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오너가 3세 경영 시대가 열리는 분위기다. 그룹 내 영향력이 커지며 경영 전면에 등장하는 오너가 3세가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 1980년대생인 이들은 경영 승계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젊은 리더십을 발휘하며 사업적 성과를 창출하는 데 집중할 전망이다.
7일 재계에 따르면 최근 경영 행보와 관련해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오너가 3세는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일본 롯데홀딩스 부장)다. 1986년생인 그는 아버지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사면 후 첫 해외 출장에 동행하며 주요 현지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이와 관련해 신동빈 회장이 신유열 상무를 해외 주요 인사들에게 직접 소개하면서 후계자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동빈 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 등을 만나 그룹의 베트남 사업 전반에 대해 논의했다.
신유열 상무가 신동빈 회장과 함께 출장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일 열린 '투티엠 에코스마트시티' 착공식 등 주요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나서진 않았지만, '롯데의 제3 거점 국가'로 꼽히는 주요 시장에서 사실상 데뷔전을 가진 것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후계자를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해외 사업의 핵심 무대가 될 동남아에서 초대형 프로젝트를 맡기며 경영 승계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롯데그룹 측은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이번 출장 건을 유의미하게 다루지 않더라도 신유열 상무의 그룹 내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해 롯데케미칼 일본 지사에 합류하며 신동빈 회장의 경영 승계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다. 신유열 상무는 신동빈 회장과 마찬가지로 일본 대학 졸업 후 노무라증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이후 일본 롯데 근무를 거쳐 롯데케미칼에 합류한 것도 유사하다.
바로 한국 롯데케미칼(당시 호남석유화학)에 입사했던 신동빈 회장과 달리 일본 지사를 거치는 방식을 선택했지만, 추후 한국에서 몸담을 첫 계열사로 롯데케미칼이 유력한 상황이다. 신동빈 회장이 롯데케미칼에 합류하며 경영 수업을 시작한 나이(35세)와 신유열 상무의 현재 나이(36세)가 비슷한 데다, 롯데 오너가 재판과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되며 그룹이 안정화된 점도 후계를 거론할 수 있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오너가 3세 가운데 경영 행보가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부회장이다. 1983년생인 그는 지난달 29일 단행된 한화그룹 사장단 인사를 통해 사장에 오른 지 2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또 기존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에 더해 ㈜한화 전략부문·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전략부문 대표이사도 함께 맡게 됐다. 기존 그룹 주력인 화학부터 태양광·우주·방산 등 신사업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위치에 올라선 셈이다. 그룹 후계자 자리에 도장을 찍었다.
한화그룹은 "김동관 부회장은 사업 경쟁력 강화, 미래 전략 사업 발굴·투자 등을 적극 추진해왔다"며 "비즈니스 전략 전문성과 글로벌 역량을 바탕으로 사업 전략 추진에 탁월한 성과를 창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승진으로 김동관 부회장의 경영 보폭은 더욱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 역할 확대에 따라 주요 의사 결정에 이전보다 더 적극 참여하고, 재계 주요 행사도 김승연 회장을 대신해 참여할 가능성이 커졌다. 김동관 부회장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한화그룹을 대표해 공식 환영 만찬에 참석, 재계 총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김동관 부회장의 향후 경영 행보에 대해 "미래 사업 추진에 있어 김승연 회장의 경영 구상을 구현해나가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주요 주주로서 책임 경영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그룹 오너 3세 정기선 HD현대·한국조선해양 사장도 신유열 상무, 김동관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유력한 차기 총수로 평가받는다. 1982년생인 정기선 사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으로, 지난해 10월 HD현대·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데 이어, 올해 주총에서 현대중공업지주 등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특히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 2022'에서 글로벌 데뷔 무대를 갖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선박 자율운항 전문회사인 아비커스를 찾아 임직원들을 만나는 등 대외 활동 보폭을 늘리는 중이다.
이외에도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인 최성환(41) 사업총괄 역시 올해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의 장남 박준경(44) 금호석유화학 영업본부장(부사장)도 올해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3세 경영'의 본격적인 체제를 갖췄다는 분석이다.
향후 이들은 경영 성과를 창출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경영 전면에 나서는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신사업 부문에서의 전략 구상·투자 행보에 시선이 쏠린다. 재계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이 오너가 3세의 역할을 신사업 부문에서 제시하고 있다"며 "추후 승계 작업 시 경영 능력과 관련한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 기존 사업과는 다른 영역에서 단독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한, 경영권 승계 측면에서는 지분 확보가 과제로 언급되고 있다. 신유열 상무의 경우 롯데그룹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룹 내 입지가 탄탄한 김동관 부회장 사례도 그룹 지주사 격인 ㈜한화 지분이 4.4%에 불과해 경영권 승계 완료까지 아직 먼 이야기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기선 사장의 HD현대 지분율은 5.2%로 부친 지분 26.6%를 넘겨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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