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외국계 완성차 제조사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자동차(르노코리아)의 내수시장에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현대자동차(현대차)와 기아, 쌍용자동차(쌍용차) 등 국내 5개사 가운데 판매량 후순위로 밀려난 것은 물론 최근에는 메르세데스-벤츠(벤츠)와 BMW 등 일부 수입 브랜드와 경쟁에서도 밀려나며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놓였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 전 차종 다 더해도 '그랜저' 판매량 절반 수준
13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모두 3만7237대를 팔았다. 이는 전년(5만4292대) 대비 31.4% 줄어든 수치로 국내 5개사 가운데 가장 낮은 기록이다.
경쟁사와 비교하면 그 격차가 여실히 드러난다. 현대차의 준대형 세단 '그랜저'의 경우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모두 6만7030대가 팔렸다. 다시 말해 한국지엠 전 차종 판매량을 모두 더해도 경쟁사의 특정 모델 한대 판매량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셈이다.
차량별 실적을 살펴보면, 분위기는 더욱 어둡다. 지난해 한국지엠에서 판매하는 전 차종 가운데 전년 대비 판매량이 늘어난 모델은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이쿼녹스'(552대→1101대)가 유일하다. 나머지 승용·레저용 차량(RV) 전 부문, 전 모델의 판매량이 뒷걸음질 쳤다.
르노코리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르노코리아는 지난해 내수 시장에서 모두 5만2621대를 팔았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3.9% 줄어든 수치다. 한국지엠과 비교해 판매량에서는 약 1만5000여 대 앞섰지만, 이 역시 '그랜저' 판매량에도 못 미친다.
차종별 판매실적을 살펴보면, 중형세단 'SM6'(3198대→4218대)와 소형 SUV 'XM3'(1만6535대→1만9425대)를 제외한 전 차종이 지난해 내수 판매량이 전년 대비 두 자릿수대 감소율을 보였다.
외국계 2사는 최근 몇 년 새 수입차와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해 벤츠와 BMW는 내수 시장에서 각각 8만976대, 7만8545대를 판매했다.
◆ 이렇다 할 신차 없어...업계 "올해도 쉽지 않을 것"
완성차 업계에서는 이들 외국계 2사의 내수 시장 판매가 부진한 이유로 '경쟁력 있는 신차 부재'를 꼽는다.
내수 시장에서 '3위 경쟁'을 벌이는 쌍용차의 경우 지난해 준중형·중형 SUV 시장을 겨냥한 신차 '토레스'를 출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지난해 '토레스'는 내수 시장에서 2만2484대가 팔리며, 픽업 '렉스턴 스포츠'(2만5905대)에 이어 브랜드 내 두 번째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반면,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는 SUV 부문은 물론 승용 부문에서도 이렇다 할 신차를 내놓지 못했다. 르노코리아는 'XM3'의 하이브리드 모델을 선보였지만, 완전한 신차 출시 소식은 없었다.
'신차 부재'는 브랜드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는 지난해 12월 13일부터 현재까지 국내 5개 브랜드 빅데이터 1778만1992개를 분석한 자료를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브랜드평판 상위 30개 모델 가운데 1위는 현대차의 '그랜저'가 차지했고, 2위와 3위는 현대차의 준중형 세단 '아반떼'와 쌍용차 '토레스'가 각각 이름을 올렸다.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가 제작·판매하는 모델 가운데 순위표에 이름을 올린 모델은 르노코리아 중형 SUV 'QM6'(27위), 'XM3'(28위) 단 두 개뿐이다. 한국지엠의 경우 단 한 개 모델도 포함되지 못했다.
◆ "당장 철수해도 이상할 것 없어"
외국계 2사의 부진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업계 안팎에서는 "올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할 것"이라는 잿빛전망이 나온다.
경기침체와 고물가·고금리 상황이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내수 자동차 시장 수요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브랜드의 판매 감소세는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지엠과 르노코리아 모두 초대형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를 모기업으로 두고 있음에도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며 "국내 시장은 현대차·기아 점유율이 88%에 달하는 기형적 구조다. 이 같은 구조는 상위 업체의 노력보다 하위 업체의 미흡한 운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히, 한국지엠의 경우 저조한 내수 점유율을 고려하면, 지금 당장 철수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며 "쉐보레 볼트 전기차의 경우 한국에서 개발 전 과정을 주관했지만, 오히려 관련 특허나 기술은 모두 모기업에 넘어간 상황이다. 이미 벤츠, BMW에도 자리를 내주고, 제대로 된 신차를 내놓을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 판매)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 한국지엠 "SUV 라인업 강화", 르노코리아 "기존 제품 상품성 개선 노력"
밝지 않은 시장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지엠은 'SUV 라인업 확대', 르노코리아는 '기존 모델의 상품성 강화'를 통해 내수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올해 한국 시장에서는 신형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출시를 비롯해 GMC 브랜드의 픽업 '시에라'를 비롯해 쉐보레 대형 SUV 등 소형부터 대형까지 SUV 라인업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아울러 금리 할인과 같은 프로모션을 진행해 내수 판매를 장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동화 전략의 경우 2025년까지 10개의 전기차를 출시할 계획이지만, 올해 새 모델 도입 여부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며 "이르면 3년 이내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올해 내수시장에서 'QM6', 'SM6', 'XM3' 등 기존 판매 차량의 상품성을 지속해서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해당 모델의 특장점을 고객들이 제대로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며 "최근 시행한 금리 할인 프로모션을 비롯해 고객들이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다양한 프로모션 활동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르노코리아는 모기업 차량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들고, 한국에서 좋은 제품을 판매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며 "매년 새로운 신차를 출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있다. 우선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전동화 전략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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