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보증금 1000만 원 떼이겠어?"…비싸도 월세 찾는 세입자들


전세시장 불안에 월세 선호현상 지속

깡통전세와 전세사기 등 전세시장 불안이 확산하며 가격이 높더라도 월세를 부담하려는 임차인이 늘고 있다. 서울의 주택가 모습. /이동률 기자

[더팩트ㅣ최지혜 기자] # 사회초년생 A 씨(28)는 최근 보증금 1000만 원, 월세 65만 원에 자취방을 계약했다. 보증금이 적어 전세사기 위험이 비교적 낮다고 판단해 일종의 '안전비용'으로서 높은 월세 가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세 매물도 고려했지만 1억 원이 넘는 대출이 필요한데다 이자부담도 만만치 않고, 앞으로 빌라 전세가격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에 당분간 월세 생활을 하기로 했다.

전세시장 불안으로 임차인들이 가급적 보증금을 줄이려는 모습이다. 월세가격 급등으로 부담이 크지만 보증금을 낮춰 전세사고 위험과 이자부담을 덜기 위해서다.

23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최근 월세 보증금은 떨어졌지만 다달이 내는 월세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21년 12월 2900만 원대를 돌파한 뒤 꾸준히 유지되던 전국 연립·다세대주택의 평균 월세계약 보증금은 지난달 2894만 원으로 떨어졌다. 약 13개월 만에 다시 2800만 원대로 내린 것이다.

서울 연립·다세대주택의 평균 월세 보증금도 5734만 원을 기록하며 전월(5749만 원) 대비 내렸다. 반면 같은 기간 평균 월세가격은 약 62만9000원으로 전월(62만6000원)보다 올랐다.

월세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이어지는 것은 보증금을 가급적 낮추려는 현상의 영향이다. A 씨는 "첫 부동산 임대차 계약인데다 최근 전세사기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청년들이 많다는 소식에 불안해 보증금이 낮은 집을 선택했다"면서도 "월세가 월급의 4분의 1을 차지하지만 설마 1000만 원을 떼이겠나 싶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당장 출근을 위해 급하게 계약을 했지만 오랜 기간 이정도의 월세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구로구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B 씨(35)는 "매달 월세 65만 원에 관리비와 주차비로 5만 원을 내고 있다"며 "결혼이나 신혼집 마련에 쓰일 적금을 덜어 월세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도 최소한 3000만 원밖에 안되는 보증금을 떼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서울 소형빌라 임대차 계약 가운데 월세 100만 원 이상인 계약이 3000건을 돌파했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모습. /더팩트DB

실제로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경제만랩에 따르면 지난해 월세 100만 원이 넘는 서울의 소형빌라(전용면적 60㎡ 이하) 계약은 3018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비중도 전체 서울 소형빌라의 거래량의 6.9%를 차지하며 전년(4.7%) 대비 큰 폭으로 증가했다. 반면 지난해 서울 소형빌라 전세 거래는 6만7541건으로, 전년보다 7.2% 줄었다.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임대차계약 가운데 월세 비중은 43.5%로 전년(38%) 대비 급증했다. 서울 역시 월세가 44.5%를 차지하며 전년(40.4%)보다 월세 비중이 크게 늘었다.

월세 계약 자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달 확정일자를 받은 전국 주택 임대계약 가운데 월세 비중은 57%로, 지난해 5월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의 월세 비중도 54.6%로 전월(52.4%) 대비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매매가격이 전세가격보다 떨어지는 '깡통전세'와 전세사기의 위험이 높아지자 임차인들이 가급적 보증금이 낮은 월세계약을 선호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황한솔 경제만랩 리서치연구원은 "전세시장 불안으로 목돈이 있어도 월세로 거주하는 편이 안전하다는 인식이 확산했다"며 "또 전세자금대출 이자가 올라 전세보다는 고액 월세 계약을 체결하는 소형빌라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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