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딥블루가 이길 겁니다. IBM에 투자하세요."
"딥블루는 아직 인공지능의 사각지대를 넘지 못했어. 그런 딥블루가 역대 최강 천재 플레이어 개리 카스파로프를 이긴다고?"
지난해 12월 종영한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 진도준과 사업 파트너 오세현의 대사다. 지난 1997년 미국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컴퓨터 '딥블루'가 당시 세계 체스 챔피언이었던 개리 카스파로프를 이긴 역사적 이벤트가 드라마 소재로 쓰인 것이다.
현재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1990년대 과거로 돌아간다는 판타지적 설정에 무릎을 친 시청자들도 여럿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겐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선 광경이 더는 낯설지 않다. 그보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2016년 구글 딥마인드 AI '알파고'가 바둑 세계 최강 이세돌 9단을 꺾은 광경도 목격했으니 말이다.
그로부터 또 7년이 지난 현재 미국 스타트업 오픈AI의 대화형 AI '챗GPT'가 전 세계적으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오픈AI의 초거대AI 'GPT-3.5'를 기반으로 한 AI 대화 서비스 '챗GPT'는 지난해 11월 대중에 공개된 지 단 두 달 만에 월간 활성 이용자 수 1억 명을 넘어서며 화제의 중심에 섰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AI 서비스의 '깜짝 등장'이 몰고 온 파장은 만만치 않다. 이미 정치권에서도 '챗GPT'는 혁신의 아이콘을 강조하는 가장 매력적인 화두이자 재료가 됐고, 각종 언론에서는 AI가 제시한 해답을 기사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학생들이 '챗GPT'를 활용해 부정행위를 하는 사례가 급증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고,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한 국제학교에서 일부 학생이 챗GPT를 활용해 영문 에세이를 작성한 것이 적발돼 '0점' 처리되는 사례까지 나왔다.
그만큼 AI 기술이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능력을 대체하거나 또는 넘어선 것은 물론 이미 우리의 삶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이크로소프트는 물론 구글, 네이버와 카카오, SK텔레콤 등 국내외 IT기업들마다 AI 기술 개발에 말 그대로 사활을 걸고 있다. 아울러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도 앞다퉈 자국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각종 육성 법안과 지원책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정은 어떨까. 반도체와 AI 등 정부가 국가전략기술을 지정하고 예산 투입을 통한 효과적인 연구개발(R&D)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전략기술 육성에 관한 특별법',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자에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 등 AI를 비롯한 각종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기술 발전 속도에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사례는 이미 완성차 업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6월 산업통상자원부 규제 샌드박스에 추가된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와 독일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기술개발에 가장 열을 올리고 있는 핵심 기술 분야지만, 국내에서는 '승인'을 받아야지만, 상용화가 가능하다.
실제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지난 2021년 스스로 규제 샌드박스 특례를 신청해 임시 승인을 받아낸 상황으로 국토교통부가 OTA 관련 규칙 개정에 나서지 않을 경우 2년씩 사용 허가 기한을 연장 승인을 받아야 한다.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ICT 강국'이라는 타이틀도 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고루한 규제와 법 제도 아래에서는 빛바랜 과거 명성일 뿐이다. 기술 개발에 과감히 나서는 기업과 이 같은 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부의 법제도 개선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