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회장후보추천위원장으로 선임되면서 전경련 차기 회장 선출 작업이 본격 시작됐지만, 재계에서는 관련 작업이 원활히 이뤄질지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전경련 회장직은 수년간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아 연임 의사가 없던 허창수 회장이 유지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차기 회장 후보로 거론된 인물들이 최근 잇달아 손사래를 친 것으로 알려져 이웅열 명예회장의 고심은 깊어질 전망이다. 현재까진 전경련 차기 회장을 둘러싼 이렇다 할 하마평은 나오지 않고 있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전경련은 최근 이웅열 명예회장을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중장기 발전안을 만들 미래발전위원장에 선임했다. 허창수 회장은 "그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한 결과 국민에게 사랑받는 전경련으로 거듭나고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이고 혁신적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33대 회장으로 취임한 뒤 38대까지 6회 연속 회장직을 맡은 허창수 회장은 다음 달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이미 연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한 상태다. 차기 회장을 찾아야 하는 시점에 회장단 중 한 명이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고 내부적으로 미래발전위원회까지 설치되는 건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전경련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것과 무관치 않으며, 전경련은 2016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이 탈퇴하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 때 주요 경제계 행사에서 배제되는 이른바 '전경련 패싱' 굴욕을 겪었고, 윤석열 정부에서 위상 회복을 노렸으나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그 사이 국내 대표 경제단체 자리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이끄는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에 내줬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전경련의 쇄신 방안을 마련하는 동시에 전권을 갖고 차기 회장 후보 추천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윤곽이 드러나면 정기총회가 열리는 다음 달 23일까지 전경련 회장단에 후보를 추천할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이웅열 명예회장이 후보 찾기에 난항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그동안 전경련 회장은 회장단에서 선출해왔는데, 이미 주요 인물이 고사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파악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김준기 DB그룹 창업회장, 이장한 종근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회장단에서 선뜻 나서는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외부 수혈 등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아직 하마평에 오르는 인물은 없다. 일각에서 제기된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통합 방안(손경식 회장 겸직)도 전경련 내부 반발, 혁신형 인재 필요성 등을 고려했을 때 현실성이 없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전경련을 이끌 새로운 수장으로 지속 거론돼왔다. 이번에 회장후보추천위원장으로 선임되면서 '이웅열 카드'도 사라진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웅열 명예회장이 유력 회장 후보였지만, 회장후보추천위원장을 맡은 만큼 자신을 후보로 추천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웅열 명예회장의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건 단순히 자리를 채울 인물을 찾기 어려워서만은 아니다. 위상 회복이라는 과제를 고려했을 때 인물의 '존재감'도 고려해야 한다. 최태원 회장 취임 후 대한상의 위상이 더욱더 강화된 것처럼 비중 있는 인물이 새 수장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위상 회복의 관건인 4대 그룹의 재가입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물이 회장 후보로 부상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신동빈 회장과 김승연 회장이 나서지 않을 경우 다시 미궁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이웅열 명예회장은 재계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분은 적절한 인물을 찾고 설득하는 데 있어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지난해 열린 이웅열 명예회장의 장남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의 결혼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5대 그룹 총수를 포함한 1000여 명이 참석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웅열 명예회장이 어떠한 소식을 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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