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좋을 때 떠날까" 은행권, 희망퇴직 급증하는 이유는?


올해 희망퇴직자 수, 지난해에 비해 1000명 증가 예상

디지털 전환 가속화 등 영향으로 은행권에서 희망퇴직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ㅣ정소양 기자] 은행권에서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희망퇴직 조건이 나빠지기 전 조기 은퇴를 희망하는 직원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에서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730여 명이 퇴직 의사를 밝혔다. 최종 확정자는 18일 자로 은행을 떠난다. 만약 신청자가 모두 퇴직할 경우 지난해 1월(674명)보다 50명 넘게 늘어나는 셈이다. 이번 희망퇴직 대상은 1967년생부터 1972년 생(만 50세)까지였다. 퇴직자는 특별퇴직금(근무 기간 등에 따라 23∼35개월 치의 월평균 급여) 뿐 아니라 학기당 350만 원(최대 8학기)의 학자금과 최대 3400만 원의 재취업 지원금, 본인과 배우자의 건강검진, 퇴직 1년 이후 재고용(계약직) 기회 등을 받는다.

신한은행도 지난 2일부터 10일까지 희망퇴직을 실시한다. 아직 마감은 되지 않았지만 지난해보다 신청자가 급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부지점장 이상만 신청할 수 있었지만, 올해에는 직급과 연령이 부지점장 아래와 만 44세까지 낮추면서 희망퇴직 대상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부지점장 이상 일반직의 경우 1964년 이후 출생자(근속 15년 이상), 4급 이하 일반직·무기 계약직·RS(리테일서비스)직·관리지원계약직의 경우 1978년 이전 출생자(근속 15년 이상)다. 특별퇴직금으로는 출생 연도에 따라 최대 36개월 치 월 급여가 지급된다.

지난해 12월 19∼27일 신청을 받은 우리은행에서도 직원들이 대거 떠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의 경우도 신한은행, NH농협은행과 마찬가지로 희망퇴직 신청 대상을 만 40세까지 늘렸다.

지난해 말 이미 희망퇴직 절차를 마무리한 NH농협은행에서도 대상 연령을 만 40세로 낮추자 2021년(427명)보다 60명 이상 많은 493명이 짐을 쌌다.

특별퇴직금, 학자금·재취업 지원 등의 현재 희망퇴직 조건이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는 인식도 희망퇴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더팩트 DB

은행권에서는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약 두 달 만에 5대 시중은행에서만 약3000명 이상이 짐을 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년 전(2021년 12월∼2022년 1월) 5대 은행에서 직원 2244명(KB국민은행 674명·신한은행 250명·하나은행 478명·우리은행 415명·NH농협 427명)이 퇴직했다. 이와 비교할 경우 올해 희망퇴직자 수가 1000명 가까이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이처럼 은행권에서 최근 희망퇴직 수가 증가하고 있는 점은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른 점포 수 축소로 은행권의 희망퇴직 신청 대상 확대가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의 국내은행 영업점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기준 국내 은행의 지점과 출장소 등 점포(특수은행 포함) 수는 5858개로, 약 5년 전인 2017년 12월 말(6791개)보다 933개 줄었다. 매년 190개에 달하는 은행 점포가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5대 시중은행의 점포 수는 지난해 9월 기준 4010개로, 2017년 말(4726개) 대비 716개가 감소했다. 해당 기간 KB국민은행의 폐점수가 203개로 가장 컸고, 이어 하나은행 162개, 신한은행 141개, 우리은행 108개, 농협은행 32개가 뒤를 이었다.

여기에 특별퇴직금, 학자금·재취업 지원 등의 현재 희망퇴직 조건이 영원히 유지될 수 없다는 인식도 희망퇴직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국내 시중은행의 부지점장급 인력이 희망퇴직을 할 경우 특별퇴직금에 일반퇴직금까지 더해 4억∼5억 원 정도라는 것이 은행권의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희망퇴직 조건이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경기 침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은행권의 상황도 나빠질 수 있다. '조건이 좋을 때 떠나자'는 분위기가 형성된 영향이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이어 "희망퇴직 대상층 확대도 신청자수 증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js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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