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20주년 특집-혁신이 답이다④] 제약바이오 '투자와 규제 완화', 컨트롤타워 시급!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 무산 가능성↑
美 행정명령에 K-바이오 피해 우려
업계 "규제혁신,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고 공약을 발표했으나 대통령 직속을 비롯한 정부 산하 위원회를 줄이기로 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윤 대통령(왼쪽)이 당선인 시절 경북 안동 SK바이오사이언스 공장을 방문해 코로나19 백신을 살펴보고 있는 모습. /윤석열 캠프 제공

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경계 융화 현상)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가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낡은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여러가지 규제 완화 방안이 언급되고 있지만, 대내외 운영 상황과 이해관계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더팩트>가 경제·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규제 혁신을 재계·유통·금융의 틀에서 짚어보고 문제를 진단한다. 규제 혁신, 어떤 변화가 있었고, 또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혁신이 답이다'가 11회 특별기획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문수연 기자] 윤석열 정부가 '바이오·디지털헬스 글로벌 중심 국가 도약'을 국정과제로 삼았지만 제약·바이오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산업 육성의 속도가 더딘 모습이다.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꼽히는 미국은 바이오 분야의 자국 생산 경쟁력 강화 방침을 내세웠다. 미국의 자국 보호주의가 제약·바이오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우리 기업들에게 미칠 영향이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 혁신과 투자 등 발빠른 대처가 시급하다.

◆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 설치 무산 우려, 'K-바이오 백신 펀드' 축소

10일 업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며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 의지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제약바이오강국 실현을 위한 컨트롤 타워로 국무총리 직속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 설치 △백신주권, 글로벌 허브 구축을 위한 국가 R&D 지원을 통해 제약바이오주권 확립 △제약바이오산업 핵심인재 양성 및 일자리 창출 생태계 조성을 통한 '국가경제 신성장, 제약바이오강국 실현' 등이다.

지난 5월에는 △바이오헬스 거버넌스 강화 △혁신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글로벌 메가펀드 조성 △제약바이오 핵심인력 양성, 바이오헬스 특화 규제 샌드박스 운영 △글로벌 바이오캠퍼스 조성 등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대통령실은 대통령, 국무총리, 정부 부처 위원회 629개 중 30% 이상 정비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30~50%가량의 위원회가 감축되고,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60~70%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혁신위원회가 원안보다 축소돼 설립되거나,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가 약속한 'K-바이오 백신 펀드'도 당초 제시한 금액보다 축소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내년 K-바이오 백신 펀드 예산 정부안을 1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앞서 복지부는 정부출자금 1000억 원과 국책은행(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출자금 1000억 원, 민간 자본 3000억 원 등 총 5000억 원을 백신 개발에 나서는 기업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내년에 조성되는 펀드 규모다. K-바이오 백신 펀드는 공공과 민간의 출자 비율이 4:6으로 고정돼 있어 민간 투자 규모도 줄어들게 된다. 내년에는 책정된 정부 예산 100억 원과 기존 펀드 수익금 100억 원, 국책은행 출자금 200억 원, 민간 투자금 600억 원 등 총 1000억 원의 백신 펀드가 조성될 예정이다. 2년간 펀드 금액은 6000억 원에 그치게 된다.

미국이 바이오 분야에서 자국 보호주의를 강화하면서 위탁생산(CMO)과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도 영향이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사진은 SK바이오사이언스 안동 L하우스에서 연구원이 연구 중인 모습. /문수연 기자

◆ 美 바이오 자국 보호주의 강화에 국내 기업 영향은?

우리 정부의 제약바이오 산업 육성이 더딘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바이오 분야에서 자국 보호주의를 강화하면서 위탁생산(CMO)과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SK바이오사이언스 등 국내 바이오 기업들에도 영향이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 백악관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속가능하고 안전하며 안심할 수 있는 미국 바이오경제를 위한 생명공학·바이오 제조 혁신 증진 행정명령'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행정명령 이행을 위해 20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자국 내 생산' 원칙을 명시한 독소조항이 포함되면 미국 업체에만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 경우 모더나 백신을 생산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노바백스 백신을 만드는 SK바이오사이언스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우리 정부는 한미 간 협의채널을 통해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바이오업계에서는 "조건에 따라 미국에 수출하거나, 미국 현지 진출을 모색, 해외에서 미국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기업이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우리나라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KPBMA 제약바이오 CEO 워크숍에서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식약처가 과감한 규제혁신에 앞장선다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수연 기자

◆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 핵심은 '규제 혁신'"

국내 제약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장기 전략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제약바이오업계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뿐만 아니라 규제 혁신도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지난달 2일 열린 'KPBMA 제약바이오 CEO 워크숍'에서 "식약처가 과감한 규제혁신에 앞장선다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으며,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식약처는 혁신과 소통을 통해 규제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 강석연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은 전주기 규제서비스 강화와 원료의약품 복수 규격 허용을 통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 등을 제시했다.

오유경 처장은 '국제 기준을 선도하는 식의약 규제'를 식약처의 목표로 제시하며 △신기술에 맞는 새로운 길 제시, 미래 도전과 혁신을 촉진 △규제단계의 가속 페달을 밟아, 제품화 성공을 넘어 글로벌 진출 견인 △상시 혁신체계를 통한 불필요한 빨간불 제거, 현장 체감형 혁신 주도 등의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강석연 식약처 의약품안전국장은 식약처가 지난달 발표한 '규제혁신 100대 과제'에 그간 산업계의 요구를 반영한 개선사항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전주기 규제서비스 강화(전주기 제품화전략지원단 운영과 정규조직화 등) △원료의약품 복수 규격 허용을 통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공정서 규격 포함한 원료의 관리 개선 등) △의약품 부작용 피해구제제도 합리적 개선(추가부담금 관련 약사법 문구 삭제 등) 등이다.

제약바이오업계는 규제개선 요구사항을 식약처에 전달했다. △해외에서 제한이 없는 치료용 신경정신약물의 의료목적 연구개발이 가능하도록 규제를 개선해줄 것 △의약품 외용제에 대해선 주요 선진국들의 규제를 적용해 유전독성 자료 제출을 면제해줄 것 △최근 비대면 흐름을 감안한 디지털마케팅 등 의료기기 광고 심의 체계 개편과 신약개발 및 허가 관련 규정 교육 강화의 필요성 등이다.

식약처는 주성분 복수 규격 인정을 추진하는 데 이어 워크숍 이후 복수 제조원 코팅제를 허가사항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제약바이오업계의 규제개선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의약품 제조업체들이 동일 규격의 복수 제조원 코팅제를 의약품 허가 사항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며 "건의사항에 대한 추가 조치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국가 차원의 연구개발비 투자를 20% 이상으로 대폭 확대하는 실효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세액 공제 등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예측가능한 안정적 약가제도를 운용하는 것도 산업계의 연구개발 의지를 북돋는 장치다"라고 말했다.

이어 "또한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 거시적 관점에서 연구개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 기업들이 뚝심있게 신약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규제과학부처인 식약처가 과감한 규제혁신과 산업 생태계 조성에 앞장선다면, 이는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 [창립 20주년 특집-혁신이 답이다①] '낡은 규제' 금산분리법 완화 '필수'

☞ [창립 20주년 특집-혁신이 답이다②] '신탁 규제' 완화, 자본 시장 선진화 '첩경'

☞ [창립 20주년 특집-혁신이 답이다③] 글로벌 디지털 자산 법제화, 혁신 금융의 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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