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차량용 반도체와 부품 공급 문제로 신차 출고가 지연되는 가운데 자동차에 쓰이는 강판값이 상승과 더불어 연식변경이 진행되면서 '카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차 출고를 기다리는 사이 많게는 수백만 원씩 가격이 상승하는데다, 차량 브랜드별로 고급화 전략을 추진하면서 차값 상승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2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현대자동차의 올해 1분기 내수 승용차 평균 판매가는 4609만4000원으로 지난해(4498만4500원)보다 2.4% 올랐다. 기아의 경우 올해 1분기 평균이 3790만8000원으로 전년(3748만3500원)보다 1.1% 상승했다.
지난해 기준 내수 판매액은 76조6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8% 증가했으며, 평균 신차 판매가격은 처음으로 4000만 원을 넘어 4420만 원을 기록했다.
최근에는 차량용 반도체와 부품 수급 문제로 신차 출고가 지연되면서 가격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계약 이후 최소 6개월에서 1년 8개월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이 와중에 연식변경이 진행될 경우 강제로 가격이 수백만 원 상승하게 된다.
자동차 매매 약관상 사양변경으로 변동된 비용은 소비자가 모두 부담해야 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량 계약을 취소하거나 상승한 가격을 그대로 부담하는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다.
최근 현대차는 전기차 아이오닉5 롱레인지 모델의 연식변경을 통해 가격을 430만 원 인상했으며, 투싼 1.6T 가솔린(프리미엄) 모델도 231만 원 올렸다. 기아는 스포티지와 K5에서 각각 무선충전기와 뒷좌석 커튼 등을 추가하면서 32~39만 원 가격을 올렸다.
르노코리아자동차는 QM6 GDe 모델에 긴급제동 보조 시스템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추가하고 108만 원 가격을 올렸으며, 한국GM의 트레일블레이저는 하위 2개 트림을 없애면서 사실상 가격을 인상했다.
여기에 하반기에는 차량 제작용 강판 가격도 상승할 전망이라 원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철강업계가 자동차 강판 가격 인상을 예고하자 차량구매를 앞둔 소비자 부담이 늘어날 전망이다. 철강업체들은 철광석과 석탄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해 수익성을 보전하기 위해 자동차용 강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지난 2분기 실적 간담회에서 하반기 강판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가격 상승분은 결국 소비자에게 경제적 부담으로 전가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가격을 평균 4000만 원, 원가 상승에 따라 가격이 2% 상승한다고 가정하면 대당 약 80만 원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자동차 업체가 차량을 고급화하는 전략도 차값 상승의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중 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최근 주요 완성차 기업은 수익성이 낮은 소형 세단·해치백 생산을 줄이고 수익성이 높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나 픽업트럭, 프리미엄 차종의 비중을 확대하는 추세"라며 "특히 코로나19 이후 주요 완성차 기업들은 자동차 반도체 공급난에 맞서 수익성이 높은 차종을 보다 많이 생산함으로써 판매대수 감소에 따른 실적 하락을 상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올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영업이익은 판매 물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제네시스, SUV 중심의 판매 믹스 개선(고부가 가치 제품의 판매 확대)과 선진국 중심의 지역 믹스 개선에 우호적인 환율 효과까지 더해져 전년 동기 대비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아 역시 2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상품성 개선과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따른 사양·트림 믹스 개선 등 적극적인 '제값받기' 가격 정책을 지속해 큰 폭의 평균 판매가격 상승을 달성하며 매출과 수익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와 기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들 모두 고급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아우디는 B세그먼트(소형차)급인 A1과 소형 크로스오버차량(CUV) Q2를 단종했으며, 쉐보레는 A세그먼트(경차)인 '스파크'의 단종을 결정했다. 폭스바겐도 경형 해치백 '업(UP)' 후속 모델을 내지 않고 프리미엄 차종 판매 전략을 도입했다.
자동차 가격 상승에 따라 생계 수단으로서의 자동차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중 연구원은 "저렴한 자동차의 선택지가 줄어드는 가운데 특정 세대·소득 계층의 구매력이 급감하면 생계수단으로서의 차에 대한 경제적 접근성(vehicle affordability)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면서 "취약계층의 자동차 구매여력 변화에 대응해 세금 감면 등 세제 전반을 재검토하는 한편, 자동차 생산 비용을 구조적으로 절감하기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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