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실리콘밸리=최문정 기자] 삼성전자가 혁신적인 기술을 소개할 때마다 등장하는 '외계인을 잡아다가 만든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 인근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외계인(?)들이 근무하는 삼성리서치 아메리카와 삼성 DS 미주총괄에 직접 방문해봤다.
삼성리서치는 미국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위치한 DX부문의 선행 연구개발 조직으로, 한국 외에도 해외 14개국에서 글로벌 연구개발(R&D)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리서치 아메리카(SRA)는 지난 2014년 기존 미국 내 연구소를 삼성리서치 산하로 개편해 만들어진 조직으로 650여 명의 연구원이 근무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로는 차세대 통신과 인공지능(AI), 로봇, 디지털 헬스, 멀티미디어, 카메라, 소프트웨어 플랫폼 등이 있다.
노원일 SRA 연구소장 부사장은 "SRA는 '혁신적 우수성의 기반이 되자'라는 미션 아래 삼성전자 DX부문 미래 제품과 서비스의 핵심 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SRA는 △2009년 5G 초고주파(mmWave) 통신 기술 최초 제안 △2021년 6G 테라헤르츠(THz) 대역 원거리 무선 통신 시연에 성공 △어퍼 미드밴드(Upper mid-band) 10-15GHz용 6G 무선 통신 기술 연구 등 차세대 통신 연구를 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8년 SRA 산하에 설립된 삼성리서치 아메리카 AI센터는 실리콘밸리의 AI 전문가들과 협력하며 연구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자연어 이해(NLU) 기술을 바탕으로 차세대 빅스비 성능 강화 △멀티모달(Multi-modal) 기술을 활용해 시각 자료에서 사용자가 언급하는 객체를 인식하는 비주얼 NLU △서버를 거치지 않고 초저용량 메모리로 온디바이스(On-device) AI를 수행할 수 있는 타이니 머신러닝(ML) 등을 연구하고 있다.
스피커간 상호 통신을 통해 사용자 위치에 따라 음향을 최적으로 조절해주는 기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의 영상을 TV에서 더 높은 해상도로 감상할 수 있는 AI 업스케일링 등의 선행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갤럭시 스마트폰 등에 적용된 모바일 보안 플랫폼 녹스도 연구 중이다.
구글과 아마존 등 다수의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위치한 실리콘밸리에서 SRA의 장점은 연구와 개발이 동시에 하는 조직이라는 점이다.
노 부사장은 "SRA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하면, 연구를 하면서 상품화 개발을 동시에 하는 조직이라는 점"이라며 "현지에 우수한 인력들이 단순 연구만 하는 것보다는 연구 개발 성과를 상품화까지하는 것을 원하곤 하는데, SRA는 그러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굉장히 좋은 연구소"라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스마트폰부터 TV, 가전 등 고객과 맞닿아 있는 엔드 디바이스를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 중 하나인 점이 현지 연구 인력들이 SRA를 선호하는 이유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SRA에서 연구한 음향 기술은 무선 이어폰 '갤러시 버즈' 시리즈에 적용됐다. SRA는 앞서 갤럭시 S22 등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적용된 카메라 야간 모드 기능, DSLR급의 사진 편집 앱 Expert RAW, 폴더블폰 갤럭시 Z 폴드4의 언더 디스플레이 카메라(UDC) 등의 카메라 혁신 기술 개발에도 참여했다. 녹스의 경우, 스마트폰을 넘어 다양한 기기로 확대 적용하고 판매·관리 등 기업 솔루션에 더욱 널리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최근 미국 내 최대 유통 체인 중 하나인 월마트와 공급계약을 맺었다.
이번 CES 2023에서 화재가 됐던 사용자 경험과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한 연구도 추진하고 있다. SRA는 글로벌 사물인터넷(IoT) 표준인 '매터(Matter)와 HCA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AI 비서 빅스비를 중심으로 기기제이와 설정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AI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SRA는 최근 구글과 아마존 등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빅테크 기업들이 실적 압박에 인력 감축 카드를 꺼내든 것과 달리, 오히려 적극적인 인재 영입을 추진하고 있다.
노 부사장은 "SRA는 여전히 훌륭한 인재들을 뽑고 있고, 인위적인 감원은 없다"며 "SRA는 글로벌 신기술 개발의 격전지인 실리콘밸리에서 디지털헬스 등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가 될 제품 콘셉트를 구상하고 이에 필요한 기술을 구현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삼성전자의 스마트 TV사업 현황과 전략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특히 실시간 TV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며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OTT와 게임 등으로 TV의 역할이 바뀌는 시대에 이를 대응할 방식을 모색한다는 설명이다.
김상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북미 서비스 비즈니스 담당 부사장은 "작년 미국에서 TV 생방송을 보는 시간이 OTT 시청 시간보다 적어졌다"며 "시장이 완전히 바뀌었고 이는 곧 생태계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비디오 소비 환경 △게이밍 환경 △아트 소비 등의 변화에 맞춰 각각 △삼성 TV 플러스 △삼성 게이밍 허브 △아트 스토어를 대응 방안으로 내세웠다.
삼성 TV 플러스는 지난 2015년 출시된 TV에 인터넷만 연결하면 영화, 드라마, 예능, 뉴스, 스포츠 등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채널형 비디오 서비스다. 현재 24개국 4억6500만대 이상의 삼성전자 TV와 모바일 기기에서 사용 중이다. 전 세계적으로 1800개 이상의 체널을 제공하고 있고, 지난해 누적 시청 시간은 30억 시간에 달한다.
지난해 출시한 삼성 게이밍 허브는 TV 기반 스트리밍 게임 서비스로 콘솔 게임을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해 별도 기기가 없어도 컨트롤러를 갖추면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게임 패스 △엔비디아 지포스나우 △유토믹 △아마존 루나 등을 지원한다. 연내 앤트스트림 아케이드와 블랙넛을 추가해 총 2500개 이상의 스트리밍 게임을 제공한다는 목표다.
마지막으로 삼성 아트 스토어는 2017년 출시된 작품 구독 서비스로 세계적인 명작부터 신인 작가의 작품까지 2000여점을 제공한다. 출시 이후 가입자가 연평균 150% 이상씩 증가하는 추세다.
김 부사장은 "TV는 '메인 스크린 디바이스'"라며 "가장 큰 스크린이 메인 센터, 리빙룸에 있고 서비스 디맨드(요구)는 늘어나면서 멀티 디바이스용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SRA를 나서 약 10분 정도 달리자 삼성 DS 미주총괄(이하 DSA)가 나타났다. 이곳은 미국 내 삼성 파운드리 공장이 있는 오스틴과 테일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삼성 반도체의 역량이 모이는 허브다.
DSA 건물은 낸드플래시 반도체의 3단 적층 구조를 본 따 설계됐다. 총 10층 규모의 웅장한 규모로 실리콘밸리 내에서 반도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는 설명이다.
DSA에는 약 1200여 명의 글로벌 인재들이 모여 반도체 연구개발과 영업, 마케팅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메모리 △시스템 LSI △파운드리 사업부의 연구 조직도 함께 있어 본사·현지 간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다.
건물 내부는 대부분 개방형 공간으로 구성됐고, 사무 공간은 두개 층을 연결한 복층 구조로 구성원간의 협업에 최적화돼 있다. 또한 널찍한 유리 통창을 통해 어디서든 풍부한 자연광을 즐길 수 있고, 건물 최상층에서는 실리콘밸리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것이 인상깊었다.
24시간 운영되는 운동 시설과 업무 중 자유롭게 머리를 식히는 '칠룸' 등을 갖춰 실리콘밸리의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내 카페테리아에는 양식, 한식, 일식, 멕시코 음식 등 다채로운 메뉴를 제공해 세계 각국 출신의 인재들을 배려하고 있다.
한진만 DS 미주총괄 부사장은 "DSA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지역 내 다양한 혁신 기업들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점차 확대되는 미국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해 메모리·시스템 LSI·파운드리 분야의 기술과 사업 대응 능력을 고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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