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싹 바뀐 IPO 제도…증권사 '울상' 짓는 까닭은


과도한 페널티·주금 납입 능력 확인 어려움 등 토로

금융당국의 도입한 기업공개(IPO) 제도 개선안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더팩트 DB

[더팩트|윤정원 기자] 금융당국이 2023년부로 기업공개(IPO) 제도를 대폭 뜯어고친 가운데 증권가에서는 불만이 이는 형국이다. 증권가에 책임을 전가하는 등 실효성이 떨어지는 '탁상공론적' 제도안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 금융당국, 허수성 청약 관리 강화…적정 공모가 산정될까

올해부터 기관 수요예측 관행이 대폭 바뀌었다. 지난해 12월 18일 금융위원회는 '허수성 청약 방지 등 IPO 건전성 제고방안'을 발표했다. 제고안에 따르면 기존에는 증권신고서 제출 전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 수요 조사가 금지됐다. 관행적으로 2일간 진행되던 기관 수요예측 기간도 최대 7일까지 연장된다.

허수 청약에 대한 관리도 강화된다. 그동안 청약 단계에서 원하는 물량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실제 수요를 초과하는 물량을 신청하는 허수성 청약이 문제로 지적됐다. 올해부터 주관사는 허수 청약을 하는 기관의 주금 납입 능력을 자체적으로 확인하고 능력에 따라 수요예측 참여 기관에 배정할 물량을 정한다.

주관사의 관리가 부실할 경우 처벌 수위도 강해졌다. 허수 청약을 한 기관에 대해서는 배정 물량을 대폭 축소하고 수요예측 참여를 제한하는 등 페널티를 부과할 예정이다.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기재하지 않은 기관은 공모주를 배정받지도 못한다.

증권사는 기관이 확약한 의무 보유 기간에 따라 물량을 차등 배정하게 된다. 의무 보유 기간이 종료된 후 기관이 일시에 공모주를 대량으로 매도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공모주의 상장 당일 주가 변동폭이 첫날 공모가 대비 63~260%에서 60~400%까지로 바뀌었다.

금융위는 이번에 발표한 IPO 건전성 제고 방안을 통해 올해부터 적정 공모가가 산정되고 실제 수요와 납부 능력에 따라 공모주를 배정받을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은 실제 미래 가치에 따라 적정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되고 우량 기업의 경우 필요한 자금을 충분히 조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은 기관 투자자가 실제 수요와 납입 능력에 따라 공정한 거래 기회를 제공받고 안정적인 장기 투자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관사는 공모주 수요와 적정 가격, 청약 투자자들의 주금 납입 능력을 자율적으로 검토하고 결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차별화된 역량을 기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과거 논의됐던 코너스톤 제도 관련 논의는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더팩트 DB

◆ "책임 전가 아닌가"… 증권가, 실효성 '글쎄'

다만 증권가에서는 해당 개선안에 대해 불만을 갖는 모양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라는 비판이다. 우선 수요예측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은 유의미한 실익을 거두긴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IPO 호황기에는 물량을 받기 위해 첫날 주문이 몰리고, 반대로 불황기에는 낮은 가격에 참여하기 위해 마지막 날 주문이 집중된다.

사전 수요 조사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다수다. 현행 제도 아래에서도 대다수 증권사가 희망 공모가를 설정하기 전에 비공식적으로 기관투자가의 눈높이를 확인하고 있어서다. 사전 수요조사와 달리 가격 숫자와 공모 물량이 오가지 않지만 시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가격대를 책정하기 위해 이뤄져 왔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공모주에 투자하는 펀드 등 기관들은 마감 시기에 임박해 투자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수요예측 기간이 늘어난다고 해도 그동안의 관행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사전 수요조사에 참여하는 기관이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돼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사전 수요조사가 의미를 갖기 위해선 '코너스톤' 제도 도입까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불거진다. 코너스턴 제도는 IPO 시장에서 공모 물량 일부를 대형 기관투자자에게 공모가 확정 이전에 배정하는 것을 일컫는다. 2007년 홍콩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이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증시에서 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7년 코너스톤 제도 도입 논의가 불거졌다. 금융투자협회가 당시 IPO 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코너스톤 제도를 수면 위로 올렸다. 이후 한국거래소가 2018년 주요 사업계획에 명시하면서 제도 도입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2018~2019년 2년 연속 업무계획에 포함됐던 코너스톤 논의는 2020년부터 자취를 감춘 상태다.

주관사에서 허수 청약을 하는 기관의 주금 납입 능력 확인하기 어렵다는 토로도 불거진다. 한 증권사 임원은 "주관사가 공공기관이 아니기에 각 기관이 제출하는 서류만으로 각 기관의 현황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고의나 실수로 서류에 잘못된 사항이 기재되는 것을 증권사가 책임지며 페널티를 가져가야 하는 것은 불타당하다"고 말했다.

상장 당일 가격 변동 폭에 대한 불만도 적잖다. 투자심리 과열이나 투기적인 베팅 등으로 가격폭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견해다. 하방이 어느 정도 막혀있다고 생각해 투자자들이 공모주 투자에 대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인식하는 반면, 60~400%로 늘어나면 위험성이 큰 시장으로 보고 투자심리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위축된 IPO 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하는 처사"라면서 "(금융당국이) 코너스톤 도입과 연계해 자본법을 개정한다고 하지만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불평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중장기적으로는 주가 급등락 방지를 위해 IPO 단기차익거래 추적시스템 구축을 검토하고 있다. 의무보유를 확약하지 않은 기관들의 공모주 매도내역을 일정기간 모니터링하고, 이를 주관사에 제공해 향후 공모주 배정시 참고자료로 사용하도록 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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