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사모펀드(PEF) 운용사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를 필두로 하는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교보생명 간 '풋옵션' 분쟁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교보생명의 IPO(기업공개)를 좌절시킨 데 이어 지주사 전환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 교보생명 "내년 하반기 지주사 출범"
교보생명은 지난달 8일 지주체제로의 전환 계획을 공식화했다. 오는 7~8월 중으로 이사회 의결과 주주총회 특별결의, 금융당국 지주사 인가 승인, 지주사 설립등기 등의 절차를 거쳐 이르면 내년 하반기 중 지주사를 출범시킨다는 계획이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사를 신설한 후 교보생명을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식의 안건을 주총에 올릴 예정이다.
다만 교보생명이 지주사 전환을 위한 주총 문턱을 넘을지는 미지수다. 주총 결의 요건은 출석한 주주 의결권 3분의 2 이상 찬성과 발행주식총수의 3분의 1 이상 찬성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과 사측이 우호적 지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 교보생명 지분은 최대주주인 신창재 회장(33.78%) 및 특수관계인이 36.91%를 들고 있다. 2대 주주는 풋옵션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어피니티 컨소시엄(24.01%)이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IMM PE, 베어링 PE, 싱가포르투자청 등으로 구성된다. 이밖에 △코세어 캐피탈(9.79%) △캐나다 온타리오교직원연금펀드(OTPP) 7.62% △한국수출입은행 5.85% △어펄마 캐피탈 5.33% 등이 주요 주주로 있다.
어피니티 컨소시엄은 지난 2012년 4월 대우인터내셔널이 들고 있던 지분 24.01%를 주당 24만5000원에 사들였다. 매수액은 총 1조2054억 원 규모다. 당시 계약에는 교보생명이 3년 이내(2015년 9월) 증권시장에 상장하지 않을 경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게 주식을 되팔 수 있다는 내용의 풋옵션 조항이 포함됐다.
◆ 풋옵션이 불러온 분쟁…2심도 어피니티 '승'
하지만 교보생명의 상장은 계속해 미뤄졌다. 교보생명은 2015년 IPO를 시도했으나 회계제도 변경, 실적 악화 등으로 생보사들의 주가가 낮아지면 상장 문턱에서 좌절을 맛봤다. 결국 어피니티 측은 2018년 10월 풋옵션을 행사, 신 회장에게 자신들의 지분을 사달라고 했다. 그러나 신 회장 측은 어피니티가 요구한 주당 40만9912원이 터무니없이 높다며 풋옵션 행사를 거부했고, 이것이 분쟁의 시발점이 됐다. 어피니티는 2019년 3월 ICC(국제상업회의소)에 중재를 신청했다.
교보생명은 2020년 3월 어피니티와 안진회계법인을 검찰에 고발하며 맞불을 놨다. 교보생명은 풋옵션의 공정 시장 가치(FMV)를 산출할 때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평가 기준일을 어피니티에 유리하게끔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중재 신청에 대해서는 교보생명이 우위를 점했다. ICC는 "어피니티의 풋옵션 행사는 유효하나, 신 회장이 해당 가격으로 매수할 의무가 없다"고 1심 결론을 냈다. 다만 교보생명의 고발 건은 힘을 잃었다. 지난해 2월 1심에서 재판부는 회계사 3인과 어피니티 소속 법인 관계자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들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공방이 지속하는 와중에 교보생명은 또 한 차례 IPO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한국거래소는 작년 7월 유가증권시장 상장공시위원회를 열어 교보생명의 상장 예비 심사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미승인 결론을 내렸다. 2021년 12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지 약 6개월 만이다. 신 회장이 직접 상장 필요성과 당위성, 중재 소송에서의 승소 등을 피력했지만 한국거래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달 3일 2심에서도 어피니티가 승기를 들었다. 재판부는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딜로이트안진 임원 2명에게 1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딜로이트안진 직원 1명과 어피니티 임직원 2명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어피니티는 '투자자들의 풋옵션 권리 유효'에 초점을 맞추며 지난해 2월 ICC에 2차 중재를 신청, 이에 대한 우호적인 결과도 기다리는 중이다.
◆ 교보생명, 배당금까지 대폭 축소…"심기 불편할 것"
다만 교보생명은 목표대로 사업포트폴리오 다변화,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을 일궈낼 수 있는 지주사 전환을 해내겠다고 다짐 중이다. 교보생명 측은 "지주사 설립은 위기와 기회가 혼재하는 복합 불확실성 환경 하에서 현재의 교보생명 중심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장기적 관점의 그룹 성장전략 수립 및 추진이 가능한 새로운 지배구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금융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추진은 시작 단계에 있다. 어피니티 측의 동의 및 협조가 꼭 필요한 상황이라 관련 사안에 집중하고 있다. 어피니티를 비롯해 다른 주주들도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도 부연했다.
한편, 어피니티 측은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며 말을 삼가고 있다. 코세어 캐피탈이나 OTPP, 한국수출입은행 등 여타 FI들 또한 지주사 전환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입장을 정하지 않은 상태여서 향후 주총에서의 표 대결 결과는 점치기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어피니티는 이미 많은 법률 비용을 지불한 상황이다. 풋옵션 가격이 낮춰진다면 투자 원금만 건질 수 있기 때문에 분쟁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며 "더욱이 교보생명이 배당금까지 대폭 줄인 상황이라 어피니티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교보생명의 지주사 전환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풀이했다.
교보생명은 지난 3일 이사회를 열고 주당배당금을 500원으로 결정했다. 배당총액은 512억5000만 원이다. 이번 배당은 전년 주당배당금 1500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배당성향도 38.8%에서 13%로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