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현 24주기…대 이은 SK ESG 경영 50년 재조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24주기…별도 행사 없이 조용히

26일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서거 24주기를 맞았다. 사진은 1982년 1월 최종현 선대회장이 신입사원 연수 교육 과정에 참석, SKMS를 주제로 특강을 펼치는 모습. /SK그룹 제공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26일 고(故)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 서거 24주기를 맞은 가운데, 최태원 회장을 포함해 SK 부자가 50년간 추진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재계 안팎에서 재조명되고 있다.

SK그룹은 이날 최종현 선대회장 서거 24주기와 관련해 별도 행사를 개최하지 않고 조용한 추모를 이어갔다. 다만 기일을 맞아 50년간 진행된 SK ESG 경영 발자취를 조명하는 자료와 ESG 경영 히스토리를 담은 영상을 외부로 공개하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62년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SK에 합류한 뒤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고 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면서 대한민국의 성장 기반을 닦은 경영인이다.

또한,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으로,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조림과 인재 양성에 집중하며 ESG 경영의 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들인 최태원 회장은 선대회장 유지를 이어받아 탄소감축 경영과 비즈니스 모델 혁신, 이사회 중심 경영을 펼치며 ESG 경영을 한 차원 더 강화하고 있다.

◆ 50년 전부터 환경·사회 중시하는 경영 시작

구체적으로 최종현 선대회장은 일찌감치 산림과 인재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숲과 인재 양성에 주력했다. 무분별한 벌목으로 전국에 민둥산이 늘어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다 1972년 서해개발주식회사(현 SK임업)를 설립한 뒤 천안 광덕산, 충주 인등산, 영동 시항산 등을 사들여 국내 최초로 기업형 조림 사업을 시작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임야 매입을 부동산 투자로 바라보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수도권에서 거리가 먼 지방의 황무지를 사들였고 자작나무 등 고급 활엽수를 심어 산림녹화에 나섰다. 이런 노력으로 50년 전 민둥산은 4500ha에 걸쳐 400만 그루의 나무가 심어진 울창한 숲으로 변신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조성한 숲은 서울 남산의 40배 크기에 달한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심은 나무는 인재 양성의 밑거름이 됐다. 그는 자원이 부족한 국가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수한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조림에서 발생한 수익을 장학 사업에 사용하기로 했다. 경영이 어려워지더라도 나무에서 나온 수익금을 장학금에 사용, 지속가능한 장학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나무를 키워 현금화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 우선 사재 5540만 원을 출연해 1974년 11월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설립 뒤에는 '세계 수준의 학자 양성'이라는 목표 아래 매년 유학생을 선발, 해외로 보냈고 학비와 생활비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급,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학위 취득 시 SK 근무와 같은 일체의 조건도 달지 않았다. 1974년부터 시작된 고등교육재단 장학 사업은 IMF와 세계금융위기 등 극심한 경제 위기에도 계속됐고 현재까지 장학생 4000여 명과 박사 820여 명을 배출한 '인재의 요람'으로 성장했다.

1970년대 일요일 아침을 깨웠던 장학퀴즈도 SK의 대표적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3년 장학퀴즈가 광고주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처하자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단 한 명이 보더라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며 단독 광고주로 나선 이후 2300여 회가 방영된 현재까지 50년가량 후원하고 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부인 고(故) 박계희 여사와 인등산에 나무를 심고 있다. /SK그룹 제공

◆ 최태원 회장, ESG 경영 한 차원 업그레이드

최태원 회장은 ESG를 그룹의 핵심 성장 동력원으로 삼고 경영 체질의 전반적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SK그룹은 최근 ESG와 관련해 가장 분주히 움직이는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관계사 각각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과 환경 스토리를 만들어야 하고 남들보다 빨리 움직여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문한 뒤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의 100%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는 RE100에 국내 기업 최초로 가입했다.

이어 2050년 이전까지 넷제로를 조기에 달성하겠다고 결의한 뒤 2030년 기준 전 세계 탄소감축 목표량(210억톤)의 1%를 SK가 줄이겠다고 공표했다. 이를 위해 SK는 글로벌 테크기업과 친환경 기술 생태계를 구축했고 세부적으로 실천할 방법론과 구체적 목표치를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등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특히 SK는 최근 친환경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내면서 최태원 회장이 강조한 넷제로 경영을 구체화하고 있다.

SK는 2020년 말 수소사업추진단을 조직한 뒤 그룹 내 에너지 인프라를 활용해 수소 생산과 유통, 공급에 이르는 밸류 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또 플러그 파워 등 수소 관련 글로벌 기업에 대한 투자도 늘려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등 전통적 에너지 기업은 전기차배터리와 친환경·신재생 에너지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과거 필름 회사였던 SKC는 2차전지 소재인 동박을 제조하는 그린 기업으로 전환했다. SK건설은 23년 만에 사명을 '건설'에서 '에코플랜트'로 바꾸고 친환경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 친환경 사업 강화를 위해 관련 인력과 역량은 한곳에 모은 'SK 그린캠퍼스'를 지난 1월 오픈했고 연구·개발에 집중할 'SK그린테크노캠퍼스'도 2027년 출범시킬 예정이다.

최태원 회장은 국내 기업 최초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인정한 탄소배출권을 확보했고 파푸아뉴기니와 스리랑카 등 해외에서도 탄소배출권을 확보하는 등 'K-Forest'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이 밖에도 최태원 회장은 ESG 경영을 함께할 인재 양성을 위해 연세대와 강원대에 ESG 관련 강좌를 개설했고 지난해에는 연세대 등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할 혁신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장학퀴즈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대를 이은 후원으로, 현재까지 49년째 이어지는 SK의 대표적인 장학 사업이다. /SK그룹 제공

◆ 국내 최초 경영 시스템 정립…이사회 중심 경영으로 진화 발전

최종현 선대회장은 국내 최초로 체계화된 경영 시스템을 도입, 지배구조 선진화를 꾀했다. 기업이 대형화·세계화되고 사회 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주먹구구식 경영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SK의 경영 철학과 목표, 경영 방법론을 통일되게 정의하고 업무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도록 1979년 SK경영관리시스템을 정립했다.

경영 관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던 시절 SKMS는 경영 관리 요소와 일처리 방식 등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 기업 경쟁력을 강화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정립한 SKMS는 경영 환경과 사회적 요구에 맞춰 2020년 2월까지 14차례 개정을 거쳤고 최태원 회장은 기업 경영 목표에 이해관계자와 구성원 행복, 사회적 가치 추구 등을 반영시키면서 사회와 공생하는 기업으로 지배구조를 변화시켰다.

특히 최태원 회장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의 장기적 신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법론으로 거버넌스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를 위해 최태원 회장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제적으로 도입했다. SK의 이사회가 최고경영자(CEO)를 평가·보상하고, 대표이사 후보를 추천하거나 중장기 성장 전략을 검토하는 실질적 권한을 부여했다. 또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에게 맡기는 등 내용과 형식 면에서 외부 인사가 중심이 된 이사회 경영을 펼치고 있다.

실제 지난해 8월 SK㈜ 이사회에서 최태원 회장이 반대표를 던진 해외투자 안건에 나머지 이사들이 찬성, 해당 안건이 가결되기도 했다. SKC의 경우 2차전지 음극재 시장 진출을 위해 추진한 해외 투자 안건이 부결되는 등 이사회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

◆ 화장 시설 기부 등 장묘 문화 개선 노력

최종현 선대회장이 남긴 또 하나의 업적은 장묘 문화 개선이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평소 무덤으로 좁은 국토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며 화장을 통한 장례 문화 개선을 주장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1998년 8월 타계하면서 "내가 죽으면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 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 SK가 장례 문화 개선에 앞장서 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실제 최종현 선대회장은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고, SK는 2010년 1월 500억 원을 들여 충남 연기군 세종시에 장례 시설인 '은하수 공원'을 조성해 기부했다. 최종현 선대회장 유언을 계기로 화장률이 1998년 27%에서 10년 뒤 62%, 최근에는 90%로 상승했고 화장 시설 공급난이 해소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다.

SK 관계자는 "선대회장은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라는 신념으로 산림과 인재를 육성해 사회와 국가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도록 했다"며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을 이어받아 ESG 경영을 더욱 고도화해 이해관계자의 행복을 더 키워나가겠다"고 말했다.

rocky@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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