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박경현 기자] 내년 국내 주요 산업 전반이 위축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왔다. 공급망 블록화에 따른 글로벌 밸류체인(가치사슬) 후퇴, 인건비와 금리부담에 따른 사업 확장성 약화 등의 영향 때문이다.
20일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총 5개 산업군, 15개 산업을 분석해 전망한 '2023년 산업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연구소는 정유·2차전지를 제외한 나머지 13개 산업 업황이 올해보다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 주도 업종인 반도체·자동차 산업의 경우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영향에 업황 개선이 지연될 수 있다는 예상이다.
연구소는 "원자재 가격 부담은 올해보다는 다소 낮아지겠으나 여전히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원자재 가격이 낮아졌더라도 환율 상승으로 수입 가격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제조 원가 부담 가중이 장기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인한 수요 감소가 겹치면서 소재 및 부품업체들은 매출 감소와 수익성 하락의 이중고를 겪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산업 전반의 디지털 전환이 장기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코로나 특수를 누렸던 TV·컴퓨터와 같은 내구재 소비는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품으로 사용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업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운송산업군은 금리 급등과 글로벌 경기 하방 압력 증대, 소비 심리 위축 등에 운송 수요 감소가 우려되고 있다. 해운업은 글로벌 환경 규제마저 강화해 관련 기업들의 경우 투자 확대 부담이 있다. 특히, 강(强)달러로 인한 영향은 운송 산업 내에서도 세부 업종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자동차·조선·해운 등은 수혜를 볼 수 있는 반면, 항운은 여객 수요 감소 등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소비재 산업군에서는 간편식·건강기능식 등 신사업 확대가 기대되는 음식료 업종의 소폭 성장 외에 대부분의 산업에서 업황 위축이 우려되고 있다. 화장품 제조업은 내수는 양호하나 대중 수출은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산업군은 고금리에 따른 개발자금 조달 곤란으로 민간 주택 등 신규 착공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 실적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강달러·고유가로 인해 인바운드 관광객 수의 회복이 더뎌지며 호텔업을 중심으로 한 숙박업의 업황 회복도 지연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풀리며 회복됐던 숙박·여행·음식업 등 내수 서비스업종도 내년에는 회복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서비스 비용은 오른 반면 금리 상승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어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을 것이란 시각이다.
연구소는 2차전지와 정유업에는 긍정적 전망을 내놨다. 2차전지는 전기자동차 확산으로 수요 증가세가 기대되며 정유업은 내년에도 양호한 정제마진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고 있어 내년 양호한 업황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 전망에는 미국·중국의 전기차 판매가 내년에도 확대될 것이라는 분석이 내재돼 있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으로 인한 배터리 시장에서의 중국 배제 정책이 우리나라 배터리 업계에 득이 될 것이라고 봤다. 내년부터 대미 수출을 위한 배터리 셀·부품 및 소재 관련 직접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연구소의 예상이다.
정유업은 올해보다 정제 마진이 다소 줄겠지만 여전히 예년 대비 높은 수준의 정제 마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장기화에 따른 대체 에너지원 수요 확대로 내년에도 원유 수요가 견조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문태 연구위원은 "코로나 리오프닝 효과가 금리 급등으로 빠르게 식어가면서 수요 위축이 예상된다"며 "제조업체들의 원가 부담·재고 소진 위험도 있어 기업들의 경영 관리 역량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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