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간 경계가 사라지는 빅블러(Big Blur·경계 융화 현상)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가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낡은 규제를 과감하게 혁파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여러가지 규제 완화 방안이 언급되고 있지만, 대내외 운영 상황과 이해관계 대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더팩트>가 경제·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규제 혁신을 재계·유통·금융의 틀에서 짚어보고 문제를 진단한다. 규제 혁신, 어떤 변화가 있었고, 또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를 '혁신이 답이다'가 11회 특별기획 시리즈로 조명한다. <편집자주>
[더팩트|윤정원 기자] 금융당국이 디지털 자산시장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틀을 닦고 있다. 관련 정책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디지털 자산과 기존 금융의 결합은 향후 시장의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글로벌 디지털 자산 변화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한 국내 시장의 노력과 전망을 짚어본다.
◆ 금융당국, 글로벌 디지털 자산 변화 '발맞춤'
정부는 국정과제 중 하나인 디지털 자산 규율 체계를 마련에 나섰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6일 열린 '증권형 토큰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 방향' 세미나에서 '증권형 토큰(Security Token‧ST)' 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증권형 토큰이란 증권성이 있는 권리를 토큰 형태로 발행한 것을 말한다. 현행 자본시장 및 전자증권 제도는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이나 이를 통한 정형화되지 않은 증권의 유통을 상정하지 않는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안정적 거래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전자증권 제도에 증권형 토큰을 포섭함으로써 다양한 블록체인 기술이 증권 발행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투자자의 재산권도 견고하게 보호하겠다"고 설명했다. 김 부위원장은 "어떤 디지털 자산이 증권형 토큰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증권으로 볼 가능성이 높거나 낮은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자본시장법규 적용의 예측 가능성을 키워 나가겠다"며 올해 4분기 중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예시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이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을 공표한 것은 글로벌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시대적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현재 미국의 경우 국제송금용 가상자산인 리플을 관리·운영하는 회사인 리플랩스(Ripple Labs)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와 디지털 자산인 리플이 '증권'인지 '상품'인지를 두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리플로 대변되는 특정 가상자산의 증권성 판단이 전 세계 디지털 자산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이정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분 증권형 토큰과 투자계약 증권형 토큰 간 간격처럼 같은 증권형 토큰이어도 성격 차이가 크다"면서 "스펙트럼이 있는 증권형 토큰을 동일하게 규제해야 하는지 등을 장기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증권형 토큰이지만 토큰형태의 증권이라는 점에 주목해볼 만 하다"며 "증권의 성격을 좀더 적극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자금조달 매개이자 중개로 비즈니스까지 가능하다는 의미다. 증권형 토큰도 이같은 부분에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증권형 토큰, 증권사 미래 먹거리 되나
금융당국은 증권형 토큰의 유통과 관련, 금융위원회는 검증된 증권시장의 기존 인프라를 우선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증권형 토큰을 유통하는 장내 시장의 경우, 한국거래소 내에 디지털 자산 특화 거래소를 개설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5월 전략기획부 산하에 신사업 태스크포스(TF)를 설립해 증권형토큰을 비롯한 가상자산을 연구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매매 중개는 라이선스가 있는 증권사가 맡을 전망이다. 투자자 보호와 규제 차익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증권과 같은 유통 방식을 적용하는 셈이다. 장외시장 거래는 허용하되 시장이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는 규모를 제한한다는 취지다. 증권사들은 향후 대체거래소(ATS) 개념의 증권형 토큰 사업자 역할을 맡을 가능성도 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증권형 토큰은 그동안 딜 소싱과 투자은행(IB) 업무에서 강점을 보인 증권사에 새로운 미래 먹거리가 될 소지가 대단히 크다"고 분석했다.
금융위는 올해 4분기 중으로 증권형 토큰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증권형 토큰에 대한 규율방향과 발행 및 사업화에 필요한 고려사항을 안내할 계획이다. 내년부터는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령 개정 등을 통해 증권형 토큰 규율체계를 확립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법적 기반 완비 전에도 금융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우선적으로 시범 시장을 조성해 나가면서 그 결과도 함께 고려하여 정식 제도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뮤직카우' 저작권 투자도 청신호…혁신금융 내실화
금융위는 증권형 토큰 외에도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혁신금융 서비스 발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음악 저작권료 참여 청구권 투자 플랫폼 뮤직카우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며 눈길을 끌었다. 금융위는 지난달 7일 정례회의를 열고 키움증권 및 하나은행과 연계하고 있는 뮤직카우를 포함해 총 13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신규 지정했다. 이로써 현재까지 금융위가 지정한 혁신금융서비스는 총 224건으로 늘어나게 됐다.
뮤직카우의 경우 자본시장법상 인허가 규정, 신탁 수익증권 발행 규정 등에 관한 특례를 부여했다. 음악 저작권을 신탁을 활용해 수익증권으로 분할 발행하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투자자에게 유통하는 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원저작자로부터 음악 저작권을 양도받은 저작권매입법인이 신탁회사와 저작재산권 관리신탁계약을 체결해 신탁수익증권을 발행하고, 투자자는 유동화된 수익증권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신용카드사의 타 신용카드사 카드상품 추천 서비스(신한카드·KB국민카드·롯데카드·비씨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도 같은 날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된 예다. 해당 서비스는 마이데이터 사업자인 신용카드사가 소비자에게 자사 상품 뿐만 아니라 타사 카드상품을 포함해 비교·추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카드사의 제휴모집인 자격 취득 제한으로 카드사인 마이데이터사업자는 자사 상품만 비교·추천이 가능하나, 금융위는 마이데이터 서비스 '앱'에 한해 카드사 간 업무 제휴를 통해 타사의 카드상품을 비교·추천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했다.
해외주식 소수단위 거래 서비스도 운신 폭이 넓어졌다. 해외주식 소수단위 거래 서비스는 투자자가 증권사의 HTS(홈트레이딩시스템), 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을 통해 해외주식을 소수단위로 매매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위는 이미 지난해 11월 20개 증권사에 대해 허용했으며, 내년 상반기부터 IBK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 SK증권, 현대차증권, 상상인증권 등도 전산개발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선보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