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현대오일뱅크, 역대 최대 실적에도 웃지 못하는 사연


SK이노베이션, 지난해 영업익 4조 '역대 최대'
현대오일뱅크도 호실적 달성
최대 실적에도 횡재세 논란 탓에 표정 관리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고유가와 석유 제품 수출 물량의 증가 등으로 역대 최대 연간 실적을 기록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정유사들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음에도 크게 웃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횡재세 논란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현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고 정부 차원에서도 횡재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은 상태지만, 실적 발표 이후 행여나 관련 논란이 더욱더 뜨거워질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8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국내 1위 정유사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66.6% 증가한 78조569억 원, 영업이익은 129.6% 급증한 3조9989억 원이다. 순이익은 307.4% 늘어난 1조9901억 원으로 집계됐다. 호실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상반기까지 고유가와 정제마진 초강세 기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가 상승과 석유 제품 수요 증가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 석유 제품 수출 물량의 증가로 실적이 전년 대비 대폭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사업별 영업이익을 살펴보면 △석유 사업 3조3911억 원 △화학 사업 1271억 원 △윤활유 사업 1조712억 원 △석유개발 사업 6415억 원 등이다. 배터리와 소재 사업은 각각 9912억 원, 480억 원의 영업손실 기록했다.

같은 날 성적표를 내놓은 현대오일뱅크도 호실적을 달성했다. 현대오일뱅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조7898억 원으로 전년보다 155.1% 급증했다. 사상 최대 실적이다. 매출은 34조9550억 원으로 68% 증가했다. 현대오일뱅크의 호실적에 HD현대는 사상 첫 매출 60조 원을 넘어섰다.

이로써 앞서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3조4081억 원)까지 정유 3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0조 원을 넘어섰다. SK이노베이션,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GS칼텍스 등 국내 정유 4사의 2021년 합산 영업이익(7조2333억 원)을 이미 경신한 것이다. 지난해 3분까지 4조309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GS칼텍스까지 더하면 지난해 정유 4사의 영업이익은 15조 원에 근접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러한 호실적에도 정유사들은 표정 관리 중이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유사들이 사상 최대 이익을 누렸다는 소식 자체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횡재세는 일정 기준 이상의 이익을 낸 기업에 추가로 물리는 초과 이윤세를 뜻한다. 현재 정유사들은 횡재세와 관련한 발언을 아끼고 있다. 한 회사 관계자는 "횡재세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횡재세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상반기 정유 4사가 12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나자 횡재세를 걷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후 횡재세 논란은 지난해 하반기 국제유가가 급락하면서 수그러드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유사들의 연간 실적 전망치가 소개되고, 역대급 성적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 성과급 지급' 소식이 전해지면서 논란이 재점화됐다. 앞서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는 직원들에게 각각 연봉의 50%, 기본급 10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다.

현대오일뱅크도 고유가와 정제마진 강세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더팩트 DB

특히 에너지 문제가 대란으로 번진 상황과 맞물려 '앉아서 횡재'를 누리는 것으로 비친 정유사들은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이에 맞춰 더불어민주당은 횡재세를 걷어 취약계층을 위한 재원으로 삼아야 한다며 정부와 정유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정유사들의 영업이익이 엄청나게 늘어나 국민들로서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만큼의 많은 상여금이 지급됐다고 한다. 정유사, 에너지 기업들이 일부라도 부담해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입는 국민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상쇄해줬으면 좋겠다"며 "재원 확보를 위해 에너지 기업들이 과도한 불로소득 또는 영업이익을 취한 것에 대해 횡재세 개념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횡재세 입법 추진을 예고한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석유사업법 18조에 따라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낸 석유 사업자에 부담금을 징수해 난방비 폭탄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석유사업법 18조에는 정부가 석유 수급과 석유 가격의 안정을 위해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적시돼있고, 징수 대상은 유가 급등락으로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얻은 석유정제업자·수출입업자'로 적혀있다.

그동안 정유사들은 횡재세 논란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표명해왔다. 지난해 일시적으로 호황을 누린 건 맞지만, 반대로 사업 환경이 좋지 않아 적자를 기록한다면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는 설명이다. 실제로 정유 업계에 호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정유사들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지난 2020년 석유 수요 급감으로 연간 5조 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유가 폭락 등 상황에 따라 정유사들은 언제든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며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뒤 거둔 성과에 대해 횡재세를 걷자는 주장이 나오는 건 열심히 일하려는 직원들의 사기만 떨어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만 놓고 보면, SK이노베이션은 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축소로 영업손실 6833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 대비 94.7% 급감한 128억 원으로 나타났다. 마찬가지 이유로 앞서 에쓰오일 역시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1575억 원을 기록, 전년 동기와 비교해 적자 전환했다고 공시했다.

정부는 횡재세 도입에 동의할 수 없고, 검토하고 있지도 않다며 선을 그은 상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특정 기업이 특정 시기에 이익이 난다고 해서 횡재세 형태로 접근해 세금을 물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유럽 일부 국가가 횡재세를 도입한 데 대해선 "유럽 정유사들은 유전을 개발하고 유전을 통해 채유하고 정제해 수익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우리는 원유 수입 후 정제해서 판매하는 구조여서 그들 국가와 기본적으로 이익 구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rocky@tf.co.kr

Copyright@더팩트(tf.co.kr)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