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경동나비엔이 지난해 말 ESG(환경·사회·지배구조)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환경은 C등급, 사회는 B등급, 지배구조는 D등급으로 최종 통합등급 C로 평가됐는데 특히 D등급은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갖추지 못해 주주가치 훼손이 심려되는 수준을 나타낸다. 한국ESG기준원에 따르면 ESG등급은 S부터 D까지 총 7가지로 나뉘는데 B+ 이상은 'ESG평가 양호군'에 속하며 B 이하로는 'ESG평가 취약군'에 들어간다. 경동나비엔은 모든 평가 항목이 취약군에 포함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ESG경영이 기업에게 중요한 이유는 △투자자 신뢰회복 △자본시장 활성화를 통한 자본조달 비용 감소 △기업이미지 개선과 브랜드가치 제고 등 기업 투자 의사결정 시 재무 부문과 함께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이윤만 추구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비재무 부문을 도외시하게 될 경우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ESG기준원(KCGS)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은 2020년과 2021년까지는 ESG 통합등급에서 B+를 유지했지만 2022년 C등급으로 내려갔다. 자세하게 보면 2020년은 △환경등급 B △사회등급 B+ △지배구조등급 B+ △ESG 통합등급 B+ 등으로 집계됐다. 2021년은 △환경등급 B+ △사회등급 B+ △지배구조등급 B+ △ESG 통합등급 B+ 등으로 1년 전보다 환경등급에서 한 단계 높은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2022년 △환경등급 C △사회등급 B △지배구조등급 D △ESG 통합등급 C 등으로 특히 지배구조등급은 가장 낮은 D등급을 받았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31일 <더팩트>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경동나비엔의 지배구조등급이 D인 이유는 지난해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고 과징금을 부과 받은 점과 2022년은 평가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대표로 이사회 역할이 더 강조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쉽게 설명하면 2021년까지는 ESG경영 노력을 담당자 선에서 개선해나가면 좋은 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만 2022년부터는 이사회 역할이 강조되면서 경영진의 노력이 평가에 반영됐다는 말이다. 전체 등급이 하락한 부분에 대해서는 "평가 기준이 달라진 영향이 크다. 경동나비엔 말고도 대기업에서 등급이 하락한 곳이 꽤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021년과 달리 2022년에는 ESG 평가모형이 글로벌 기준과 ESG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개편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5월 18일 경동원과 경동나비엔에 과징금 36억8000만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10년 넘게 경동원이 경동나비엔에 정상가격보다 약 30% 저렴한 가격으로 외장형 순환펌프를 판매한 행위가 적발된데 따른 것이다. 공정위는 경동원에 24억3500만 원, 경동나비엔에 12억4500만 원을 부과했다.
한국ESG기준원이 공개한 2022년 ESG평가모형을 보면 환경은 △리더십과 거버넌스 △위험관리 △운영과 성과 △이해관계자 소통 등을 평가한다. 사회는 △리더십과 거버넌스 △노동관행 △직장 내 안전보건 △인권 △공정운영 관행 △지속가능한 소비 △개인정보보호 △지역사회 참여와 개발 등을 보며 지배구조의 경우 △이사회 리더십 △주주권 보호 △감사 등을 집중 평가한다.
ESG등급은 통합등급은 수준에 따라 △S(탁월) △A+(매우 우수) △A(우수) △B+(양호) △B(보통) △C(취약) △D(매우취약) 등으로 부여된다. 경동나비엔은 ESG평가에서 2021년까지는 양호군에 속했지만 2022년 취약군으로 밀려났다. 한국ESG기준원 자료를 바탕으로 B+와 C등급의 평가 의미를 보면 B+는 '지배구조, 환경, 사회 모범규준이 제시한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적절히 갖추고 있으며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적음', C등급은 '지속가능경영 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비재무적 리스크로 인한 주주가치 훼손의 여지가 큼'을 뜻한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ESG 등급 상향을 위해서는 기업이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중심의 ESG 관행을 개선하고 ESG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다시 말해 ESG 수준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되기 위해서는 이사회와 최고경영진 중심의 ESG 관행 개선이 전제돼야 하며 ESG 체질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의 ESG평가 피드백 대응 등 실무진 중심의 ESG 개선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경동나비엔의 ESG평가 등급이 낮은 이유에 대해서 △그린워싱 의심 △오너 가족 중심 지배구조 △ESG평가 기준 강화 등 3가지를 꼽았다. 특히 중소·중견기업 입장에서는 ESG평가 기준이 달라져 낮은 등급을 받았다는 볼멘소리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 수용하고 평가 기준에 부합하는 경영 기반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종갑 인천재능대 유통물류과 교수는 "우선 그린워싱이 의심된다. 그린워싱은 친환경 기업이 아니면서 친환경 기업으로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말한다"며 "친환경 지표 기본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이 대표 사례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구조에 대해서는 손연호 경동나비엔 회장의 지배기반은 경동원인데 손 회장은 친족과 특수관계법인 등과 경동원 지분 상당수를 보유하고 있다. 경동나비엔이 ESG경영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해당 지배구조 특히 경동원과 경동나비엔의 내부거래 비중이 많다. 매출이 높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운 구조라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경동원의 최대주주는 손 회장으로 27.4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ESG평가 기준 강화에 대해서는 "한국ESG기준원은 2022년 등급 평가에서 글로벌 동향을 반영하는 것과 동시에 ESG경영에 대한 이사회의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준을 강화했다"며 "이제는 의사 결정권을 가진 이사회와 최고경영진이 얼마나 ESG경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며 "실무진이 중심이 된 평가보고서 위주였기 때문에 평가 등급이 하락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경동나비엔이 ESG경영 낙제점을 받았지만 내부에서 전담조직을 운영했다. 최근에는 손 회장 등 주요 경영진들의 필두로 ESG 프로세스 구축에 나서고 있다. 경동나비엔은 지난해 'ESG TFT'를 신설하고 올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을 준비하며 전사 역량 확보에 나서고 있다. 환경과 사회, 공급망, 지배구조 등 4개 분과로 나눠 ESG경영을 위한 체계를 구축했고 특히 올해는 별도 의결기구도 설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이사회 차원에서 리스크를 관리하고 감독하도록 재정비한다는 방침이다. 지배구조 개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감사지원 조직을 신설해 경영진단팀을 꾸려 경영진 감시를 위한 독립성을 강화했다.
경동나비엔 관계자는 이날 취재진과 전화통화에서 "2022년 ESG평가 등급이 하락한 이유는 지난해 5월 공정위 과징금 부과도 있지만 무엇보다 평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준이 달라지다 보니 경동나비엔 이 외에 다른 기업들도 등급이 하락한 곳이 많다"며 "특히 보일러업계 가운데 경동나비엔을 제외한 기업들은 상장사가 아니다 보니 ESG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경동나비엔은 기업을 통한 사회공헌이라는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사회 책임을 완수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ESG경영을 강화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ESG경영 내재화를 위한 전사 노력으로 올해는 ESG 경영에 대한 경동나비엔의 방향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한편 금융감독원 정보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경동나비엔의 매출은 매년 늘어 2021년에는 1조 원을 돌파했다. 자세하게 보면 △6846억 원(2017년) △7267억 원(2018년) △7742억 원(2019년) △8734억 원(2020년) △1조1029억 원(2021년) 등이다. 2022년 3분기 누적 매출도 8236억 원으로 2021년 동기(7415억 원) 대비 821억 원 늘었다. 4분기 매출까지 더하면 1조 원 돌파는 무난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