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윤정원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을 필두로 독과점 기업들을 정조준하고 나선 가운데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가 차기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업비트는 국내 시장 점유율 80%가 넘는 업계 1위 거래소로, 과점을 넘어 독식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 은행권 '돈잔치'가 불어온 역풍…가상자산 거래소도 '긴장'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들의 '돈잔치'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실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은행권의 성과급 등을 언급하며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은행은 공공재"라며, 국민 경제 발전에 이바지해야 하는 사회적 역할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지시는 최근 고금리 여파로 서민과 중소기업의 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난 반면, 은행권은 역대 최고치 실적에도 소비자 서비스와 사회공헌 등에 소홀하다는 여론이 크기 때문이었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경우 지난해 16조 원에 육박하는 당기순이익을 내고 배당금과 퇴직금을 늘리며 여론의 눈총을 샀다.
윤 대통령은 '돈잔치' 언급 이틀 뒤인 15일에도 재차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은 금융뿐만 아니라 통신업도 칼날의 끝에 섰다. 윤 대통령은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과점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정부의 특허사업"이라며 "많이 어려운 서민 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정부 차원의 제도개선 노력과 함께 업계에서도 물가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쓴소리' 여파는 컸다. 공정거래위원회까지 지난달 27일부로 금융·통신업계 불공정 행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은행권과 이통통신 3사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현장조사에 돌입했다. 공정위는 현장조사에서 문제점이 발견되면 검찰 고발 등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돈잔치', '독과점'을 문제 삼으면서 보험, 카드업계도 긴장모드에 들어갔다. 가상자산 업계 역시 우려감을 지울 수는 없게 됐다. 단연 불안감이 큰 곳은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가상자산 거래소 점유율은 △업비트 약 86% △빗썸 약 9% △코인원 약 4% △코빗 약 0.2% △고팍스 약 0.2% 등이다.
◆ 카카오 '먹통'에 위믹스 상폐까지…업비트, 독과점 논란 지속
업비트가 독과점으로 시장의 비난을 산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빗썸과 양대산맥을 구축하던 업비트는 지난 2020년 6월 인터넷 전문은행 케이뱅크와 실명계좌 제휴를 맺으면서 선두 체제를 그려 나갔다. 모바일 중심 비대면 계좌를 만들 수 있게 되면서 2030 젋은층의 업비트 선호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른바 '불장'이 시작되며 여타 세대의 신규 이용자 유입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당시 여타 거래소보다 낮은 수수료(0.05%)도 인기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업비트의 독과점 양상에 정치권과 업계 내 반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독과점 논란이 눈에 띄게 커진 것은 지난해 10월 카카오톡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다. 당시 경기도 성남시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톡을 비롯한 입주 기업 서비스 장애가 이어졌다. 업비트 접속 주요 수단이 카카오톡을 통한 로그인이었던 탓에 업비트에 대한 불만도 고조됐다. 결국 같은 달 24일 이석우 업비트 대표는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도 불려가 보상을 약속했다.
업비트 독과점에 따른 불만은 위메이드 코인 '위믹스(WEMIX)' 상장폐지 때도 일었다. 지난해 12월 업비트에서는 위믹스를 거래할 수 없게 됐다. 위믹스의 상장폐지는 디지털 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에서 정해진 사안이었다. DAXA는 지난해 10월 공동으로 위믹스를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고, 11월 거래지원 종료를 결정했다. 거래소 측은 위믹스가 토큰을 과다 유통했고, 투자자들에게 미흡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다며 상장 폐지의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위메이드 측에서는 가이드라인의 부재, 진행절차의 불투명성 등을 들며 상황의 부당함을 토로했다. 당시 위메이드 측은 DAXA 회원사인 4대 가상자산거래소 중 유일하게 유통계획을 제출한 업비트가 '슈퍼 갑질'을 한다고 지적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더욱이 상폐 결정이 내려진지 불과 2개월 만인 지난달 위믹스가 코인원에 재상장되면서 업비트, 두나무를 주축으로 하는 닥사가 독점적 지위를 강화해 오히려 시장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 해외 거래소와 직접 경쟁이라지만…입지 다지기 '아직'
다만 업비트 측은 독과점에 대해서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업비트 관계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가상자산은 전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의 가격이 연동돼 함께 움직인다. 그 말은 하나의 시장이라는 얘기다. 투자자들이 조금이라도 싼 곳에서 사서, 상대적으로 비싼 곳에서 파는 구조"라고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업비트 관계자는 "가상자산은 국경이 없이 오고가는데, 시장 점유율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로 한정해서 계산하는 건 시장 특성과 전혀 맞지 않다. 가상자산은 은행, 통신 같은 지역에 종속되는 시장이 아니다. 한국인이 클릭 한번으로 외국 거래소에 가서 가상자산을 거래하고 있는데, 국내 거래소간 시장 점유율을 논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국내 거래소들은 해외 거래소와 직접 경쟁하고 있다. 이용자가 원하면 언제든 바로 다른 거래소를 이용할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 FTX가 파산했을 때, 많은 한국인이 피해를 봤다. 해외 거래소 이용하는 한국이 그만큼 많다는 걸 증명한다"고 부연했다.
시장에서는 업비트가 아직 해외와 견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 평가하는 업비트의 순위도 그리 높지 않다. 최근 프랑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사 카이코는 올해 1분기 기준 37개 세계 가상자산 거래소 가운데 업비트는 71점(B등급)으로 13위에 이름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1위인 미국 코인베이스(88점‧AA등급)와 견주면 격차가 크다. 업비트는 국내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코빗(72점‧10위‧A등급)과 빗썸(72점‧12위‧A등급)보다도 뒤처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비트의 수수료는 빗썸(0.25%) 등과 견주면 상당히 낮지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과점을 논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기준을 차치하더라도 시장에 대한 파급력이 독과점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풀이했다.
한편,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누적 매출액은 1조570억 원 수준이다. 이 가운데 수수료 매출은 1조365억 원으로 98.07%를 차지했다. 동기간 누적 영업이익은 7348억 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