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최종 가격 방어선'을 자처했던 대형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이마트)들이 하나둘 경쟁에서 꼬리를 내리고 있다. 고물가 상황 속 제조업체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리면서 더 이상 '최저가'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진 터다. 업태간 출혈 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례로 '업계 최저가'를 내세우며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던 대형마트들은 최근 소리 소문 없이 매장 내 관련 현수막을 치웠다. 물가 안정 '구원투수'로 등판했지만 '3고(高) 시대'(고물가·고금리·고환율)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 대형마트 최저가 정책 중단 선언
올해 7월 이마트는 △계란 △쌀 △우유 △휴지 등 40대 생필품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쿠팡보다 싸게 판매하는 '가격의 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연말까지 진행 예정이었던 이 프로젝트는 최근 중단됐다. 당시 강희석 이마트 대표는 프로젝트 시작을 알리며 "고물가로 근심이 커진 소비자들의 부담을 덜고자 가격의 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며 "지속적인 최저가 관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이마트에 가면 김치와 계란 등 나에게 꼭 필요한 상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할 것이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최저가 정책을 확대해나가고 이후에도 고물가 상황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연장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췄다. 하지만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더 이상 마진을 낮출 수 없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자 이런 결정을 내렸다. 대신 자체 브랜드(PL)인 노브랜드·피코크 상품 가격을 연말까지 동결하기로 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가격의 끝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는 했지만 폐기한 것은 아니다"며 "당초 연장한다는 계획을 수정한 셈이다.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위해 연말까지 노브랜드 1500여개, 피코크 700여개 모든 상품의 가격을 동결했다"고 말했다.
롯데마트 역시 지난해 이마트의 최저가 정책에 맞불을 놓으며 이마트몰과 똑같은 가격에 판매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올해 중단됐다. 올해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가 "고물가 시대 최후의 가격 방어선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뒤 '물가 안정 TF(테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있지만 최저가 판매를 위해 들이는 비용과 시간 대비 수익성이 적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판매가 상승을 모두 막을 수는 없지만 가격 최종 방어선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최선을 다 할 것이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가운데서 홈플러스만 아직 '물가안정 최저가 보상제'를 진행 중이다. 주요 상품 가격을 비교·검색해 최저가가 아니면 차액을 환급해주는 제도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가 지속된다면 이 정책 또한 언제까지 추진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출혈 경쟁·고물가·원부자재 가격 상승…최저가 정책 중단
대형마트의 최저가 정책 중단은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추론이 가능하다. 지난 22일 대한상의가 유통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2022년 소비시장 10대 이슈'에 따르면 올해 유통업계 이슈로 △소비심리 악화(51.3%) △업태간 경쟁심화에 따른 수익성 악화(30.7%) △고물가로 인한 출혈 압박(25.7%)이 꼽혔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에도 소비심리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데다 고물가까지 겹치며 기업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경쟁은 심화됐다"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원부자재 가격 안정화도 불투명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는 △업태간 경쟁심화로 인한 수익성 악화 △고물가 압박 △원부자재 가격 인상 등 총 3가지 요인이 대형마트의 최저가 정책을 중단시키는데 '걸림돌'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 근거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는 대량으로 구매해 유통·물류비 절감을 통해 저렴하게 공급하는 방식이다"며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물가 상승 여파로 다가오는 부담은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특히 대형마트들이 최저가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는 납품 업체로부터 단가를 낮춰 상품을 받거나 마진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원부자재 가격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더 이상 정책을 유지하기가 힘든 것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자체적인 가격 관리로는 도저히 마진을 맞출 수 없는 상황까지 이르렀다"며 "납품 업체의 부담도 가중시킬 수 없는 실정이라 최저가 정책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