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서재근 기자] 현대자동차그룹(현대차그룹)이 현대차와 기아의 전용 전기차 모델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에도 마냥 웃지 못하는 모양새다. 글로벌 전기차 빅마켓으로 꼽히는 미국 현지에서 몇 년간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그룹 내부에서는 벌써 현대차 '아이오닉 5'를 필두로 '아이오닉 6', 기아 'EV6' 등이 북미, 유럽 시장에서 잇단 호평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보조금 이슈'가 자칫 글로벌 판매에 찬물을 끼얹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4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브랜드 아이오닉의 두 번째 모델인 '아이오닉 6'가 지난 22일 전국 영업점을 통해 시행한 사전계약 첫날, 국내 완성차 모델 역대 최다인 3만7446대의 계약대수를 기록하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새 역사를 썼다.
특히, 이번 기록은 '아이오닉 5'가 보유한 국내 완성차 모델 역대 최다 첫날 사전계약 대수 2만3760대를 불과 1년 반 만에 1만3686대 초과 달성한 것으로 전동화 전환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음을 보여주는 성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글로벌 시장에서 이어지는 현지 주요 매체들의 호평도 현대차와 기아의 달라진 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아이오닉 5'의 경우 '2022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를 수상한 데 이어 '2022 독일 올해의 차', '2022 영국 올해의 차'에 선정됐다. 이어 독일의 아우토 빌트 최고의 수입차 전기차 부문 1위, 아우토 자이퉁 전기차 비교평가 종합 1위를 비롯해 미국 자동차 전문지 카앤드라이버가 발표한 '2022 올해의 전기차'에 이름을 올리는 등 글로벌 미디어와 소비자들로부터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본격적으로 글로벌 데뷔를 앞둔 '아이오닉 6' 역시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 아우토빌트, 카앤드라이버 등 유럽과 북미 주요 매체로부터 "최고 수준의 공기역학 성능과 뛰어난 실내외 디자인을 갖췄다"는 호평을 받으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긍정적인 시장 평가에 힘입어 글로벌 판매량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현대차와 기아는 올해(1~7월) 미국 현지에서 각각 1만8328대, 2만1156대를 판매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현대차는 69%, 기아는 142%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 같은 호실적에도 현대차그룹의 속내는 복잡하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전날(23일) 오전 공영운 현대차 사장을 미국으로 파견했다. 업계에서는 공 사장의 이번 미국 출장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자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서만 세액공제(보조금) 혜택을 준다는 내용을 담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서명한 데 따른 대응책의 일환으로 보고 있다.
당장 이달부터 IRA 법안이 발효되면서 미국 생산라인을 갖추지 못한 현대차와 기아는 전기차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7만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현대차와 기아는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와 'EV6'를 전량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다.
현대차는 착공을 앞둔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의 완공 목표 시점을 오는 2025년 상반기에서 6개월 빠른 내년 하반기로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실제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최근 방한한 팻 윌슨 조지아주 경제개발부 장관과 현지 전기차 전용공장 착공을 앞당기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생산 시점을 6개월 앞당긴다고 해도 전기차 전용공장 설립까지 통상 2년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2024년 하반기까지는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최근 부랴부랴 한국산 차량을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 미국 IRA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여부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22일(현지시간)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IRA로 대미 투자에 나서는 한국 기업이 받을 피해에 관한 질문에 "(IRA는) 수개월에 걸쳐 검토된 법률의 중요한 부분"이라며 법안의 당위성을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북미 시장은 상대적으로 성장세가 뚜렷하지 않은 중국이나 일본 시장과 달리 현대차그룹이 유럽과 더불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전략적 거점"이라며 "아무리 현지에서 전기차 공장을 서둘러 짓는다고 해도 물리적인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특히, 최근 현대차 '아이오닉 5'와 기아 'EV6'의 선전에 힘입어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바이든 정부가 밀어붙인 IRA는 꽤 부담스러운 리스크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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