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정부와 한국낙농육우협회(이하 낙농협회)가 진행하던 원유가격제도 개편 협의가 잠정 중단된 가운데 식품업계에서는 만약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우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져 '밀크플레이션'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다만 관련 업체들은 낙농가와 소비자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유 납품 거부까지 일어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30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낙농협회와 원유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골자로 한 정부의 낙농제도 개편안을 두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용도별 차등가격제는 원유 쓰임에 따라 음용유와 가공유로 나눠 원유 가격을 다르게 적용하는 제도다.
정부는 낙농가의 원유 납품 물량을 일정량 보장하고, 생산비에 따라 원유 가격을 책정하는 현행 '생산비 연동제'가 낙농 산업 발전을 저해한다고 판단했으며, 이번 차등가격제 도입으로 국산 원유의 시장 내 입지를 넓히고 가공유 생산을 늘려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도를 도입한다면 국산 원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해외 원유를 수입해 유가공품을 만들던 국내 유업체들이 국산 원유를 활용한 생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낙농협회 등은 제도가 도입된다면 유가공업체들이 흰 우유용 음용유 가격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공급받고, 치즈·아이스크림·분유 등을 위한 가공유는 현재보다 낮은 가격에 사들일 수 있기 때문에 농가의 소득이 크게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낙농협회를 중심으로 '우유 납품 거부'까지 거론되며 강경 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식품업계에서는 낙농가가 실제로 납품을 거부하면 '우유 공급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상황이 장기화한다면 우유나 버터, 치즈를 재료로 하는 빵 등의 가격이 오르는 '밀크플레이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A 식품업체 관계자는 "상황이 대립 상태로 이어지고 (우윳값 개편) 중단 선언까지 나왔는데 업체들은 입장을 낸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B 식품업체 관계자는 "실제로 7월과 8월은 날씨가 더워 낙농가에서 생산량 자체가 줄어드는 시기이고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원유 수급 불안이 장기화한다면 빵이나 아이스크림, 2차 가공 제품까지 인상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식품업계에서는 관련 업체들과 낙농가, 소비자 등의 피해가 커질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납품 거부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일어날 가능성은 미미하다고 내다봤다.
C 식품업체 관계자는 "대표적인 유제품 회사들은 주로 국산 원유를 쓰는데 우리나라 전체 기준으로 봤을 때는 해외 원유 수입량이 54%, 국산 원유 생산량이 46%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업체들은 최악의 경우 원유 수급을 중단했을 때 바로 해외에서 원유를 가져오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당장의 대책은 없는 상태"라고 토로했다.
한 제과업계 관계자는 "빵은 수입 멸균우유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큰 제품 수급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며 "낙농가와 소비자 피해가 커질 것이 자명한 상황에서 실제 납품 거부까지 일어날 수 있을까 싶지만,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낙농협회와 정부 간 신뢰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며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제도 개편과 원유가격 결정을 위한 논의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진행 중인 낙농가, 농협, 지자체와의 간담회·설명회는 지속할 계획"이라며 "여건이 개선되면 낙농협회와도 즉시 논의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낙농협회는 지난 28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가 신뢰를 말하기 전에 전국 낙농가들에게 믿음을 주었는지 반성부터 하길 바란다"며 "정부가 지나간 해묵은 감정으로 싸움을 걸어올 시간에 현장 낙농가들은 피말라 간다. 지금, 이 시간부터라도 제발 터놓고 협의하자"라고 반발했다.
낙농협회 등은 지난 11일부터 충남을 시작으로 27일까지 충북, 강원, 전남 등에서 궐기대회를 개최하며 반발에 나섰다. 정부와 낙농협회는 개편안을 두고 이견을 지속하면서 오는 8월 1일을 기한으로 두고 있는 새 원유가격도 결정하지 못했다. 이같은 상태로 원유가격이 현재의 값으로 고정될 경우, 낙농가들은 올해 급등한 사룟값을 비롯해 생산비 상승 압력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