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발등에 불'…정부·산업계 美 가이던스 발표 앞두고 대응 총력


현대차·기아, 미국 내 전기차 판매량 '빨간불'
산업계 "국내 업체 타격 불가피"
정부 기업 원팀 협력…미국 언론도 대응에 주목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국내 완성차 업계의 현지 전기차 판매량이 감소세로 돌아서는 등 부작용이 현실화하면서 정부와 산업계가 대응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뉴시스

[더팩트 | 서재근 기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으로 국내 완성차 업계의 현지 전기차 판매에 빨간불이 켜진 가운데 정부가 대응방안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재무부가 이달 말 IRA 관련 가이던스를 수립하기 전까지 전방위 외교전에 나서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 尹 정부, 외교채널 풀가동…美 정부에 IRA 개정 요구

13일 정부와 완성차·부품 업계에 따르면 지난주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이 미국 워싱턴DC를 방문해 IRA 대응방안을 논의한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외교부 이도훈 2차관이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SED) 참석을 위해 미국 워싱턴DC로 출국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8월 발효된 IRA 세부 규정을 명확히 하기 위한 가이던스를 수립, 올해 말까지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달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각 부문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정부는 '친환경 자동차 세액공제' 항목의 법 개정을 유도하고 더 나아가 재무부 가이던스를 통해 한국 기업이 최대한의 인센티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외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외교부는 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이도훈 외교부 2차관과 호세 페르난데즈 미 국무부 경제차관이 수석대표로 주재하는 제7차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제공

정부는 미국의 IRA 발표 이후 미국무역대표부(USRT)에 서한을 보내고, 미국 정부와 한미정부협상단 채널을 구축해 지난 9월 한미 정부 협상단 실무협의체를 가동하는 등 모든 채널을 가동해 미국 정부에 법 개정과 행정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이 같은 선제 대응은 지난달 미국과 첫 협의에 나선 유럽연합(EU)보다 수개월 빠른 행보다.

국회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8월 말 미국을 방문한 여야 국회의원단이 한국의 우려를 전달한 데 이어 9월 1일에는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기반한 미국의 한국산 전기차 세제 지원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적극적인 대응에 미국 언론들도 주목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미국 주요 동맹국들은 IRA에 분노하고 있다. 가장 반발하는 국가는 한국"이라고 설명했고, 블룸버그는 "유럽과 일본 등의 전기차 제조업체들도 보조금 차별 조항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유독 한국이 솔직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또 미국 재무부 가이던스에 한국 기업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의견을 반영시키기 위해 각계 의견 수렴을 거쳐 친환경차 세액공제 이행에 3년의 유예기간 부여, 상업용 친환경차 범위 확대, 배터리 요건 구체화 등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고, 대화에 나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미국 재무부에 친환경차 세액공제 관련 법 적용 유예 요구 등을 담은 의견서를 제출했다. /현대차그룹 제공

◆ 산업계, 정부와 원팀으로 IRA 대응 팔 걷어붙여

기업들도 산업계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민간외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IRA 대응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장재훈 현대자동차(현대차) 사장은 "IRA 발표 이후 정부에서 미국 행정부 및 의회 설득에 발 벗고 뛰었다"며 "다른 나라보다 가장 먼저, 또한 제일 적극적으로 미국 측에 문제제기를 하고 동맹국과의 공조를 이끌어 내고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현대차를 비롯해 국내 기업들은 정치권과 원팀을 이뤄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 친환경 자동차 세액 공제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법 개정 발의를 이끌어 냈다.

또한, 현대모비스와 만도, 한온시스템 등 250여 개 자동차 부품기업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비영리단체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은 최근 IRA 실행에 따른 국내 자동차 부품산 업계의 우려를 담은 서한을 미국 재무부와 주요 상·하원 의원들에게 전달했다. 이외에도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초 미국 재무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무역협회, 전국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6단체 역시 같은 달 미국 주요 상·하원 의원과 부처 장관 등에게 서한을 보냈다.

정부와 산업게가 IRA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완성차·부품·배터리 분야에 미칠 영향과 국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IRA는 미국 현지에서 생산된 전기차, 미국산 배터리 소재가 일정 기준 이상 포함된 차량에 한해서만 세액공제(보조금)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현대차 아이오닉 5(왼쪽)의 미국 판매량은 1191대로 전달 1579대보다 24% 줄었고, 기아 EV6 역시 1186대의 절반을 간신히 넘은 641대 팔리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차·기아 제공

◆ 현대차·기아, IRA 시행 후 미국 내 전기차 판매↓…포드에 2위 내줘

완성차 업계에서는 IRA 시행으로 '보조금 차별'이 현실화 할 경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국내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자동차산업 전망' 자료에서 IRA 적용으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가격경쟁력에서 밀려나면서 내년 수출이 전년 대비 4.2% 줄어든 210만 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도 IRA 시행으로 전기차 국내 생산이 위축되고,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하고, 미국산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주는 최종 조립요건을 수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내 현대차와 기아 판매량도 IRA 시행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다. 지난달 현대차 '아이오닉 5'의 미국 판매량은 1191대로 전달 1579대보다 24% 줄었고, 기아 'EV6' 역시 1186대의 절반 수준인 641대 팔리는 데 그쳤다.

미국 내 전기차 점유율 순위에서도 현대차·기아는 올해 누적(1~11월) 판매량 기준 5만3663대를 기록, 5만3752대를 기록한 미국 완성차 업체 포드에게 2위를 내줬다.

산업계 관계자는 "상하원을 통과해 발효된 법안을 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미국 정부와 의회를 설득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다"며 "지금은 재무부의 가이던스에 집중해 한국 기업들이 최대한의 혜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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