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해 취임 이후 글로벌 무대에서 광폭 행보를 이어간 이 회장은 국내에서도 소통 경영을 이어가며 조직문화 쇄신작업에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여전히 진행형인 '사법리스크'와 전 세계에 불어닥친 '반도체 한파'에 따른 실적 부진 등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지만, 특유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신성장 동력 발굴 노력에 고삐를 죄며 '민간 외교관'이자 '삼성 총수'로서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 베트남-UAE-스위스, '빈칸 없는' JY 일정표
지난해 12월 취임 후 첫 글로벌 경영 행선지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알 다프라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건설 현장을 찾은 이 회장은 이후 약 2개월여 동안 동남아부터 유럽까지 쉼 없은 글로벌 행보를 이어갔다.
이 회장은 중동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지 열흘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인천 영종도 BMW 드라이빙 센터에서 올리버 집세 BMW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BMW 최신 전기차에 탑재되는 삼성SDI의 'P5' 배터리를 포함해 양사 간 협력 강화 방안을 모색했다.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말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에 맞춰 동남아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R&D) 센터인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석, "양국 우호 협력 증진에 힘을 보태겠다"며 '민간 외교관'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달 UAE 순방 경제사절단에 이름을 올린 이 회장은 특유의 글로벌 네트워크로 'UAE 해외 최다 투자 유치'에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이 회장은 지난 2019년 당시 왕세제였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방한하자 직접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반도체 생산 라인을 안내하며 '세일즈 외교' 전면에 나섰다.
같은 달 스위스 다보시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CEO와의 오찬'에서도 이 회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아몬 퀄컴 CEO와 히가시하라 토시아키 히타치그룹 회장을 소개하는 등 순방 기간 경제 외교 선봉에 섰다.
◆ 해외 파견 임직원부터 워킹맘까지…'초격차 소통' 고삐
이 회장의 '소통경영'도 진행형이다. 이 회장은 UAE와 베트남 출장 당시 해외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을 찾아 고충을 듣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같은 행보는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삼성 워킹맘'과 소통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출장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별도로 시간을 내 사내 워킹맘들과 간담회를 갖고, 사업장 내 어린이집을 찾아 운영 현황을 살폈다.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은 한 직원이 "엄마가 회사에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요청하자, 직접 해당 직원의 스마트폰으로 영상 메시지를 남겨 눈길을 끌었다.
이 회장은 또 최근 지난 1~7일 자녀를 출산한 여성 임직원 64명에게 삼성전자의 최신형 공기청정기를 선물했다.
'이재용 체제' 전환 이후 조직문화 쇄신 작업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1일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은 사내망을 통해 기존 '수평 호칭' 사용 범위를 최고경영진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가이드를 공지했다. '팀장님'과 같은 직책이 아닌 영어 이름 또는 영문명의 이니셜, 한글 이름에 '님'을 붙이는 방식으로 이 회장 역시 '회장님'이 아닌 '재용님', 'JY님'으로 불리게 된다.
삼성의 이 같은 변화를 두고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철학이 조직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 역대급 '반도체 한파' 해법 모색은 과제…사법리스크 부담 여전
글로벌 광폭 행보를 이어가는 이 회장에게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급제동에 걸린 삼성전자의 실적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6.9% 줄어든 2700억 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메모리 수요 감소와 제품 가격 하락 등 전례 없는 업황 부진이 실적 발목을 잡았다.
최근 실적만 두고 보더라도 달라진 분위기는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4년간 분기 기준으로 가장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지난 2019년 3분기(3조500억 원)와 비교하면, 지난해 4분기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부문의 실적을 별도로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적자전환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백길현 유탄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IT 시장 전반적인 재고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은 1조600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도체 부문뿐만 아니라 생활가전, 스마트폰 부문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불안한 경영 환경이 장기화하면서 'JY 리더십'에 거는 안팎의 기대도 덩달아 커지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이 회장이 올해 로봇, 메타버스 등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새로운 동력을 발굴하는 데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년째 발목을 잡고 있는 '사법리스크'도 부담 요인이다. 취임 100일째를 맞은 이날 이 회장은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했다.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이 발표된 날에도 이 회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후 줄곧 한 주에 한 차례에서 두 차례씩 재판 일정이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일정이 장기 해외 출장 등 경영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 취임 이후 삼성의 변화는 안팎으로 뚜렷해지고 있다"며 "특히, 최근 경제사절단으로서 '민간 외교관'을 자처하며 UAE 순방에서 보여준 글로벌 네트워크는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삼성전자의 실적이 반도체 업황 부진으로 역성장한 데다 대중 무역 분쟁 여파로 한국 반도체 기업 전망도 어두워지고 있는 점은 이 회장에게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며 "위기 극복 해법을 찾기 위한 대내외 행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likehyo85@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