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관측된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5000억 원 중반대로 한 달 전과 비교하면 1000억 원 이상 떨어졌다. 유가 하락의 영향이 지속 반영되고 있는 데다, 경기 침체 장기화 속에서 제품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66.6% 증가한 78조569억 원, 영업이익은 129.6% 급증한 3조9989억 원이었다. 1분기만 놓고 보더라도 현재 전망치의 두 배 이상인 1조6491억 원을 기록했다. 1년 만에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된 셈이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이 호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건 유가와 정제마진 초강세 기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회사 측도 "유가 상승과 석유 제품 수요 증가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 석유 제품 수출 물량의 증가로 실적이 대폭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이러한 긍정적 요인이 사라진 현시점에서 호실적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100달러를 웃돌았다. 주요 산유국들의 추가 감산 조치로 인해 최근 급등 조짐을 나타내고 있더라도 올해 들어 70~80달러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6월 배럴당 24달러대까지 치솟았던 정제마진의 경우 올해 1월 10달러대를 기록한 후 7~8달러대에서 크게 반등하지 못하는 등 더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등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값으로, 정유사들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SK이노베이션 외 다른 정유사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에쓰오일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5000억 원 초반대로 지난해 1분기 1조3320억 원보다 6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별도 전망치가 나오지 않은 비상장사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역시 지난해보다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1분기, 전년 대비 각각 70%가량 오른 영업이익 1조812억 원, 7045억 원을 기록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1분기 정유사 실적 눈높이를 대폭 낮춰야 한다"며 "그동안 시장에서 기대했던 중국의 리오프닝에 따른 석유 제품 수요 증가가 뚜렷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실적 부진은 이미 지난해 말부터 예견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정유사들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다. 4분기부터 업황이 악화됨에 따라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사가 일제히 적자로 돌아섰다. SK이노베이션 6833억 원, 에쓰오일 1575억 원, GS칼텍스 514억 원 등 3사의 지난해 4분기 손실 규모는 9000억 원에 달한다.
최대 관심사는 실적 부진 흐름이 지난해 4분기,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까지 계속될지 여부다. 주요 산유국들의 깜짝 추가 감산으로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수요 개선세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4분기보다는 개선되겠지만, 경기 변동성에 따라 추후 반등 시점을 예상하기 어렵다"며 "신규 사업의 안정적 운영과 기존 사업 가치 극대화를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는 7일 삼성전자가 1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대기업 실적 발표 시즌이 개막한다. 경기 침체에도 시장 성장의 수혜를 보는 일부 업계를 제외하고는 정유사들과 같이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 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해 14조1214억 원과 비교해 94.9% 급감한 7201억 원으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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