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경현 기자] 유리천장이 높은 것으로 유명한 증권가에서 여성 임원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사회 내 성별 다양성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강화를 위한 조처라지만, 법적 기준 충족만을 위한 처사일 수 있어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지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신증권과 메리츠증권 등이 올해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 선임에 나섰다.

지난 24일 주주총회에서 대신증권은 조선영 광운학원 이사장을 사내 첫 여성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메리츠증권도 지난 17일 2022사업연도 정기 주총에서 처음으로 여성 사외이사인 양재선 이사를 선임했다. 양 사외이사는 법무법인 율촌에서 외국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22일 진행한 주총에서 주소현 이화여자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의 사외이사 합류를 결정했다. 주 사외이사는 한국 금융소비자학회 회장과 소비자정책위원회위원으로 역임했다.

올해 여성 사외이사를 재선임한 곳도 여럿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이젬마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교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중임했다. NH투자증권은 홍은주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를, 키움증권은 최선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를 재선임했다. 지난해에는 삼성증권이 사내 최초 여성 사외이사로 최혜리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했다.

한화투자증권은 이사회 5명 중 2명을 여성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달 문여정 카이스트 바이오혁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선우혜정 한국방송통신대 경영학과장의 사외이사 재선임 안건에 대해 결의했다.

증권가가 성과주의와 세대교체를 내세우면서 최근 2년 새 ESG 경영 강화에 나서자 견고하던 유리천장에도 금이 가고 있다.

지난해 8월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의식한 처사로도 분석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의 상장 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별로만 구성할 수 없다.

여성 사외이사의 잇따른 발탁이 증권가 전반으로 번져 사내이사 선임이나 여성 비율의 유의미한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는 시각도 나온다. 자본시장법 피하기를 위한 '보여주기식' 선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 자료에 따르면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기업 120곳이 이달 주총에서 신규 선임하는 사외이사 중 여성 비중은 약 43%였다. 그러나 신규 선임 사내이사의 여성 비중은 2.7%에 그쳤다.

'법망 피하기'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남성 위주 인사가 강한 증권가의 경우 분위기 변화가 타 산업군보다 더딜 수 있다. 대형 증권사가 개정안을 따르지 않아도 별도의 처벌규정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이사회 전원이 남성으로 구성됐던 메리츠증권에도 관련 제재가 따르지 않았다.

다만, 지배구조 측면에서 이사회 구성원의 다양성이 요구되는 추세가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기관투자자나 자문기관이 이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미국 IB(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투자기업 이사회가 여성 이사를 두지 않는 경우 이사회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원칙이 있다. 기업 ESG 평가기관들도 이사회 내 여성 임원 여부 등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전문성 차원에서도, ESG 중 'G' 평가 요소를 위해서라도 증권가의 여성 임원의 선임은 늘어날 수 있다. 다만 사내이사보다 사외이사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여성 비율을 높이는 분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리천장이 실제로 깨지기 위해선 사내, 사외이사를 막론하고 디지털·소비자보호 등 전문가가 필요한 영역에 여성 이사 배치가 자연스러워져야 하며 여성들의 참여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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